- 생활묵상 : 오늘 주일을 보내면서 한 이런 저런 생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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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481 강만연 [fisherpeter] 스크랩 2026-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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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주일 미사를 참례하기 위해 준비를 하면서 이웃 본당에 가려고 하고 집을 나서면서 가다가 불과 미사 15분을 남겨두고 불과 지난주일에도 마음속에 굳게 맹세를 하고 또 같은 레지오 단원들한테도 마음 독하게 먹고 1년 동안은 본당을 가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는데 그만 오늘 그 다짐이 무너졌습니다.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제 발걸음은 제가 영세를 받은 본당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머리로는 가고 싶지 않은데 몸이 가는 것입니다.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미사 후 신부님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재빨리 마지막 강복 후에 빠져나왔습니다. 성당 주변에서 교우들과 인사를 좀 나누었습니다. 사실 어떤 교우들은 말은 안 해도 제 사정을 아는 사람도 많지만 모르는 분들은 어떻게 교적을 옮겼는데 가끔 한 번씩 미사를 참례하는 걸 보면 뭔가 모를 곡절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눈치입니다.
교우들과 인사를 나누다가 전전 연령회 회장님 내외분이 식사를 하자고 해서 본당과 좀 떨어진 고깃집에서 함께했습니다. 메뉴는 소고기 전골이었는데 그곳은 공교럽게도 어제 올린 글에서 언급한 성체조배회장님과도 가끔 가는 곳이었습니다. 또 오늘은 식당에서 미사 후에 인사를 드렸는데 본당에는 제 고등학교 때 은사님이 계십니다. 그 은사님이 사모님과 같이 오시지 않고 혼자 어떻게 식당에 오셔서 인사를 드렸고 나중에 은사님을 모처럼 식당에서 뵈었는데 그냥 인사만 하고 나올 수 없고 밥값은 제가 계산해드리고 나왔습니다.
오늘 식사를 하기 전에 자매님께서 "베드로씨, 오늘 밥값은 우리가 살 테니 혹여라도 부담 갖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제가 대접을 해드릴려고 했는데 일단 사양하지 않고 그렇게 하려고 했습니다. 식사 도중에 제가 "오늘은 그럼 회장님께서 사주는 거 감사하게 잘 먹고 제가 다음번에는 제가 내겠습니다" 했더니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자매님이 "오늘은 우리가 대접하고 싶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일단 감사한 마음으로 그렇게 하긴 했습니다. 그 말씀을 들으면서 순간 든 생각이 있었습니다. 오늘 자매님께 식당으로 들어가기 전 차에서 내린 후에 회장님 연세를 여쭤보니 여든 셋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럼 대충 자매님도 어느 정도인지는 감을 잡을 수 있습니다. 보통 이럴 경우 흔히 이렇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제가 물론 세상적으로도 나이를 봐도 한참 아들뻘 정도 될 그런 나이임에도 '대접'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보통은 "우리가 내겠습니다" 아니면 "우리가 살 테니 함부래 신경쓰지 마세요" 이렇게 표현하곤 합니다. '함부래'라는 말 제가 이건 아직 검색을 해보지 않았지만 아마 경상도에서만 사용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만 제가 지금 잠시 검색을 해봤는데 '함부로'의 방언으로 나오긴 하는데 실제 검색해서 나온 뜻과 언중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뜻과는 조금은 상이한 면이 있습니다. 이 사투리는 경상도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독특한 표현입니다. 아무튼 그렇습니다. 그렇게 표현하는 게 보통인데도 저는 그 순간 한 생각이 "역시, 사람은 말에서 품격이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지금 순간 글을 작성하다가 회장님께 문자를 생각났을 때 보내드렸습니다. "오늘 자매님의 말씀에서 '대접'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신 것에 대한 감사함"을 전했습니다.
저 같은 정도의 사람한테는 그런 단어를 사용할 필요가 없고 그냥 흔히 표현하는 방식으로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비록 두 글자로 이루어진 단어 하나를 사용했을 뿐인데도 경우에 따라서는 그 단어 하나로 인해 자신의 인격과 품격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사실 식사를 마친 후에 제가 커피숍으로 모셔서 차를 대접해드리려고 했는데 오늘 식사 후에 댁에서 어떤 치료를 해야 하는데 치료를 해 주시는 분과의 약속 때문에 차는 나중에 마시기로 하고 성당 근처에서 헤어졌습니다. 헤어진 후에 레지오 단장님과 다른 단원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제가 있는 장소 근처 그 바운더리 내에서 단원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고 계실 거라서요. 요즘 잘 가시는 곳에 가니 오늘은 안 계셔서 제가 전화를 했는데 다른 곳에 계신다고 해서 그 장소로 가는데 마침 근처에서 지금 현 본당 회장님과 신부님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전전 회장님도 함께하는 것이었고 제가 그냥 자리를 회피했는데 이게 오늘 그 장소를 가는데 평소 같이 함께하는 자매님이 오늘 가브리엘 총회가 있어서 이제 그곳에 간다고 하시면서 안내를 하는데 그 장소 외 다른 장소로 착각해 안내하셨는데 어떻게 아까 길에서 마주할 뻔했던 신부님이 그 커피숍에 계셔서 하마터면 신부님과 만날 뻔했습니다. 겨우 피해 원래 계신다는 장소로 가 함께 시간을 보낸 후 집에 와 이렇게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올리고 있습니다. 사실 오늘 제 일상에서 묵상한 내용이 한 서너개 정도됩니다. 그 중 제일 먼저 한 게 바로 오늘 회장님 내외분과 식사를 하시면서 자매님이 하신 그 말씀에 대한 단상을 올리려고 하다가 그냥 통합적으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왕 언급한 것이기 때문에 좀 더 상세하게 부연을 해 묵상한 걸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실 회장님이 성당 근처에서 저를 내려주신 다음 잠시 이동을 하는데 아주 오랜만에 예전에 저희 본당에 계셨고 실제 교적은 제가 영세 받은 본당에 있지만 현제는 다른 본당에 나가시는 분이 계십니다.
