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삼용 신부님_성모님에 대한 사랑과 성체에 대한 사랑은 비례한다
-
189781 최원석 [wsjesus] 스크랩 10:00
-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요한 19,26-27)
찬미 예수님! 성령 강림 대축일 바로 다음 날, 우리 교회는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을 지냅니다. 저는 오늘 ‘왜 성모님을 교회의 어머니로 인정하지 않으면 성체성사도 인정하지 못하게 될까?’라는 주제로 묵상해 보려고 합니다.
어느 도시에 수십 년 전통을 자랑하는 곰탕집이 있었습니다. 그 식당의 곰탕 국물은 일흔이 넘으신 늙은 어머니가 매일 새벽 3시부터 가마솥 앞에서 땀과 눈물을 흘려가며 뼈를 고아 끓여낸 예술 작품이었습니다. 장성한 아들은 홀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국밥을 날랐습니다. 어느 날, 자칭 유명한 미식가라는 교만하고 돈 많은 남자가 식당에 찾아왔습니다. 그는 아들이 내온 곰탕을 한 숟갈 맛보더니 그 깊고 진한 맛에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야, 진국이군! 최고야!"
그런데 마침 주방에서 땀에 전 앞치마를 두르고 굽은 허리를 한 노모가 홀로 나왔습니다. 미식가는 노모를 위아래로 불쾌하게 훑어보더니 아들에게 삿대질하며 아주 무례하게 소리쳤습니다. "이봐요 사장! 국물 맛은 좋은데, 식당에 당신같이 냄새나고 볼품없는 늙은 할머니가 떡하니 돌아다니니까 밥맛이 확 떨어지잖아! 깨끗한 주방장을 쓰지 그래?" 사장은 말했습니다. "저분이 제 어머니이십니다. 당신은 어머니의 음식을 먹을 자격이 없습니다. 나가주세요.”
세상에는 아주 명확하고도 상식적인 법칙이 하나 있습니다. '요리하는 사람을 존중하지 못하면, 그 요리를 먹을 자격도 잃게 된다'는 것입니다. 요리는 단순히 식재료의 조합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 요리를 만든 사람의 시간, 정성, 희생, 곧 그의 생명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톨릭 신자로서 매일 미사 때 제대 앞으로 나아가 입을 벌려 받아먹는 '성체'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살과 피, 즉 하느님께서 우리 영혼을 살리기 위해 먹이시는 천상의 곰탕 국물과도 같은 '절대적인 생명의 양식'입니다.
그렇다면 그 위대한 살과 피라는 양식은 2천 년 전 골고타 언덕에서 도대체 누구의 몸에서 유래한 것입니까? 예수님은 지상의 인간 아버지가 없으셨습니다. 성령으로 잉태되셨지요. 따라서 예수님의 육신을 구성하는 세포, 염색체, DNA의 100퍼센트는 오직 동정녀 마리아의 살과 피를 빌려 형성된 것입니다. 마리아의 태중에서 열 달 동안 마리아가 섭취한 양식과 피를 통해 길러진 육신이 바로 예수님의 몸입니다. 곧,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에서 "이는 내 몸이다"라고 내어주신 그 살과 피는, 본질적으로 어머니 마리아가 당신의 살과 뼈를 깎아 고아낸 처절한 모성의 결정체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수많은 개신교 형제들이나 일부 교만한 신앙인들은 방금 전 곰탕집의 미식가와 똑같은 태도를 보입니다. 그들은 예배당에 앉아 십자가의 은총과 구원의 빵은 달라고 열렬히 기도합니다. 하지만 그 위대한 살과 피를 세상에 내어주기 위해 평생을 십자가의 칼날에 심장이 찔리며 피눈물을 흘리신 성모 마리아를 향해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예수님만 있으면 되니, 마리아 당신은 저 뒤로 빠져 있으시오. 평범한 여자일 뿐인데 공경할 필요 없소! 나는 구원의 국물만 들이켜면 되오!"
어머니의 태중과 그 생물학적 희생을 부정하고 무시하면서, 어떻게 그분의 살과 피로 사시며 그 살과 피를 먹고 마시라는 말씀이 곧이곧대로 들리겠습니까? 어머니의 살이 보통 죄인의 살이라면, 그리스도의 살도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당신 살과 피를 먹고 마시라고 할 때, “아니야, 그건 진짜 살과 피가 아니라 당신의 ‘말씀’을 의미하는 거야!”라고 성경을 바꿔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숨이 끊어지는 그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굳이 요한을 향해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요한 19,27)라고 선언하셨습니다. 당신이 피 흘려 세우실 성체성사의 만찬에 우리가 초대받았을 때, 그 양식이 우리 영혼 안에서 독이 되지 않고 참된 생명으로 피어나도록, 손수 먹여주실 완벽한 어머니를 우리에게 보증인으로 세워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광야를 지날 때, 하느님은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주셨습니다. 만나는 곧 신약의 '성체'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이 귀한 만나와 율법판을 금으로 만든 '계약의 궤(법궤)' 안에 소중히 보관하게 하셨습니다 (히브 9,4 참조).
가톨릭교회는 전통적으로 이 '계약의 궤'를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는 것으로 봅니다. 하늘의 살아있는 빵이신 예수님을 당신의 순결한 태중에 모셨기 때문입니다. 성모 호칭 기도에서 마리아를 '계약의 궤이신 마리아님'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구약 시대에 계약의 궤는 하느님의 현존 그 자체였습니다.너무나 거룩하여, 함부로 만지거나 불경하게 대하는 자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습니다(2사무 6장 우짜의 죽음 참조). 위대한 다윗 왕조차 그 궤 앞에서 두려워 떨며 춤을 추며 공경했습니다.
만나가 거룩하다면, 그 만나를 품었던 궤 역시 하느님의 거룩함에 동참하는 지극히 존귀한 성물입니다. 계약의 궤를 천대하고 멸시하는 사람이, 그 안에 담긴 만나나 하느님이 직접 새겨주신 율법판을 진심으로 존중할 수 있겠습니까? 절대 불가능합니다. 상자를 쓰레기 취급하는 자는 결국 그 안의 보석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때부터 그 제자는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 (요한 19,27).집은 인간의 자아와 내면, 영혼의 공간을 뜻합니다. 요한은 자기 영혼의 안방에 교회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을 가장 귀한 분으로 모셔 들였습니다. 교회의 위대한 학자인 성 아우구스티누스 주교님은 이렇게 단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살은 곧 마리아의 살이다 (Caro Jesu, caro Mariae est)."
하느님의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고 하느님의 아들을 참되게 사랑할 방법은 이 우주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요리를 먹을 자격은 요리사를 존중할 때 비로소 주어집니다. 계약의 궤를 존중할 때만 그 안의 만나가 생명이 됩니다. 성모님을 내 어머니로 받아들임은, 내가 미사 때 먹는 성체가 결코 죽은 빵이나 상징이 아니라 나를 살리는 참 생명의 피와 살임을 보증받는 가장 확실한 도장을 찍는 행위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
- 이병우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김건태 신부님 묵상
-
189782
최원석
10:05
-
반대 0신고 0
-
- 전삼용 신부님_성모님에 대한 사랑과 성체에 대한 사랑은 비례한다
-
189781
최원석
10:00
-
반대 0신고 0
-
-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
189780
최원석
10:00
-
반대 0신고 0
-
- 양승국 신부님_단말마의 고통 속에서도 우리를 걱정하시는 하느님!
-
189779
최원석
10:00
-
반대 0신고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