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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6년 6월 27일 (토)연중 제12주간 토요일많은 사람이 동쪽과 서쪽에서 모여 와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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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이병우 신부님 묵상

190318 최원석 [wsjesus] 스크랩 11:32

김건태 신부님_예수님의 감탄

복음을 읽으면서 우리는 일반적으로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 또는 몸짓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쏟으나, 그분의 감성이나 감정, 곧 그분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움직이는 모든 것에 대해서는 언급이 그리 많지 않아 지나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아마도 복음 저자들이 이 부분을 기록으로 남기는 데는 신중함을 기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 말씀은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감탄하셨다.” 하는 문구를 분명히 건네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진하게 움직이신 것입니다.

 

예수님께 일어난 이 감탄이라는 감정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먼저, 백인대장이 표현한, 심오하고 온전한 신앙고백을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백인대장은 자기 자신이나 가족이 아니라, 흔히 사람 취급도 안 했던 ‘종’의 치유를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예수님께 다가와 청합니다: “주님, 제 종이 중풍으로 집에 드러누워 있는데 몹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신구약성경의 치유 이야기를 통틀어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합니다. 백인대장의 인간성, 고통받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신분을 고려하지 않고 돕고자 하는 인간다운 마음이 읽히는 대목입니다. 이 인간성을 읽으시고 예수님이 “내가 가서 그를 고쳐주마.” 하고 응답하셨을 때, 우리는 이 인간적 인대장이 참 신앙인의 모습까지 보여주고 있음을 확인합니다: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감탄으로 이끈 결정적 요인은 이 백인대장이 ‘이방인’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적이 없다.” 이 사람은 이스라엘의 신앙에 따른 교리교육 과정을 거친 적도 없고, 성경은 물론 참 하느님이신 ‘야훼 하느님’의 존재를 알지도 못했던 사람입니다. 동족 로마인이 아니라 유다인이었던 예수님 안에서 인격적인 구원자의 모습을 발견하고 즉각 믿어 고백함으로써 종의 치유를 선사 받기에 이른 사람입니다: “가거라, 네가 믿은 대로 될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의 상속자”로 자처하던 사람들이 아니라, “동쪽과 서쪽에서 모여 온 많은 사람”이 “하늘 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임을 선포하십니다. 민족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나아가 종교가 다르더라도, 백인대장처럼 참된 인간성을 바탕으로 한 참된 믿음만 있으며 구원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복음을 선포하십니다. 한편, 오늘 예수님 곁에서 그분의 말씀을 두 귀로 직접 듣고, 그분의 행적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한 제자들은 예수님의 뒤를 이어 이 복음을 “동쪽과 서쪽”으로 전파해, “많은 사람”이 (성체를 모시기에 앞서) “주님, 제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 하고 외치며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주어진 사명을 성실히 수행해 나갈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이방인 백인대장의 청원과 신앙고백을 접하시고는 감탄의 마음을 보여주십니다. 아름답고 선한, 인간적인 모든 것 앞에서 감탄이라는 감정을 숨기지 않으십니다. 더욱이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적이 없으셨으니” 당연한 감정일 것입니다.

 

이미 세례를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자녀다운 삶을 통하여 언제 어디서든 하느님 아버지를 감탄하게 해드려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말과 행동, 나아가 우리의 삶이 가족들과 이웃들에게 감탄의 대상이 될 수 있도록 힘쓰는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 백인대장의 종과 베드로 장모의 치유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이방인인 백인대장의 놀라운 믿음을 본다. 그는 예수님께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8절)라고 고백한다. 이는 단순히 겸손한 표현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 자체가 생명을 주고 치유한다는 믿음의 고백이다. 성 치프리아노는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약속일 뿐 아니라, 실현이다. 그분의 말씀은 곧 능력이다.” 백인대장은 이를 직관적으로 깨닫고 예수님께 절대적 신뢰를 드린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칭찬하시며, 이스라엘 안에서도 이만한 믿음을 본 적이 없다고 하신다.(10절) 이는 하느님의 구원이 특정 민족이나 조건에 묶이지 않고, 믿음을 통해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보편적 구원의 선언이다. 

