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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6년 4월 22일 (수)부활 제3주간 수요일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본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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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전삼용 신부님_왜 모세가 만나를 주었다고 생각하면 계속 배가 고플까?

189217 최원석 [wsjesus] 스크랩 2026-04-21

 

"하늘에서 너희에게 빵을 내려 준 이는 모세가 아니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 (요한 6,32) 찬미 예수님! 부활하신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하기를 빕니다. 오늘 복음에서 군중은 예수님께 묻습니다. "그러면 저희가 보고 선생님을 믿을 수 있도록 무슨 표징을 일으키시겠습니까? 무슨 일을 하시겠습니까?" (요한 6,30). 어제 보리 빵 다섯 개로 배불리 먹는 기적을 체험하고도, 그들은 자고 일어나니 또 다른 기적을 구걸합니다. 그러면서 조상들이 광야에서 먹었던 '만나' 이야기를 꺼냅니다. 그들의 논리는 명확합니다. '모세는 우리 조상들에게 하늘에서 빵을 내려주어 40년을 먹게 했다. 당신도 그 정도의 기적은 계속 보여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치명적인 오류를 수정해 주십니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빵을 내려 준 이는 모세가 아니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 (요한 6,32). 왜 예수님은 굳이 만나를 준 주체가 모세가 아니라 '아버지'임을 강조하실까요? 그것은 우리가 먹는 양식의 '출처'를 어디라고 믿느냐에 따라 우리의 '존엄성'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이 삼위일체적 원리를 통해, 왜 우리가 세상의 빵을 먹으면서도 늘 허기에 시달리는지 그 근본적인 이유를 파헤쳐 보겠습니다. 인간이 겪는 모든 갈증과 배고픔의 끝에는 단 하나의 질문이 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하는 정체성의 문제입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모르면, 아무리 화려한 빵을 먹어도 마음은 늘 텅 비어 있습니다. 배고픔은 위장의 문제가 아니라 소속의 문제입니다. 프랑스 루이 14세 시절, 34년 동안 얼굴을 철가면(실제로는 벨벳 가면)으로 가린 채 살았던 이름 없는 죄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1703년 바스티유 감옥에서 숨을 거둘 때까지 철저한 익명 속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는 감옥 안에서 국왕의 특별 명령으로 상상도 못 할 최고의 대우를 받았습니다. 매일 갈아입는 최고급 비단 옷, 은식기에 담긴 산해진미, 심지어 간수들은 그가 식사할 때마다 모자를 벗고 예의를 갖췄습니다. 하지만 기록에 따르면 그는 평생을 지독한 우울과 고독 속에서 보냈습니다. 그는 종종 식사를 거부하며 벽을 보고 오열했습니다. 왜일까요? 자신이 누구인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얼굴을 비춰볼 거울조차 허락되지 않았고,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이도 없었습니다. 훗날 역사가들은 그가 루이 14세의 친형이었을 것이라 추측합니다. 그는 왕족의 빵을 먹었지만, 자신이 '왕의 아들'이라는 확신을 단 한 순간도 얻지 못했습니다. 정체성이 거세된 채 주어지는 최고의 성찬은 그에게 양식이 아니라 사형수에게 주는 마지막 모욕과 같았습니다. 이처럼 참된 해갈은 내가 '누구로부터 온 존재인가'를 발견할 때만 일어납니다. 정체성이 없는 포만감은 영혼을 굶겨 죽입니다. (출처: 장 크리스티앙 프티피스, 『철가면』) 세상 사람들은 빵을 먹으며 배가 부르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하느님 자녀의 존엄성을 잃어버린 인간은 빵을 먹을수록 비참해집니다. 그 빵이 나를 살리는 양식이 아니라, 나를 이 땅의 감옥에 묶어두는 족쇄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흔히 어머니가 주는 젖을 먹고 자랍니다. 아기에게 어머니는 우주 전체이며 생명의 공급자입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멈추면 아이는 평생 어머니의 수준에 머물게 됩니다. 어머니는 자녀를 양육하기 위해 자녀의 눈높이까지 내려와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자녀가 사회적 존재로 서고, 자신의 존엄성을 하느님 수준까지 끌어올리려면 반드시 '아버지'라는 존재를 통과해야 합니다. 현대 심리학의 '밀착된 관계(Enmeshment)' 이론에는 소름 끼치는 임상 사례가 많습니다. 35세가 되도록 직업도 없이 방 안에 갇혀 지내던 한 남성이 상담소를 찾았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을 너무나 사랑했습니다. 