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명연 마태오신부님(빠다킹신부님) 6월 15일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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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15 박양석 [pys2848] 스크랩 2026-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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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5일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과거는 학벌 위주의 사회였습니다. 서울대 나온 판검사, 의사, 대학교수가 최고였습니다. 그러나 직업, 지위, 성실도는 그리 중요하지 않아졌습니다. 그보다 서울의 비싼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것이 성공의 척도이고 명함이 되고 말았습니다. 즉, 명문대를 나오고 대기업을 다니며 전문직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보다, 어느 브랜드 아파트에 사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상화에서 부의 열등감은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남들이 보기에 내가 얼마나 행복하게 보이는가?’
다수가 인정해 주어야 안심합니다. 이렇게 다수에 신경 쓰니 불안은 점점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남의 눈을 신경 써서는 안 됩니다. 특히 세상의 척도를 진실로 믿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보다 주님의 기준을 따라야 합니다. 세상의 기준에는 터무니없이 미치지 않지만,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기준을 따르게 되면, 자신감 있게 살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서 주님께서 워낙 사랑을 강조하셨기 때문에, 세상의 악에 대해 무조건적인 참음과 굴종을 요구하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 아니냐고 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약자의 비굴한 처세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폭력에는 폭력으로, 억압에는 분노로 대응하는 세상의 공식을 깨뜨리시며 자신 있게 사는 법을 가르쳐 주십니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마태 5,39)라고 하십니다. 오른손잡이가 마주 선 사람의 ‘오른뺨’을 치려면 손바닥이 아닌 손등으로 때려야 합니다. 이는 힘 있는 자가 약자에게 가하는 모욕과 멸시였습니다. 이때 ‘다른 뺨’을 돌려 대는 것은 도망가거나 움츠러드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에게 ‘나는 네가 함부로 모욕할 수 없다. 칠 테면 손바닥으로 제대로 쳐라.’라는 인간의 존엄성을 당당히 주장하는 능동적 행위입니다.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 겉옷까지 내주어라.”(마태 5,40) 역시 당당한 모습을 살아야 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 겉옷까지 내주면 어떤 모습이 될까요? 알몸이 되고 맙니다. 가난한 이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 채권자의 탐욕과 부조리한 법정의 민낯을 벌거벗겨 고발하는 것입니다.
“천 걸음을 가지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마태 5,41)
이 구절은 로마 제국의 식민 지배 상황이 배경입니다. 로마 군인은 유다인에게 무거운 짐을 천 걸음 동안 강제로 지고 가게 할 수 있는 징발권이 있었습니다. 억지로 짐을 지고 가면서 속으로 분노를 삭이는 대신, 자발적으로 이천 걸음을 가 주라는 것입니다. 징발의 한계치를 넘어서서 짐을 져줌으로써, 피해자는 힘없는 노예의 자리에서 벗어나 상황의 주도권을 쥐게 됩니다.
약자의 비굴한 처세술이 아닌, 능동적인 모습으로 주님과 함께하는 삶이 됩니다. 세상 기준이 아닌 주님 기준으로 힘차게 세상을 살게 됩니다. 진정한 행복이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과거를 멀리 볼 수 있는 사람일수록 미래도 멀리 볼 수 있다(윈스턴 처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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