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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6년 6월 4일 (목)연중 제9주간 목요일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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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전삼용 신부님_법의 얽매임이 어떻게 자유와 평화를 주는가

189949 최원석 [wsjesus] 스크랩 08:55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마르 12,30-31)

찬미 예수님! 연중 제9주간 목요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율법 학자 한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는 계명이 무엇인지 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수만 가지 복잡한 율법을 단 두 개의 기둥으로 압축해 주십니다. 하느님을 온전히 사랑하라는 '수직적인 기둥'과,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수평적인 기둥'입니다. 이 두 기둥이 교차하여 만들어지는 모양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내 마음대로 편하게 살고 싶은데, 하느님은 왜 이토록 무거운 사랑의 의무로 우리를 옭아매려 하실까요? 얽매임 없이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이 진정한 자유가 아닐까요?

어느 날, 세상의 모든 규칙과 인간관계에 지쳐버린 한 젊은이가 지혜로운 랍비를 찾아와 불평을 털어놓았습니다. "선생님, 저는 국가에 세금을 바치고 율법을 지키는 것도 억울하고, 매일 부딪히는 이웃들의 비위를 맞추며 사랑하는 척하는 것도 지긋지긋합니다. 수직적인 의무도 없고 수평적인 관계도 없는, 아무도 저를 간섭하지 않는 완벽하게 평화롭고 자유로운 공간은 이 세상에 없습니까?"

젊은이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랍비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물론 있지. 그곳에 가면 자네에게 세금을 내라거나 법을 지키라고 독촉하는 왕도 없고, 자네의 속을 뒤집어 놓거나 돈을 빌려달라고 귀찮게 구는 이웃도 전혀 없다네. 아주 완벽하게 고요하고 자유로운 곳이지." 젊은이가 눈을 번쩍이며 다급하게 물었습니다. "아니, 그런 천국 같은 곳이 도대체 어디입니까?"

랍비가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공동묘지라네. 오직 차갑게 죽어있는 시체들만이 왕에 대한 수직적 의무도, 이웃에 대한 수평적 사랑의 얽매임도 없는 완벽한 자유를 누린다네. 젊은이, 살아 숨 쉬는 생명이라면 응당 그 관계의 무거운 짐을 기꺼이 짊어져야 하는 법이라네."

그렇습니다. 의무와 관계의 얽매임을 거부하는 완벽한 자유는 곧 죽음의 다른 이름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지우신 이 수직과 수평의 얽매임은 우리를 구속하려는 형벌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이 거칠고 무서운 세상 속에서 우리의 생명과 절대적인 자유를 완벽하게 지켜주기 위해 하느님께서 고안해 내신 가장 완벽한 '안전 시스템'입니다.

이 위대한 십자가의 얽매임이 어떻게 우리를 지켜주고 자유롭게 하는지,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국가와 법'의 원리를 통해 먼저 들여다보겠습니다.

우리가 한 나라의 국민으로 안전하고 평화롭게 살아가려면, 반드시 그 나라의 법률이라는 강제적인 사슬에 우리 자신을 묶어야만 합니다. 국가의 모든 법은 가만히 뜯어보면 정확히 두 갈래의 얽매임으로 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위를 향한 의무입니다. 국방의 의무를 위해 군대에 가고,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내 피 같은 돈을 떼어 세금을 내야 합니다. 둘째는 옆을 향한 의무입니다. 형법과 민법을 지켜야 합니다. 아무리 화가 나도 이웃을 함부로 때리거나 이웃의 재산을 훔쳐서는 안 된다는 강력한 얽매임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 두 가지 의무가 답답하다며 이렇게 소리친다고 상상해 봅시다. '나는 내 마음대로 사는 완벽한 자유인이 될 거야! 국가에 세금도 내지 않을 것이고, 내 기분대로 이웃의 물건을 빼앗고 마음껏 때리며 살겠어!' 이 사람이 과연 자유를 얻을까요? 아닙니다. 이 두 갈래의 법을 어기는 순간, 국가는 공권력을 발동하여 그 사람을 체포해 차디찬 감옥에 가두어 버립니다. 그가 그토록 원했던 자유는 100퍼센트 영원히 박탈당하고 맙니다.

반대로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세금을 내기 싫고 이웃의 비위를 맞추기 귀찮아도, 기꺼이 이 두 가지 법의 사슬에 우리 자신을 묶고 순종하면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우리가 위를 향해 바친 세금과 국방의 의무로 인해, 국가는 거대한 군대를 키워 외적의 침략으로부터 '우리의 생명'을 안전하게 지켜줍니다. 우리가 옆을 향해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법을 지킬 때, 국가의 경찰과 공권력은 강도와 살인자들로부터 '우리의 집과 평화'를 완벽하게 지켜줍니다.