제가 한번 언급한 적이 있는 분이십니다. 형제님과 자매님이시고 사실 그분들은 평신도입니다. 사실 성인은 아니지만 거의 성자에 가까운 분이라고 해도 전혀 지나치지 않을 정도의 인품을 가지신 분이고 또 외적으로도 그런 모습이 우러나오는 분입니다. 형제님은 소아과 의사 출신이셨습니다. 큰 아들은 꽃동네에서 수사로 계시고 지금은 외국에 계십니다. 큰 아들은 원래 의사였는데 수사님으로, 따님은 수녀님으로 그렇게 두 분을 하느님께 봉헌하신 분이십니다. 막내 아들 한 번 본 적은 있는데 막내 아들은 가정을 꾸렸습니다. 그 두 분은 저를 대할 때 잘은 모르는데 원래 누구나 사람을 귀하게 대하시지만 저는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확실하게 아는 바는 없습니다만 좀 더 특별하게 대해주십니다. 황송할 따름입니다. 그건 아마 제가 예전에 본당 주보 1면에 몇 년 동안 올린 글 같은 걸 보고 뭔가 좀 특별하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어머니 장례미사 때 이 내외분 중 자매님이 성가대에 오셔서 함께해 주셨습니다. 예전에 성가대 봉사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때 특별히 와 주셨습니다. 정말 감사했었습니다. 오늘 잠시 오랜만에 뵙고 인사만 드렸는데도 사람을 대하는 자매님의 얼굴에서 나오는 자태는 실로 겸손이 그냥 몸에서 교만하게 행동하려고 하셔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고도로 절제된 품위 있는 모습 그 자체만으로도 감동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사람에게서 저런 품위가 나올지 존경스러울 지경입니다. 또한 얼굴에서는 신앙인의 경건함 같은 게 녹아 있습니다. 정말 닮고 싶은 분입니다.
원주교구 님의길을 걸을 때 원주교구민들과 함께하면서 우연히 제가 어느 곳에서 유일하게 타교구에서 그것도 먼 마산교구에서 함께한다는 이유로 소감을 나누는데 제가 마산교구 사람이라는 걸 알고 나중에 어떤 자매님이 한 분 오셔서 예전에 마산에서 자신이 모셨던 의사 선생님이 계신다고 하시며 설명을 하시는데 마침 이 의사분이시고 저희 본당에 계신 분이고 해서 놀아웠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 내용을 언제 한 번 글에서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이후 몇 차례 그 자매님과 원주교구에서 순례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분 형제님 이야기를 하셨는데 감동적인 내용이 하나 있습니다.
자매님의 이 이야기도 제가 글에서 언급을 했습니다. 사실 이 자매님은 흔히 세상에서 말하는 표현으로 하면 콧대가 높고 약간 절제된 표현으로 하자면 교만한 그런 사람이었는데 성당을 다니면서 또 강론을 들으면서도 '겸손'이라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몰랐는데 예전에 이분을 마산에서 모실 때 이분과 함께하면서 ' 진정한 겸손'이 무엇인지를 알게 됐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원주교구 자매님으로부터 이 말씀을 들으면서 이게 무슨 의미인지를 이심전심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오늘 두 분의 자매님을 만났습니다. 본당 연령회 회장님을 지내신 분의 아내분과 또 방금 언급해드린 자매님 두 분입니다.
한 분은 식사를 하면서 좀 더 많은 시간을 가졌고 또 한 분은 잠시 인사만 하고 헤어졌던 분입니다. 이 두 분을 보면서 공통적으로 떠오른 묵상의 결론입니다. 다 같은 신앙인임에도 불구하고 신앙인의 품격이 굳이 어떻게 드러내려고 하지 않아도 드러나는 품격을 지니신 분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품격이야말로 진정으로 ' 그리스도의 향기를 뿜어내는 품격 '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같은 시간을 보내며 같이 신앙생활을 해도 어떤 사람은 저게 어떻게 신앙인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이런 평가를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방금 언급한 분과 같은 그런 평가를 받는 분이 계시는 걸 보면서 참으로 많은 걸 느낍니다. 의사 출신인 형제님의 자매님은 많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제가 언급한 내용을 다 인정할 정도의 그런 품격을 지니신 분입니다.
이제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누구나 다 신앙을 가진다고 해서 다 훌륭한 신자로 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알긴 알지만 한편으로는 달리 생각해 이런 질문을 모든 신앙인이 자신에게 자문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다 같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누구는 아주 존경받을 만큼의 품격있는 신앙인으로 자리매김을 하는가 반면에 그렇지 못한 신앙인도 있다면 그 대상이 "바로 '내'" 자신은 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입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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