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극히 거룩하신 성체와 성혈 대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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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76 조재형 [umbrella] 스크랩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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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 중에 파티마에서 조금은 특별한 조각을 보았습니다. 광장의 한 모퉁이에 벤치가 있었고, 그 벤치에는 한 노숙자가 누워 있는 작품이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낡은 담요를 덮고 있는 노숙자의 모습이었지만,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 발에는 못 자국이 있었습니다. 십자가의 흔적을 지닌 예수님의 모습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마태복음 25장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너희가 내 형제들 가운데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이 작품을 처음 어떤 교구에 설치하려 했을 때, ‘품위에 맞지 않는다’라는 이유로 거절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소식이 전해졌을 때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전혀 다른 선택을 하셨습니다. 교황님은 바티칸에 노숙자들을 위한 샤워실과 쉼터를 마련하고, 성탄과 부활에는 그들을 초대하여 함께 식사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정신에 따라 교회는 이 작품을 받아들였습니다. 교황님은 늘 말씀하십니다. “가난한 이들은 교회의 장식이 아니라, 교회의 중심입니다.” 우리가 외면했던 그 자리에 주님이 계신다는 것을 교회는 다시 깨닫게 된 것입니다. 저는 그 벤치 앞에 서서, 우리가 미사 안에서 모시는 성체가 바로 저 자리에 계시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성체와 성혈의 신비도 이와 같습니다.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안에 계신 예수님을 알아보는 것, 그리고 그 예수님을 삶 속에서 발견하는 것, 그것이 성체성사의 핵심입니다. 성체는 단순히 받아 모시는 신심이 아니라, 우리의 눈을 열어 주고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사랑입니다. 이러한 성체성사의 정신을 가장 아름답게 살아가는 공동체가 있습니다. 바로 꽃동네입니다. 꽃동네는 “얻어먹을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입니다.”라는 믿음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곳에서는 세상에서 버려진 이들, 의지할 곳 없는 이들,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이들을 가족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고, 함께 살아가며, 그들의 존엄을 지켜 줍니다. 꽃동네의 봉사자들은 단순히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 안에 계신 예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성체를 모시는 신앙이 성당 안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이웃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사랑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또한 꽃동네의 사랑은 한국에만 머무르지 않고 세상 곳곳으로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꽃동네는 멕시코와 필리핀, 아이티와 페루와 같은 지역에도 공동체를 세워,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음식이 부족한 곳에서는 함께 밥을 나누고, 병든 이들이 많은 곳에서는 그들을 돌보며, 외로운 이들이 있는 곳에서는 가족이 되어 줍니다.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지만, 그들이 나누는 사랑은 하나입니다. 성체성사에서 비롯된 사랑이 국경을 넘어 흘러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 빵을 나누듯이, 그들도 한마음으로 사랑을 나누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빵이 하나이므로 우리는 여럿일지라도 한 몸’이라는 사도 바오로의 말씀이 오늘날에도 살아 있음을 보여 줍니다.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배고픔과 목마름 속에서 하느님께서는 하늘에서 내려온 양식으로 그들을 살려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만나의 의미는 단순히 배를 채우는 데에 있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않고,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라는 것을 깨닫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낮추시고 굶주리게 하신 다음, 다시 먹이심으로써 참된 생명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 깨달음은 초대 교회 공동체 안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신자들은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며,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들은 빵을 떼며 기도했고, 그 안에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우리가 축복하는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동참하는 것이고, 우리가 떼는 빵은 그리스도의 몸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하나의 빵을 나누며 우리는 하나의 몸이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생명의 빵’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참된 양식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살리기 위해 당신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우리는 미사 안에서 그 생명의 빵을 받아 모십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모신 그리스도의 몸은 우리의 삶을 통해 세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파티마의 벤치에 누워 계신 예수님, 꽃동네의 가난한 이들 안에 계신 예수님, 우리의 일상에서 만나는 가장 작은 이들 안에 계신 예수님을 알아보고 사랑할 때, 우리는 비로소 성체를 제대로 모신 신앙인이 됩니다. 성체는 우리를 변화시키는 사랑이며, 그 사랑은 나눔으로 완성됩니다. 오늘 우리가 받아 모신 생명의 빵이 우리 안에서 살아 움직여,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몸으로 살아가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떼는 빵은 그리스도의 몸에 동참하는 것이 아닙니까 빵이 하나이므로 우리는 여럿일지라도 한 몸입니다. 우리 모두 한 빵을 함께 나누기 때문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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