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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전삼용 신부님_내가 청하는 것을 내가 존중하는지 먼저 물어야

189863 최원석 [wsjesus] 스크랩 2026-05-30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 (마르 11,33) 
 
찬미 예수님! 연중 제8주간 토요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 원로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논쟁을 벌이는 장면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오?"라며 아주 예리한 질문을 던집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진리를 알고 싶어 하는 진지한 구도자들의 모습 같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질문에 답을 주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례자 요한의 권한이 하늘에서 온 것인지 사람에게서 온 것인지 되물으십니다.
그러자 그들은 속으로 얄팍한 계산을 돌리기 시작합니다.
'하늘에서 왔다고 하면 왜 믿지 않았느냐고 할 것이고, 사람에게서 왔다고 하면 군중이 두렵고.'
결국 그들은 진실을 외면한 채 "모르겠소"라고 거짓말을 해버립니다.
그러자 예수님도 단호하게 선언하십니다.
"나도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 
 
주님은 왜 진리를 묻는 이들에게 침묵하셨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진리에 대한 '존중'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진리를 알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진리를 이용하려 했을 뿐입니다.
하느님은 스스로 정직하지 않으면서 진리를 훔쳐 가려는 자들에게는 결코 하늘의 신비를 내어주지 않으십니다. 
 
어느 마을에 허풍이 심하고 체면을 중시하는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몸이 자꾸 아파서 아주 용하고 신통하다는 명의를 찾아갔습니다.
의사는 남자의 진맥을 짚어보더니 차트를 들고 진지하게 물었습니다.
"환자분, 정확한 진단을 위해 묻겠습니다.
평소 식습관은 어떠시며, 술과 담배는 얼마나 하십니까?"
남자는 의사 앞에서 자신이 게으르고 방탕하게 산다는 것을 들키는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태연하게 거짓말을 늘어놓았습니다. 
 
"아, 저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조깅을 하고요. 술과 담배는 입에도 대지 않습니다.
식사도 철저하게 유기농 채소 위주로 소식하며 완벽하게 관리하고 있지요."
의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처방전을 써주었습니다. 남자는 비싼 돈을 주고 지어온 약을 매일 정성껏
챙겨 먹었습니다.
그런데 한 달 뒤, 병이 낫기는커녕 증세가 악화되어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남자는 화가 잔뜩 나서 의사를 찾아가 멱살을 잡았습니다.
"당신 명의라더니 다 사기꾼 아니오! 당신이 준 약을 먹고 내 몸이 더 망가졌소!"
그러자 의사가 남자의 손을 뿌리치며 싸늘하게 대답했습니다. 
 
"선생님, 제가 지어드린 그 약은 완벽한 명약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약을 '새벽마다 조깅을 하고 술 담배를 안 하는 건강한 사람'을 위해 지어주었지, 매일 밤 술을 퍼마시고 기름진 고기만 먹는 선생님 같은 분을 위해 지어준 적이 없습니다! 당신이 당신의 진짜 모습을 속였는데, 어떻게 내 처방이 당신 몸에서 진리를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 
 
이처럼 진리를 대하는 우리의 영적 태도가 얼마나 완벽한 무결점을 요구하는지, 현대 첨단 공학의 법칙 하나를 통해 명확히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바로 반도체 공장의 클린룸(Clean Room) 법칙입니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에 들어가는 초정밀 반도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일반 공기가 아닌 완벽하게 통제된 '클린룸'이라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이 방은 먼지 한 톨, 머리카락 한 가닥도 허용되지 않는 우주에서 가장 깨끗한 공간입니다. 작업자들은 온몸을 방진복으로 꽁꽁 싸매고, 에어 샤워를 거쳐야만 그 방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유난을 떨까요? 반도체 웨이퍼 위에 그려지는 회로는 나노미터(10억 분의 1미터) 단위의 초미세 설계도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작업자가 귀찮다고 방진복을 대충 입고 들어가서, 아주 미세한 각질이나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먼지 한 톨이라도 그 웨이퍼 위에 떨어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 나노미터의 정밀한 회로는 즉시 끊어지고 쇼트가 나서, 수백억 원어치의 반도체가 전부 불량품이 되어 폐기 처분되고 맙니다. 
 
하느님의 진리는 이 반도체 회로보다 수억 배 더 정교하고 거룩한 우주의 설계도입니다.
이 거룩한 진리가 우리 영혼의 웨이퍼에 새겨지려면, 우리 마음은 반드시 정직이라는 완벽한 클린룸 상태가 되어야 합니다.
겉으로는 기도를 하면서도 속으로는 자기 합리화와 거짓말이라는 미세먼지를 풀풀 풍기고 다닌다면, 하느님의 진리는 우리 영혼 안에서 즉시 쇼트를 일으키고 맙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진리를 쏟아부어 주시기 위해 가장 먼저 요구하시는 조건은 똑똑한 머리가
아닙니다.
내 죄와 한계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잔인할 정도의 '솔직함'입니다.
진리를 청할 때는 솔직해야 하고, 은총을 청할 때는 죄를 짓지 않을 결심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청하는 것을 존중한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얼마나 자주 유다인들처럼 속을 감추고 하느님 앞에 섭니까?
교회의 위대한 학자인 성 아우구스티누스 주교님은 『고백록』에서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진리는 빛과 같아서, 거짓으로 자신의 두 눈을 가린 자에게는 맹인의 흑암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비참함을 솔직하게 고백하지 않는 자는, 영원히 진리의 문고리조차 잡을 수 없을 것입니다."
(출처: 성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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