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명연 마태오신부님(빠다킹신부님) 6월 22일 연중 제12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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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24 박양석 [pys2848] 스크랩 2026-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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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22일 연중 제12주간 월요일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잘 알 것입니다. 이 작품에 대해 생각나는 유머가 있습니다. 이 생각하는 사람이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느냐는 질문입니다. 그 답은 “내 빤스 어디 있지?”라고 해서 크게 웃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물론 진짜 로댕이 그런 의도로 이 작품을 만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선 이 작품의 자세는 너무나 불편합니다. 오른팔을 꺾어 턱을 괴고 있는 것도 그렇지만, 오른 팔꿈치를 왼쪽 무릎 위에 올리는 것도 너무 불편합니다. 한 번 이 자세를 취해 보십시오. 아마 오랫동안 같은 자세로 있기 힘들 것입니다. 로댕은 지옥으로 끌려 들어가는 사람을 보면서 자신의 삶과 운명에 대해 생각하는 작품을 만든 것이었습니다. 이 불편한 생각을 불편한 자세로 표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미술에 대해 잘 모르지만, 설명을 들으니 이 작품이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하느님에 대해서도 그렇지 않을까요? 우리는 하느님을 온전하게 알지 못합니다. 따라서 하느님을 알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알면 알수록 새롭게 자기에게 다가오시는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알려는 노력보다 그냥 자기 뜻이 하느님의 뜻인 양 쉽게 판단하고, 그 뜻을 가지고 나의 이웃을 함부로 판단, 단죄하기도 합니다. 이런 모습을 하느님께서 원하실까요?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마태 7,1)
여기서 심판한다는 것은 선악을 분별하는 정당한 비판이나 판단 능력을 포기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상대방의 동기나 영혼의 상태까지 자기가 다 아는 것처럼 단정 짓고, 그를 단죄하는 교만한 태도를 금하시는 것입니다. 심판은 오직 하느님께만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너희가 심판하는 그대로 너희도 심판받고,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받을 것이다.”(마태 7,2)라고 하십니다.
타인을 향해 들이대는 그 엄격하고 냉혹한 잣대가 결국 하느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재는 잣대가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타인에게 자비가 없는 자는 하느님의 자비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마태 7,5)라고 하십니다. 다른 사람을 바르게 돕고 교정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성찰과 회개를 통해 자기의 죄를 먼저 제거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나의 이웃과의 관계에 있어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아야 하겠습니다. 쉽게 판단하고 단죄하는 모습보다 먼저 자기 성찰과 회개를 통해 하느님의 뜻을 살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느님의 자비 안에 머물 수 있게 됩니다.
오늘의 명언: 우리는 익숙해진 생활에서 쫓겨 나면 절망하지만, 실제는 거기서 새롭고 좋은 일이 시작되는 것이다. 생명이 있는 동안은 행복이 있다(톨스토이).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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