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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도서ㅣ출판물
[생활성서사] 양들이 있어 나는 걸었네

2097 생활성서사 [ibiblelife] 스크랩 09:06

 

 

* 양들이 있어 나는 걸었네 - '땀의 순교자' 최양업 신부 바로 알기  [구입하기]


하느님께 희망을 둔 ‘땀의 순교자’ 

최양업 신부의 삶과 마주하는 자리

조선 천주교회의 두 번째 사제, 12년 동안 조선 각지를 누비며 교우들을 위로하고 신앙을 지켜 준 사목자, 박해의 한가운데서도 하느님을 향한 희망을 잃지 않았던 ‘땀의 순교자’ 최양업 신부의 생애와 업적을 한눈에 담은 책이다. 도표와 삽화, 지도 등을 활용하여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사랑과 믿음의 모범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도록 이끈다. 

 

“(이 책은) 삶과 신앙, 그리고 그분께서 남기신 희망의 의미를 독자들이 더욱 쉽고 깊이 만날 수 있도록 이끌어 줄 것입니다. 오늘날 신앙의 어려움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도 하느님 안에서 희망의 불꽃을 지켜 주는 작은 등불이 되기를 바랍니다.” 

 - 김종강 대주교의 추천의 글


 

조선의 두 번째 사제 

최양업 신부를 책으로 만나다 

‘낮에는 백 리를 걷고, 밤에는 고해를 듣는’ 고된 일정으로, 조선의 교우촌을 방문하며 7천 리 이상을 순방했던 ‘땀의 순교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그가 평생 걸었던 거리는 무려 9만 리가 넘는 것으로 추정한다. 그가 그렇게 오래도록, 먼 길을 걸을 수 있었던 것은 사제의 성사를 바라는 조선 곳곳의 교우들을 위해서였다. 생명의 위협이 일상이었던 박해 시대, 최양업 신부가 그 멀고 험한 길을 걸을 수 있었던 것은 목자의 손길을 기다리는 ‘양들’을 위함이 아니었을까. 

 『양들이 있어 나는 걸었네』는 조선 최초의 신학생이자 두 번째 사제, 귀국 후에는 동시대 유일의 조선인 사제로 12년간 조선 땅 곳곳을 다니면서 교우들을 방문하며 성사를 집전하고 세례를 주었던 최양업 신부의 생애와 업적을 담은 책이다. 최양업 신부가 스승 선교사들에게 남긴 서한과 현대의 연구 자료 등을 바탕으로 그의 삶을 톺아보고, 현대의 연구 자료 등을 활용해 그 업적의 위대함을 알려 준다. 

 

최양업 신부는 1861년 6월 15일에 선종할 때까지, 이 모든 지역을 맡아 사목 순방 활동을 했다. 당시 조선 전체에서 새로 입교한 예비 신자와 영세자 중 3분의 1에서 많게는 절반 가까운 수가 최양업 신부가 관할했던 지역의 사람들이었다. 실로 놀라운 활동 범위였다고 할 수밖에 없다.

- 2장 최양업 신부의 생애

 

최양업 신부를 알려 주는 

쉽고 편한 정보와 도표 및 삽화들 

최양업 신부의 생애와 업적 등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양들이 있어 나는 걸었네』는 주어진 자료들을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도표와 삽화, 지도 등을 적절히 사용했다. 최양업 신부의 가계도와 연표는 물론, 근래의 연구 성과들이 반영된 유학로의 여러 가설을 표시한 지도, 최양업 신부의 입국로 탐색, 최양업 신부와 연관된 교우촌 분포를 표시한 지도 등은 관련 내용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한다. 

  또한 이 책의 부록 격인 ‘더 알아보기’에서는 최양업 신부와 관련된 정보들을 제공한다. 선종지에 대한 여러 이견들과, 최양업 신부가 본 조선 사회에 관한 정보들은 기존의 독자들이 알고 있던 최양업 신부에 관한 정보를 더욱 심화시켜 줄 것이다. ‘최양업 신부의 숨결을 찾아서’는 최양업 신부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다락골, 배티, 배론, 수리산 성지를 간략한 정보와 사진 등으로 소개한다. 

