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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6년 6월 26일 (금)연중 제12주간 금요일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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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조명연 마태오신부님(빠다킹신부님) 6월 26일 연중 제12주간 금요일

190284 박양석 [pys2848] 스크랩 2026-06-25

2026년 6월 26일 연중 제12주간 금요일

 

 

낙관주의자가 잘살까요? 비관주의자가 잘살까요? 아마 낙관주의자가 잘 살 것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맞습니다. 그들이 훨씬 더 편안한 삶을 삽니다. 그러나 어떤 낙관주의자냐에 따라 다르다고 합니다.

 

첫 번째 유형은 전망이 불확실해도 세상이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들은 변화를 시도하기에 희망을 품게 되고 실제로 진보하게 됩니다. 그런데 두 번째 유형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세상의 불행이 있지만 자기에게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닥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확률의 법칙에서 자기들에게는 예외라고 믿는 것입니다. 기후, 환경 문제가 심각하다고 하지만, 자기에게는 그 피해가 도망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변화와 진보는 있을 수 없습니다.

 

첫 번째 유형인 변화를 지향하는 낙관주의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세상의 변화와 자기 변화를 위해 힘쓰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주님께서 무엇이든 다 해 주리리라는 낙관주의자가 아니라, 주님의 일을 함께하려는 그래서 세상에 하느님 나라가 완성하는 데 일조할 수 있는 낙관주의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 시대의 유다인들은 두 번째 유형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선택된 백성이고, 그래서 무조건 구원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 하느님의 벌을 받는 사람은 예외였습니다. 이들을 무조건 거부하고 멀리해야 부정해지지 않고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물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나병 환자가 나타났습니다.

 

나병은 하느님의 징벌이자 율법적 부정함으로 여겼기에 마을 밖에서 격리되어 살아야 했고, 사람들이 오면 “부정한 사람”이라고 외쳐서 사람의 접근을 막아야 했습니다. 그런 그가 수많은 군중을 뚫고 예수님께 다가선 것입니다.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행동이고, 예수님께 온 희망을 두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마태 8,2)

 

예수님께 자기의 모든 것을 맡기는 태도를 볼 수 있습니다. 이에 직접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십니다. 깨끗한 사람이 부정한 것에 닿으면 똑같이 부정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나병 환자에게 손을 대셨을 때, 부정이 예수님을 전염시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거룩함과 생명이 나병 환자의 부정함을 씻어버렸습니다.

 

굳이 손을 대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랫동안 가족에게도 버림받고 누구의 따뜻한 손길도 느껴보지 못했을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신 것이 아닐까요? 이렇게 주님께 희망을 두고 나아가는 사람을 절대로 주님께서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도 이 나병 환자처럼 변화를 지향하는 낙관주의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명언: 성공이 끝은 아니며, 실패가 치명적이지도 않다. 중요한 것은 계속 나아갈 용기다(윈스턴 처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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