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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6년 6월 17일 (수)연중 제11주간 수요일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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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연중 제11주간 수요일

190138 조재형 [umbrella] 스크랩 2026-06-16

한때 서부영화가 인기가 있었습니다. ‘황야의 무법자’, ‘장고와 같은 영화가 있었습니다. 영화의 내용도 인상적이었지만,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특유의 음악입니다. 마차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 황야를 가르는 휘파람 소리, 그리고 긴장감 속에서 울려 퍼지는 기타 선율은 서부영화만의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 시대는 폭력이 많았고, 총으로 문제를 해결하던 거친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시대에도 지켜야 할 최소한의 규칙은 있었습니다. 결투하면 서로 등을 맞대고 일곱 걸음을 걸어간 뒤에 총을 뽑았습니다. 여섯 걸음 만에 먼저 총을 쏘면 비겁한 사람으로 취급받았습니다. 마을에도 암묵적인 질서가 있었습니다. 어른을 만나면 인사해야 했고, 부모에게 효도해야 했으며, 이웃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어야 했습니다. 그런 최소한의 양심과 체면은 남아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나라와 나라 사이의 전쟁에도 규칙이 있었습니다. 선전포고하고, 민간인은 공격하지 않는다는 국제적인 약속이 있었습니다. 물론 현실에서는 그런 규칙이 자주 깨지기도 했지만, 적어도 겉으로는 지켜야 할 명분과 체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세상을 보면 그런 최소한의 체면마저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있습니다. 선전포고도 없이 기습공격을 하고, 민간인 시설을 폭격하며,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되는데도 미안하다는 말조차 하지 않는 현실을 봅니다. 국제사회에 명분을 설명하려 하지도 않고, 오히려 힘이 정의인 것처럼 행동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마치 영화 속 암수와 비수가 난무하는 세상 같습니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시대가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성경도 인간의 욕망과 위선을 숨기지 않습니다. 아합왕은 나봇의 포도원을 원했습니다. 돈을 주겠다고 했고, 다른 포도원을 주겠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은 거짓 재판을 꾸며 나봇을 죽이고 포도원을 빼앗았습니다. 다윗도 충실한 부하 우리야의 아내를 탐했습니다. 자신의 죄를 감추기 위해 우리야를 전쟁터에서 죽게 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아합왕과 다윗이 결국 자신의 죄를 인정했다는 것입니다. 예언자의 말을 통해서라도 양심의 가책을 느꼈고, 하느님 앞에서 회개했습니다. 유다는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습니다. 베드로는 닭이 울자, 밖으로 나가 통곡하며 회개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적어도 죄를 죄로 아는 마음은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시대는 더 무서운 것 같습니다. 잘못 하고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거짓말을 하고도 당당합니다. 욕심과 탐욕을 숨기지도 않습니다. 예전에는 위선과 가식이라도 있었는데, 이제는 그 위선조차 사라지는 시대가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단식과 기도와 자선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종교 행위를 강조하신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신앙이 아니라, 하느님 앞에서 진실한 신앙을 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에게 칭찬받기 위해 기도하지 말고,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자선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숨은 일도 보시는 하느님 앞에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결국 신앙은 겉모습이 아니라 진실함의 문제입니다.

 

엘리야 예언자는 그런 시대 속에서도 하느님의 정의를 외쳤습니다. 아합왕의 거짓과 위선을 꾸짖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엘리야 한 사람만 남겨두지 않으셨습니다. 엘리사가 뒤를 잇게 하셨고, 아모스와 이사야 같은 예언자들을 계속 보내 주셨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회개를 선포하며 예수님의 길을 준비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시대가 어두울수록 더 많은 예언자를 보내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역사는 한 사람의 마라톤이 아니라 이어달리기라고 생각합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위대한 성인과 성녀들만의 신앙이 아니라, 이름 없이 살아가는 평범한 신앙인들이 함께 이어가는 역사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신앙을 전하고, 신앙의 선배가 후배에게 믿음을 전하며, 공동체가 서로를 격려하면서 이어지는 것입니다.

 

2026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은 거창한 능력이 아닙니다. 최소한의 양심을 지키는 것입니다. 정직하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부끄러움을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 앞에서 진실하게 살아가려는 마음입니다. 단식과 기도와 자선도 결국은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신앙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보시는 신앙이어야 합니다. 세상이 점점 냉혹해질수록 우리는 더 따뜻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이 점점 거짓되어 갈수록 우리는 더 진실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이 힘과 욕망만을 말할수록 우리는 양심과 사랑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바로 이 시대의 예언자입니다. 숨은 일도 보시는 하느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아시고, 우리를 진리와 사랑의 길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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