 

백인대장은 자신의 종을 위해 예수님을 찾아왔다. 당시 사회에서 종은 하나의 도구처럼 여겨졌지만, 그는 종의 고통을 자신의 문제처럼 여기며 예수님께 간청한다. 이는 곧 믿음이 사랑으로 드러날 때 참된 믿음이 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는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갈라 5,6) 백인대장의 믿음은 단순한 이론적 신념이 아니라, 사랑으로 드러난 신앙이었기에 예수님께 칭찬을 받은 것이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의 장모를 치유하신다. 그리고 복음은 “부인은 일어나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15절)라고 전한다. 치유의 은총은 곧 봉사로 이어진다.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렇게 말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은총이 봉사 안에서 다시 선물로 흘러나가는 삶이다.”(Apostolic Letter Novo Millennio Ineunte, 2001, 49항 요약) 은총은 우리 안에 머무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반드시 사랑과 봉사로 흘러나가야 한다. 

 

마태오 복음은 이 모든 치유 사건을 이사야 예언의 성취와 연결한다. “그는 우리의 병고를 떠맡고 우리의 질병을 짊어졌다.”(17절; 이사 53,4)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치신 것은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십자가의 구원을 미리 드러낸 사건이다. 교리서도 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그리스도의 동정은 인간의 모든 고통을 당신 안에 품으시고 십자가에서 짊어지실 구속의 사랑을 보여 준다.”(1503, 1505항 참조)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세 가지를 가르친다. 1. 믿음의 겸손: 주님의 말씀 한마디에 전적으로 신뢰하는 태도, 2. 사랑으로 드러나는 믿음: 백인대장처럼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문제로 여기는 신앙과 3. 은총은 봉사로: 베드로 장모처럼 치유의 은총을 받은 후 곧바로 봉사로 나아가는 삶이다. 우리도 이방인이었던 백인대장의 믿음을 본받고 베드로 장모의 봉사처럼 주님을 신뢰하며, 은총을 받은 즉시 사랑과 봉사로 응답해야 한다. 

 

이병우 신부님_"가거라. 네가 믿은 대로 될 것이다."(마태8,13)

 

'죄인들의 피난처이신 주님!'

 

오늘 복음(마태8,5-17)은 예수님께서 '백인대장의 종을 고치시는 말씀'과 '베드로의 병든 장모를 고치시는 말씀'과 '많은 병자를 고치시는 말씀'입니다.

 

유다인들이 죄인 취급하고 있었던 로마 군대의 장수인 한 백인대장이 예수님께 다가와 도움을 청합니다. 중풍으로 드러누워 있는 자기 종의 처지에 대해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가서 고쳐 주마."(마태8,7) 하시자, 백인대장이 대답합니다.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하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마태8,8)

 

이 말을 들으시고 예수님께서는 감탄하시며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이렇게 이르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많은 사람이 동쪽과 서쪽에서 모여 와, 하늘 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마태8,10-11)

 

이방인인 한 백인대장의 믿음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거라. 네가 믿는 대로 될 것이다."(마태8,13) 바로 그 시간에 그의 종이 낫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열병으로 드러누워 있는 베드로의 장모와 앓는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십니다.

 

당시 바리사이나 율법 학자들과 같은 기득권 세력들은 병든 사람들을 모두 죄인 취급했습니다. 병을 죄의 결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많은 병자들이 예수님께로 몰려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당신께로 몰려오는 모든 병자들을 고쳐 주십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의 피난처요, 죄인들의 구원자'가 되셨습니다.

 

나도 백인대장의 믿음이 되어 봅시다!

죄인인 나도 피난처요 구원자이신 예수님께로 나아갑시다!

그래서 다시 부활합시다!

 

"그는 우리의 병고를 떠맡고, 우리의 질병을 짊어졌다."(이사53,4)

 

(~ 시편30,13)

 

우리농 이병우 루카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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