그녀는 아들이 어릴 때부터 "아빠는 밖에서 딴짓하느라 바쁘니 우리 아들은 엄마만 믿어라. 이 밥도 엄마가 너를 위해 직접 피땀 흘려 마련한 거야"라고 가르쳤습니다. 어머니는 양식의 출처를 '아버지'와 단절시키고 오직 '자신'에게만 고정시켰습니다.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아들은 어머니가 차려준 밥을 먹을 때마다 무의식중에 '나는 엄마 없이는 밥 한 끼도 못 해결하는 무능한 존재'라는 저급한 자존감에 갇혔습니다. 그는 밖으로 나갈 용기를 잃었고, 어머니의 치마폭이라는 좁은 세계의 중력에 묶여 영적으로 말라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심리 치료사는 어머니에게 강하게 요구했습니다. "밥을 차려줄 때 반드시 이 밥은 아버지가 밖에서 전쟁 같은 사회와 싸워 벌어온 것임을 알려주십시오." 어머니가 처음으로 "얘야, 이 맛있는 반찬은 아빠가 가족을 위해 고생해서 사 온 거란다. 너는 저 거친 세상을 이기고 돌아온 위대한 아버지의 아들이야!"라고 말하기 시작했을 때, 아들의 눈빛이 변했습니다. 자신의 출처가 집안의 엄마가 아니라 '거친 세상을 정복한 아버지'임을 인지하는 순간, 그의 자존감은 폭발적으로 상승했습니다. 그는 6개월 만에 방을 나와 취업에 성공했습니다. 어머니는 젖을 주는 '통로'일 뿐, 그 젖을 가능하게 한 '원천'은 아버지임을 아는 것, 그것이 인간을 거인으로 만드는 비결입니다. (출처: 살바도르 미누친, 『가족과 가족 치료』 임상 사례 재구성)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바로 이것입니다. 군중은 모세라는 '엄마'가 만나를 주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세 수준, 즉 땅의 기적에만 머물러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아니다. 그 빵은 내 아버지께서 주신 것이다." 예수님은 하느님이시지만 우리와 똑같은 인간의 살과 피를 가지고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즉, 우리의 수준으로 내려오신 '어머니'와 같은 모습입니다. 예수님이 당신의 살과 피를 우리에게 내어주시는 것은 어머니가 자녀에게 젖을 먹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살과 피를 먹으면서 "예수라는 훌륭한 인간이 주는 빵이다"라고만 믿으면, 우리는 그저 '착한 인간' 수준에 머물게 됩니다. 우리가 성체를 모시며 "아, 이 빵은 창조주 하느님 아버지께서 나를 당신의 자녀로 삼기 위해 당신 아들의 생명을 통해 보내주신 것이구나!"라고 믿을 때, 비로소 우리의 본성은 아버지와 같은 하느님의 본성으로 격상됩니다. 성체성사는 '인간 예수'를 먹는 예식이 아니라, '예수라는 통로'를 통해 '아버지의 신성'을 수혈받는 신화(Deification)의 사건입니다. 표징이 단순한 기적과 다른 이유는, 그것이 보내신 분의 본질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줄 때, 그 출처가 '나'라고 말하는 순간 그 사랑은 상대의 자존감을 갉아먹는 '지배'가 됩니다. 하지만 그 출처가 하느님임을 알려줄 때, 그 사랑은 상대를 하느님 자녀로 부활시키는 '표징'이 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식탁으로 초대하십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요한 6,35). 우리가 성체를 영하며 "이것은 하느님 아버지가 나에게 주시는 신적인 생명이다"라고 고백할 때, 우리의 자존감은 땅바닥에서 하늘로 치솟을 것입니다. 여기, 그 믿음의 고백으로 지옥을 천국으로 바꾼 한 성자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성 다미안 신부님이 나환우들의 섬 몰로카이에 들어갔을 때, 환우들은 자신들을 '버려진 쓰레기'라 생각하며 자학했습니다. 당시 벨기에 정부가 물자를 보냈지만, 환우들은 그것을 받을 때마다 "우리가 불쌍해서 적선하는 거지?"라며 냉소했습니다. 구호물자를 먹을수록 그들은 자신이 비참한 거지임을 재확인했을 뿐입니다. 다미안 신부님은 가르침의 방식을 완전히 바꿨습니다. 그는 성체를 집전하며 환우들의 눈을 똑바로 보고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형제 여러분, 잘 들으십시오. 이 빵은 벨기에 국왕이 동정심으로 보낸 것도 아니고, 제가 여러분이 가여워 준비한 것도 아닙니다. 이 빵은 온 우주의 주인이신 하느님 아버지께서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인 '여러분'을 먹이기 위해 하늘에서 직접 내려주신 당신 아들의 살과 피입니다. 여러분은 버려진 나환자가 아니라, 하늘 아버지의 식탁에 초대받은 고귀한 왕족입니다!" 교부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요한 복음 강해』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대가 무엇을 먹는지 보라. 그대가 하느님의 빵을 먹는다면 그대는 하느님이 될 것이다. 모세가 아닌 아버지께로부터 오는 빵을 먹는 자만이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St. Augustine, Tractates on the Gospel of John, 25, 12).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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