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묵상ㅣ체험
- 전삼용 신부님_완벽에 덧칠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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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51 최원석 [wsjesus] 스크랩 2026-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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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 예수님! 하루도 또 잘 지내셨죠?
오늘 연중 제10주간 수요일 복음 묵상 함께 나누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신앙생활의 본질을 뒤흔드는 아주 엄중한 선언을 하십니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교회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요즘 현대인들은 하느님의 말씀조차 자기 입맛에 맞게 편집하고 조작하는 아주 위험한 풍조에 빠져 있습니다.
귀에 쓴 약은 뱉고 달콤한 사탕만 삼키려는 것이죠.
많은 이들이 고해소 안팎에서 이렇게 속삭입니다.
"신부님, 시대가 어느 때인데 지옥 이야기를 하십니까?
자비하신 하느님께서 설마 사람을 그런 곳에 던지시겠어요? 지옥은 없습니다.
그리고 이 팍팍한 세상에 십일조가 웬 말입니까?
마음이 중요하지 꼭 물질을 바쳐야 하나요?
화가 날 때는 참지 말고 터뜨려야 정신 건강에 좋습니다."
이것이 바로 요즘 유행하는 가짜 복음의 실체입니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 하느님의 법을 교묘하게
지워버리는 것 말입니다.
하느님을 믿는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는 내가 판관이 되어 하느님의 법을 재판하고 있는 꼴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조작 성향이 초래하는 영적 파국을 너무나 잘 보여주는 문학적 알레고리가 있습니다.
바로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입니다. 독재를 권력을 잡은 돼지들은 자신들의 편의와 탐욕을 채우기 위해, 동물들이 처음에 피로 써 내렸던 위대한 칠계명을 하나씩 교묘하게 수정하기 시작합니다.
"어떤 동물도 침대에서 자서는 안 된다."라는 법을 어기고 자기들이 침대에서 자고 싶어지자, 밤중에 슬그머니 글자 몇 개를 덧붙여 고칩니다.
"어떤 동물도 시트를 깔고 침대에서 자서는 안 된다." 라고 말이죠.
술을 마시고 싶어지자 "어떤 동물도 술을 마셔서는 안 된다."라는 조항 뒤에 "지나치게"라는 말을 슬쩍 끼워 넣습니다.
마침내 그들이 도달한 최종 수정안은 무엇이었습니까?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들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욱 평등하다."라는 기괴한 법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아주 작은 글자 한두 개를 고친 것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그 작은 타협과 조작이 결국 농장 전체를 처참한 노예 지옥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우리 영혼도 똑같습니다.
"이 정도 화는 내도 되겠지.", "이 정도 십일조는 안 바쳐도 하느님이 봐주시겠지."라며 한 자 한 획을 고치기 시작하면, 우리 영혼의 법전은 순식간에 사탄이 지배하는 동물농장으로 변질되고 맙니다.
이것은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완벽한 설계도에 인간의 속된 손을 댈 때 어떤 비극이 일어나는지, 우리는 역사 속의 한 사건을 통해 똑똑히 목격했습니다.
바로 스페인 보르하 성당에서 일어난 예수님 벽화 복원 사건입니다.
가시관을 쓰신 예수님의 고귀한 얼굴을 담은 19세기의 명작 『에체 호모』가 세월이 흘러
조금씩 떨어져 나가자, 히메네스라는 이름의 할머니가 좋은 의도로 붓을 들었습니다.
자기가 직접 예쁘게 고쳐놓겠다는 생각이었죠. 결과가 어땠습니까?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원숭이를 닮은 우스꽝스러운 괴물이 탄생하고 말았습니다.
할머니의 마음은 선의였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내가 이 위대한 작품에 손을 대어 더 낫게 고칠 수 있다'는 무서운 교만이 명작을 처참하게 파괴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율법을 내 입맛대로 수정하려 드는 행위가 정확히 이와 같습니다.
자비라는 이름으로 지옥을 지우고, 형편이라는 이름으로 십일조를 빼버리는 순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얼굴을 원숭이 모양으로 짓밟는 영적 히메네스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율법의 한 자 한 획도 결코 없어져서는 안 되는 것일까요?
율법은 단순한 규칙의 모음이 아니라, 하느님의 본성이자 사랑의 설계도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어에서 가장 작은 글자인 '요드'는 아주 작은 점 하나처럼 보입니다.
획 하나가 삐져나오고 안 나오고에 따라 단어의 뜻이 '하느님'에서 '우상'으로 완전히 바뀌어버립니다.
하느님의 법은 우리를 하느님의 완벽한 모상으로 빚어내기 위한 신성한 틀입니다.
이 틀을 내 육신의 편안함에 맞추기 위해 찌그러뜨리면, 우리는 결코 하느님을 닮은 빛과 소금이 될 수 없습니다.
율법을 조작하는 것은 하느님보다 내가 더 지혜롭다고 믿는 영적 교만이며, 스스로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 혹은 아예 들어가지도 못하는 자로 낙인찍는 자해 행위입니다.
반대로 하느님의 법이라면 그것이 아무리 작고 지키기 고통스러울지라도, 한 자 한 획도 타협하지 않고 철저하게 순명하여 영원한 승리를 거둔 위대한 인간이 있습니다.
바로 영국의 대법관이었던 성 토머스 모어입니다. 국왕 헨리 8세가 가톨릭교회의 결혼 인연을 전면 부인하고 스스로 교회의 수장이 되려 했을 때, 영국의 모든 권력자와 주교들까지 국왕의 뜻에 맞추어 교회의 법을 적당히 수정하고 타협했습니다.
"왕의 결혼 하나 눈감아 준다고 나라가 망하겠느냐, 왕이 교회의 머리가 된다는 서약서에 서명 한 줄만 하면 만사가 편하다."라며 모두가 한 획을 지우고 타협의 붓질을 했습니다.
그러나 토머스 모어는 단 한 줄의 서약도, 단 한 자의 타협도 거부했습니다.
하느님의 법은 인간이 손댈 수 없는 절대적인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는 단두대 위에서 목이 잘리는 참수를 당했습니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융통성 없고 미련하기 짝이 없는 죽음이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세상의 권력 앞에서 하느님의 율법을
단 한 획도 조작하지 않았기에, 인류 역사상 가장 빛나는 양심의 성인으로 영원히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사람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신앙은 내 삶의 형편에 맞추어 하느님의 말씀을 편집하는 뷔페가 아닙니다.
율법의 완벽한 설계도에 내 핑계와 타협이라는 인간의 가짜 붓칠을 더하지 마십시오.
영혼이 침몰할 뿐입니다.
비록 우리가 약해서 자주 넘어지고 다 지키지 못해 피눈물을 흘릴지언정, 말씀의 한 자 한 획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주님, 제가 부족하지만 이 말씀대로 살 수 있도록 은총을 주십시오." 하고 처절하게 매달려야 합니다.그 순명과 경외심을 보시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완전한 자녀로 변화시켜 주시며, 마침내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사람으로 영광스럽게 안아 주실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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