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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190268 박영희 [cornelia2] 스크랩 2026-06-24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루카 1,57-66.80 "아기는 자라면서 정신도 굳세어졌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날 때까지 광야에서 살았다."

 

 

 

 

오늘은 세례자 요한의 탄생 대축일입니다. ‘요한’이라는 이름은 그가 태어난 지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을 때 받은 이름입니다. 보통은 그 집안의 전통과 정체성을 상징하는 ‘가문의 이름’을 받곤 했지요. 부모가 자식의 이름을 지어준다는 건 그를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자식이 그 이름을 받아들이는 건 부모가 자신에게 바라는 뜻에 순명하며 그대로 살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자식은 아버지 어머니 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 그렇게 하여 부모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살아갑니다. 그런데 즈카르야와 엘리사벳의 아들은 ‘요한’이라는, 하느님께서 특별히 지어주신 완전히 새로운 이름으로 할례를 받습니다. 오늘날 가톨릭 교회의 전통에서 본다면 세속의 이름 없이 ‘세례명’만 받은 것입니다. 그렇게 요한은 태어날 때부터 하느님께 온전히 봉헌된, 그분의 뜻을 이루기 위해 그렇게 하여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노력하는 ‘나지르인’으로 살아갑니다.

 

그런 요한과 우리 사이에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세례를 통해 하느님께 봉헌되었고, 그분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면서 세례명이라는 특별한 이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주님의 기도 때 청하듯이 ‘하느님 아버지의 이름이 이 세상에서 거룩히 빛나시도록’, ‘하느님의 뜻이 그저 하늘에만 머무르지 않고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도록’ 열심히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 내가 얼마나 노력하는가에 따라, 내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에 얼마나 합당한 사람인지가 드러나게 되지요. 한편, 오늘 복음의 마지막에서는 세례운동을 시작하기 전까지 요한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기는 자라면서 정신도 굳세어졌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날 때까지 광야에서 살았다.” 요한이 광야에서 살았다는 건 그가 하느님의 부르심에 즉시 응답하기 위해 세속과는 거리를 두고 살았다는 뜻입니다. 그 ‘거리두기’를 통해 그는 탐욕과 집착에 휘둘리지 않고 굳센 정신을 지닐 수 있었지요.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비의 손길로 그런 요한을 따뜻하게 보살펴 주십니다. 요한이라는 이름 안에 담긴 ‘하느님의 자비’가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습니까? 세상과 거리두기를 하기는 커녕 ‘세상에 속한’ 모습으로, 과도한 탐욕과 집착에 휘둘리며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느님의 부르심에 두 귀를 막은 채, ‘당신께서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라며 그분을 밀어내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느님이, 신앙생활이 밥 먹여주느냐’는 배은망덕한 소리로 하느님 가슴에 대못을 박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런 상태로는 나를 보살펴주시는 하느님의 손길이, 나를 좋은 길로 이끄시는 그분의 섭리가 보이지 않기에 슬픔과 절망의 어둠 속을 헤매게 될 뿐입니다. 그러니 내가 주보로 삼은 성인의 모범을 본받아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겠습니다. 

 

* 함 승수 신부님 강론 말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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