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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6년 6월 18일 (목)연중 제11주간 목요일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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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연중 제11주간 목요일

190153 조재형 [umbrella] 스크랩 2026-06-17

반가운 기사를 보았습니다. 문정현 신부님의 사제서품 60주년과 문규현 신부님의 사제서품 50주년에 관한 기사였습니다. 형제 사제인 두 분은 서로 다른 길을 걷기보다 오히려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살아오셨습니다. 한 분은 인혁당 사건의 피해자들과 함께하면서 옥살이하셨고, 다른 한 분은 임수경 양과 함께 군사분계선을 넘으면서 옥살이하셨습니다. 제주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현장에도, 용산 철거민의 거리 성당에도, 세월호의 팽목항에도 두 분은 늘 약한 이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세상은 편안한 길을 선택할 수도 있었을 텐데 왜 그렇게 힘든 길을 가느냐고 묻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두 분은 말보다 삶으로 답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기도의 문장을 가르쳐 주신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이 기도는 단순한 암송이 아닙니다. 삶의 방향입니다. 하느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면, 우리는 아픈 사람들의 눈물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억울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모른 척할 수 없습니다. 굶주린 사람의 배고픔과, 외로운 사람의 눈물과, 힘없는 사람의 절망을 함께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두 분, 노 사제는 바로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주님의 기도를 입으로만 바친 것이 아니라 몸으로 살아냈습니다.

 

오늘은 두 분 신부님의 서품 기념을 축하하면서 제가 2009년에 썼던 글의 일부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17년 전의 글입니다. “어제, 저녁에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문규현 신부님께서 단식 도중 쓰러지셔서 병원에 입원했지만, 중태에 빠졌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문 신부님은 전주교구 신부님이십니다. 이제 나이가 60이 넘었습니다.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쾌유하시어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문 신부님에 대한 첫 번째 기억은 임수경 양과 함께입니다. 남과 북이 분단된 이후, 군사분계선을 넘어서 온 최초의 민간인들이었습니다. 문 신부님은 혼자서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올 임수경 양을 생각하였고, 임수경 양이 받아야 할 수많은 고통과 고난을 생각하였고, 착한 목자의 심정으로 임수경 양과 함께 돌아오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 글에서 저는 또 이렇게 썼습니다. “문 신부님은 성령의 관심사를 생각하였습니다. 생명과 평화를 사랑하였고, 불의와 폭력에 의해 희생당하는 이들도 하느님의 사랑받는 이들이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육의 관심사는 죽음이고, 성령의 관심사는 생명과 평화입니다.” 세상은 힘과 성공과 효율을 이야기합니다. 더 높이 올라가야 하고, 더 많이 가져야 하고, 더 강해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생명과 평화를 말씀하십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삶의 가장자리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전쟁과 폭력으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도 있고,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민자의 삶도 그렇습니다. 낯선 땅에서 언어와 문화의 벽을 견디며 살아갑니다. 겉으로는 웃고 살아도 마음속에는 말 못 할 외로움과 두려움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기도는 단순한 종교적 문장이 아닙니다.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라고 기도한다면 굶주린 이를 외면하지 말아야 하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라고 기도한다면 미움과 원망을 조금씩 내려놓아야 합니다.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라고 기도한다면 내 욕심보다 하느님의 뜻을 먼저 찾으려 해야 합니다. 오늘 독서에서 엘리야와 엘리사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스승의 길이 제자에게 이어집니다. 신앙은 책으로만 이어지지 않습니다. 삶으로 이어집니다. 부모의 믿음이 자녀에게 삶으로 전해지고, 사제의 믿음도 결국 삶으로 전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노년의 두 사제를 보며 감동하게 됩니다. 높은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낮은 자리로 내려갔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사제로 살아오면서 자주 부족함을 느낍니다. 강론은 할 수 있지만 삶으로 증언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을 느낍니다. 때로는 외면하고 싶고, 침묵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은 다시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는 주님의 기도를 어떻게 살고 있느냐우리도 주님의 기도를 삶으로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말로만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소서.”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사랑과 작은 희생으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면 좋겠습니다. 그럴 때 우리의 삶도 누군가에게 위로와 희망이 될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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