 

‘배나무 고개梨峙’라는 뜻의 배티는 돌배나무가 많은 고개라서 붙은 이름이다. 배티 성지는 박해를 피해 산속으로 스며든 천주교 신자들이 일군 교우촌이자, 한국 가톨릭 신학교의 뼈대가 세워진 곳이다. … 최양업 신부는 1853년 여름부터 이곳에 머물며 5개 도에 흩어진 교우촌을 순방하는 한편, 틈틈이 신학생들을 지도했다. 사목 순방을 끝낸 9-10월에는 이곳 사제관에서 여러 저서를 집필하기도 했다. 

 - 2장 최양업 신부의 생애

 

사제이자 통번역가, 교육자 

우리가 몰랐던 최양업 신부의 업적 

부제품을 받고 홍콩에 머물던 최양업은 페레올 주교가 프랑스어로 작성한 『기해·병오박해 순교자들의 행적』 중, 기해박해 순교자 73인의 행적을 라틴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맡았다. 이 자료는 교황청으로 전해졌고, 순교자 82위가 모두 ‘가경자’로 선포되었다. 최양업은 그 기쁨을 편지로 남기기까지 했다. 훗날, 가경자 82위 중 79위는 병인박해 순교자 24위와 함께 103위 순교 성인으로 선포되었다. 

  조선에 입국한 후에는 한자를 모르는 백성들을 위해 한글로 ‘천주가사’와 교리서를 지어 교리 교육의 토착화를 위해 힘썼다. 또한 선교사들이 운영하던 신학교를 맡아서 관리하면서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세 신학생을 페낭의 신학교로 보내 신학 교육을 받게 했다. 최양업 신부는 그들이 조선 사회의 폐단인 신분제를 넘어 하느님 자비의 아들이 되어 교우들을 위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신경을 썼다. 

 

최양업 신부는 배티 신학교에서 페낭으로 유학을 떠났던 세 명의 조선 신학생들에게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였다. 그들에게 해마다 편지를 보내며, 고독하고 외로운 처지에 있을 그들을 위로해 주었다. 한편, 서울로 상경할 일이 있을 때면, 배론 신학교에 들러 국내에서 수학하는 신학생들에게도 지속적인 관심을 보이며 신학생 양성에 힘을 보탰다.

- 3장 최양업 신부의 영성과 업적

 

가경자 최양업 신부의 

시복 시성을 위한 한국 교회의 움직임 

최양업 신부는 마카오 유학 시절 서양의 학문과 문물을 접하면서 조선 사회에도 선진 문화를 적극 수용하고자 했다. 그는 스승 선교사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식수의 수질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물었다. 열악했던 여성 교우들의 삶은 그의 편지에 자주 등장하는 내용 중의 하나였으며, 교리 교육을 위해 한글 활용을 제안하고 실천한 것은 이미 앞에서 다룬 바 있다. 

  1996년 한국 천주교회가 최양업 신부의 시복 시성을 위해 노력해 온 이후, 현재 최양업 신부는 ‘가경자’의 위에 올라 있다. 시복과 시성을 위한 과정 중 기적 심사에서 문화적 차이에 의한 어려움으로 한 차례 고배를 마셨다. 그러나 최근 의학적 기적 심사의 첫 단계를 통과해 신학위원회와 추기경 및 주교 회의의 심의를 앞두게 되었다. 최양업 신부의 시복과 시성은 오늘날 전 세계에 한국 천주교회의 위상을 높이고, 최양업 신부의 성덕과 삶의 숭고함을 알리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최양업 신부의 시복·시성 추진은 한국 천주교회 안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한국 교회의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 토마스 신부는 증거자로서 모든 사제들의 존경을 받고 있으며, 많은 신자들이 그의 시복과 시성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는 ‘한국의 바오로 사도’이자 ‘땀의 순교자’로 불리기 때문이다. … 최양업 신부의 영웅적 성덕과 삶은 한국 교회뿐 아니라 아시아 교회 사제 영성의 귀감이자 장차 이루어질 선교의 중요한 원동력이 될 것이다.

- 4장 최양업 신부의 시복 시성 추진 과정과 전망


[책속에서]

최양업 신부님께서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부르심과 기쁨을 조선 곳곳에 다니시며 신자와 비신자들에게 전하고 몸소 보여 주셨습니다. 거센 시대의 풍파와 격변하는 사회 속에서 두려움에 흔들리던 교우들에게, 하느님께 의탁하며 주님의 말씀 안에서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도록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 주셨습니다.