그렇습니다. 위를 향한 국가에 대한 사랑(세금)과 옆을 향한 이웃에 대한 사랑(준법)이라는 얽매임은, 남을 좋게 하려는 것만이 아닙니다. 궁극적으로 밤에 두 다리를 쭉 뻗고 편안하게 잠들 수 있는 '나의 완벽한 자유와 평화'를 보장받기 위해 우리가 기꺼이 선택하는 생존의 밧줄인 것입니다.

우리가 속하고 관계 맺으며 살아가는 집단의 수준을 가만히 들여다봅시다. 이 위를 향한 법과 옆을 향한 법이 얼마나 철저하고 깊이 있게 지켜지느냐에 따라, 그 집단이 누리는 평화와 자유의 크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어둠의 세계에 있는 깡패 집단을 생각해 봅시다. 그곳에도 나름의 위계질서가 있고 의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법의 바탕에는 참된 사랑이 없습니다. 위를 향한 존경은 폭력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고, 옆을 향한 의리는 돈과 이익 때문입니다. 사랑의 법이 작고 얄팍하기에, 그들은 늘 다른 조직이 자신들을 깔보거나 공격할까 봐 두려워하며, 부하가 언제 배신할지 몰라 밤잠을 설칩니다. 겉으로는 힘이 세 보이지만 내면에는 평화가 전혀 없는 지옥입니다.

반면, 우리가 머무는 가정을 보십시오. 가정은 세상의 어떤 조직이나 회사보다 위를 향한 질서(부모 공경)와 옆을 향한 질서(형제애)가 끈끈한 사랑의 법으로 지켜지는 곳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바깥세상에서 아무리 치이고 상처받아도, 집에 돌아와 문을 닫는 순간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평화로운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법의 강도, 곧 사랑의 얽매임이 강할수록 평화도 강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느님 사랑(수직)과 이웃 사랑(수평)이라는 십자가의 계명은 바로 이 가정의 사랑을 우주적으로 확장한 것입니다. 이 두 계명은 하느님 나라라는 우주 최고의 가정에 소속되어 영원한 보호를 받기 위해 우리가 서명해야 할 '영적 헌법'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세상의 그 어떤 법보다 훨씬 더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아가페적인 사랑을 요구합니다. 내 목숨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고, 내 몸처럼 이웃을 사랑하는 이 가장 무겁고 철저한 십자가의 헌법이 지켜지는 곳이기에, 그곳에는 사탄의 어떤 위협이나 상처도 침범할 수 없는 100퍼센트 완벽한 평화와 자유만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이 무거운 사랑의 법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일상에서 연습하는 이들만이 그 영원한 나라에 살 자격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일의 단잠을 포기하고 성당에 나와 마음을 다해 하느님을 예배하고 십일조를 바칠 때 (수직적 세금), 우주의 창조주이신 하느님은 전능하신 팔을 뻗어 사탄의 맹렬한 공격과 지옥의 공포로부터 '우리의 영혼'을 완벽하게 방어해 주십니다.

우리가 내 속을 썩이는 얄미운 직장 동료나 배우자에게 앙갚음하지 않고 꾹 참고 용서할 때 (수평적 준법), 내 주변은 분노와 복수의 칼날이 사라진 안전한 평화의 요새가 됩니다. 결국 십자가의 계명은 무거운 짐이 아니라, 우리를 살리기 위해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우주 최강의 보디가드 시스템입니다. 이 법을 지키는 자는, 우주의 통치자가 나를 지켜주신다는 압도적인 자존감 속에서 '왕의 여유'를 누리며 세상을 두려움 없이 걷게 됩니다.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기적적으로 해방시키셨습니다. 그들은 완벽한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그들을 광야로 이끄시자마자 시나이산에서 '십계명'이라는 무거운 법을 주십니다. 1계명부터 3계명까지는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수직적 계명이고, 4계명부터 10계명까지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수평적 계명입니다.

이제 막 자유를 얻은 백성에게 왜 또다시 무거운 사슬(율법)을 채우셨을까요? 만약 광야에서 이 수직과 수평의 법이 없었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며칠도 안 되어 먹을 것을 두고 서로를 죽이고 빼앗는 짐승의 무리로 전락하여 사막의 모래에 파묻혀 멸망했을 것입니다. 하느님은 그들이 '자유로운 야만인'이 아니라 '안전하고 거룩한 하느님의 백성'으로 영원히 살아남게 하시려고 십계명이라는 단단한 성벽으로 그들을 묶어 보호하신 것입니다. (출처: 『주석 성경』 탈출기 20장).

교회의 위대한 학자이신 성 아우구스티누스 주교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권고하셨습니다. "사랑의 짐을 거부하는 자는 생명을 거부하는 자입니다. 수레바퀴는 축에 단단히 매여 있을 때만 힘차게 굴러갈 수 있고, 악기의 줄은 팽팽하게 당겨져 묶여 있을 때만 아름다운 소리를 냅니다. 하느님과 이웃이라는 두 기둥에 당신을 단단히 묶으십시오. 그 결박이 당신을 천국의 평화로 이끌 것입니다." (출처: 성 아우구스티누스, 『요한 복음 강해』 참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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