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GOOD NEWS 게시판

검색
메뉴

검색

검색 닫기

검색

오늘의미사 (녹) 2026년 6월 17일 (수)연중 제11주간 수요일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가톨릭마당

sub_menu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190146 박영희 [cornelia2] 스크랩 2026-06-16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마태 5,43-48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레위기 19장 18절의 말씀을 인용하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런데 레위 19,18을 보면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한다”는 말씀은 있어도, ‘원수를 미워해야 한다’는 말씀은 없지요. 그걸 모르실 리 없음에도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자기 자신처럼 사랑해야 할 ‘이웃’의 범주를 ‘내가 좋아하고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으로 좁게 한정지어 생각하는, 그리고 그 범주에 속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사랑을 실천하지 않아도 된다 여기는 유다인들의 잘못된 사고방식을 바로잡으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이웃과 원수를 구분하여 처우를 달리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즉 ‘편애’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그 편협한 마음에서 벗어나 이웃과 원수를 차별 없이, 공평하게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나에게 잘해주고 나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하는 사람은 열심히 노력하여 누군가를 미워하고 원망하는 죄를 짓지 않는 수준까지는 도달할 수 있을지 몰라도,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참된 의로움을 행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하느님께서 몸소 ‘솔선수범’하셔서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똑같이 햇볕을 비춰주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 주시는 ‘공평’하고 ‘완전한’ 사랑을 실천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런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음으로써 참된 의로움에 이르려면, 나 역시 한쪽으로 치우친 ‘반쪽짜리 사랑’으로 만족해서는 안되지요. 나도 모르게 ‘팔이 안으로 굽는’ 부족하고 약한 본성을 극복하여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참된 사랑을 실천할 수 있도록 더 적극적으로,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하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원수를 사랑하는’ 일입니다. 굳은 의지와 결단으로 원수를 나 자신처럼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다보면, 적어도 그를 미워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그를 내 ‘은인’과 같은 수준으로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원수를 미워하지 않는 정도로는, 그렇게 악을 피하는 소극적인 태도로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원수를 미워하지 않는 것을 넘어 사랑하는 데까지 나아갈 때, 악을 피하는 수준을 넘어 선을 실천하는 데까지 나아갈 때, 우리는 비로소 하느님을 닮은 완전한 자녀가 되어 그분 나라에서 참된 행복을 누리기에 합당한 자격을 갖추게 됩니다. 주님은 그저 죄 짓지 말고 ‘무난’하게 살라고 우리를 부르신 게 아니라, 제 십자가를 지고 당신 뜻과 가르침을 따르며 하느님 보시기 ‘좋은’ 모습으로 잘 살라고 부르셨습니다. 주님은 그저 지옥에 가지 말라고 우리를 부르신 게 아니라, 하느님 나라에서 참된 평화와 행복을 누리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런 그분의 마음과 뜻을 헤아린다면 더 이상 ‘반쪽짜리’로 사는 것에 안주하지 말아야겠습니다.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완전한 사랑’을 실천하여 사랑이신 그분을 ‘온전히’ 닮은 존재가 되어야겠습니다. 

 

* 함 승수 신부님 강론 말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1 103 0

추천  1 반대  0 신고  

TAG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로그인후 등록 가능합니다.

0 / 500

이미지첨부 등록

더보기
리스트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