 - 추천의 글, 6쪽

 

한국 천주교회는 최양업 신부의 시복과 시성을 위해 그의 삶과 영성을 지속적으로 현양하며, 그 정신을 본받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 결과 2016년 교황청은 최양업 신부를 가경자可敬者로 선포하였고, 2026년에는 시복을 위한 기적 심사의 첫 단계인 의학자문위원회의 승인이 이루어졌다.   - 최양업 신부의 간추린 일생, 16쪽

 

박해의 한복판에서도 결코 희망을 놓지 않았던 최양업 신부의 확신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변치 않는 이정표가 되어 줄 것입니다. 모쪼록 이 책이 독자 여러분의 마음속에 하느님을 향한 굳건한 신뢰의 씨앗을 심어 주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최양업 신부가 남긴 사랑의 발자국을 따라 걷는 이 길이, 여러분의 삶 속에서도 고요하고도 강렬한 영적 울림으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 여는 글, 25쪽

 

초대 조선 대목구장(교구장)으로 조선 땅에 들어오려 부단히 노력했으나 끝내 중국에서 선종한 브뤼기에르 주교, 그의 뜻을 이어받아 조선에 입국해 김대건, 최양업, 최방제 세 신학생을 선발한 모방 신부, 마지막으로 조선에 들어와 사목과 신학생 양성에 힘쓰다 모방 신부와 함께 순교한 2대 조선 대목구장 앵베르 주교의 이야기이다. 이들이 초기 조선 교회와 최양업 신부에게 미친 영향을 이들의 행적을 중심으로 간단히 소개한다.  - 1장 부르심의 씨앗, 28쪽


 

 

 

 

 

 

추천의 글  하느님의 빛과 희망을 길 위에서 전한 사제 │김종강 대주교│  4

추천의 글  최양업 신부님을 다시 한번 생각하며 │조한건 신부│  8

최양업 신부의 간추린 일생  12

최양업 신부 가계도  17

최양업 신부 연표  18

여는 글  하느님께 이제와 항상 영원히 두는 희망  20

 

1장 부르심의 씨앗  26 

브뤼기에르 주교와 조선 대목구 설정  29

모방 신부의 조선 입국과 신학생 선발  34

앵베르 주교의 조선 입국과 사목  37

더 알아보기 순교자 집안의 맏아들 최양업  40

최양업 신부의 숨결을 찾아서 다락골 성지  42

 

2장 최양업 신부의 생애  46 

어린 시절과 가족  48

신학생 선발부터 부제 서품까지  51

조선 입국 시도  64

사제 수품과 만주 선교  79

국내 선교 활동과 선종  84

더 알아보기 최양업 신부 선종지에 관한 다양한 구전  122

최양업 신부의 숨결을 찾아서 배티 성지  124

 

3장 최양업 신부의 영성과 업적  128

순교 영성과 선교 영성  130

덕행  140

순교 행적 조사와 저작물  144

조선 교구 신학생 양성  156

한국 사회에 끼친 영향  168

더 알아보기 최양업 신부가 바라본 조선 사회  172

최양업 신부의 숨결을 찾아서 배론 성지  174

 

4장 최양업 신부의 시복 시성 추진 과정과 전망  178

103위 순교 성인과 124위 순교 복자의 탄생 과정  180

최양업 신부의 시복 시성 추진 과정과 전망  187

더 알아보기 최양업 신부와 가까웠던 선교사들  198

최양업 신부의 숨결을 찾아서 수리산 성지  200

 

맺는 글  7천 리 길 위에 핀 들꽃  202

참고 문헌 및 사진 출처  204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시복 시성 기도문  208


 

글쓴이 류한영

청주 교구 사제로 1987년 사제 서품을 받았으며, 1996년 로마 교황청립 산타 크로체 대학에서 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9년부터 본격적으로 최양업 신부 연구와 관련 사목 활동을 시작했으며, 그해부터 2006년까지 배티 성지 주임, 2009년까지 양업교회사연구소 관장을 역임했다. 2001년부터 2019년까지는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총무 겸 시복 시성 청원인으로서 최양업 신부 시복 시성 추진 과정의 실무를 맡아 보았다. 

2012년부터 2020년까지 천주교중앙협의회 관리국장을 역임했고, 황간, 옥천, 문화동, 연수동, 사천동 등 여러 본당에서 주임 신부로도 사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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