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묵상 에세이 2부> 잠든 영혼을 깨우시는 성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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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35 박소영 [b38927] 스크랩 2026-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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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에세이 2부>
✦ 잠든 영혼을 깨우시는 성모님
2026년 2월 25일, 메주고리예 성모님께서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이 은총의 시간에 나는 다시 너희를 부른다.
너희의 삶을 하느님께 봉헌하여라.
그분께서 너희를 부활로 이끄시도록,
너희의 개인적인 회심을 통하여.
자녀들아,
하느님께서는 너희 가까이 계시며
너희의 기도를 들어주신다.
그러나 너희는 잠들어 있다.
그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너희를 깨우고,
봄꽃처럼 거룩함으로 빛나게 하려고.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교회 인가, 출처: 평화의 모후 선교회)
성모님께서는 우리가 영적으로 잠들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잠에서 우리를 깨우기 위해 하느님께서 당신을 보내셨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과연 '잠'이란 무엇일까요?
예전 저는 구직을 위해 일자리 사이트를 찾아보며 시간을 보내다가 갑자기 강한 졸음이 밀려와 더 이상 화면을 볼 수 없었던 체험이 있습니다. 그때 저는, "주님께서 쓸데없는 일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라고 하시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잠시 쉬곤 했습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다시 기도와 복음 말씀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회사에 다니던 시절에도 비슷한 체험이 있었습니다. 단순한 피곤함 때문이 아니라 어느 순간 눈을 뜨고 있을 수 없을 정도의 졸음이 밀려왔습니다. 당시에는 이유를 알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주님께서 당신께로 부르고 계셨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메시지 「93. 완전한 위로자들」에서 잠의 의미를 분명하게 설명하십니다.
(93. 완전한 위로자들,11)
"오늘날에도 잠자고 있는 까닭이 무엇이냐?"
그리고 곧바로 그 답을 알려 주십니다.
(93. 완전한 위로자들,11-12)
"(...) 너희가 사로잡혀 압도당하곤 하는 활동이란 것이 흔히는 잠이기 십상이다.
또한 세상에 영합하여 그 공감과 환영과 이해를 받으려고 애쓰며 사는 너희의 태도도 잠이다. 인성(人性)에서 나오는 그런 전부가 너희를 짓누르는 잠이다."
우리는 흔히 바쁘게 살면 깨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모님께서는 오히려 그 반대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일에 몰두하고, 성공과 인정에 집착하고, 자기 계획과 자기 뜻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상태가 바로 영적인 잠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든 영혼은 반드시 예수님과 멀어지게 됩니다. 기도가 줄어들고, 성사 생활이 약해지며, 점점 세상의 가치관을 따르게 됩니다. 결국 잠이 깊어질수록 예수님과 교회를 떠나게 됩니다.
그래서 성모님께서는 다시 물으십니다.
(93. 완전한 위로자들,13)
"오늘날에도 기도하며 깨어있고자 하는 내 아들들은 어디에 있느냐?: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여라!"(마태 26,41)
교회로서는 새로운 고뇌의 시대인 이때, 고통받으며 깨어있고자 하는 내 아들들은 어디에 있느냐?: "마음은 간절하나 몸이 말을 듣지 않는구나!" (마태 26,41)(갈라 5,17 참조)
이 질문은 오늘 우리 모두에게 던지시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잠에서 깨어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단순히 더 많은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의 뜻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뜻으로 돌아서는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는 「회개의 길」에서 회개의 첫 단계가 자기 부정이라고 말씀하십니다.
(260. 회개의 길,3)
"첫째 단계는 자기를 버리고 부정하는 것이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뜻을 이루고 싶어 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성공을 얻고 싶어 하고, 인정받고 싶어 하며, 자신의 계획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다른 길을 보여 주십니다.
성녀 파우스티나 역시 이렇게 기록합니다.
(성녀 마리아 파우스티나 코발스카, 일기 456)
"이제 나는 우리 영혼을 하느님께 가장 가까이 일치시키는 것은 자기부정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곧, 우리의 뜻을 하느님의 뜻에 합치 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영혼을 진정으로 자유롭게 하는 것이며, 영혼의 깊은 집중과 명상을 도와주고, 인생의 모든 짐을 가볍게해 주고, 죽음을 감미로운 것으로 만들어 준다."
결국 깨어난다는 것은 자신의 뜻을 내려놓고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회개의 시작입니다.
제가 오랫동안 하느님 자비 5단 기도를 바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기도를 청원의 도구로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 자신을 맡기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남기신 마지막 말씀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루카 23,46)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완전한 의탁의 모범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버지께 맡기셨습니다. 생명도 맡기셨고, 고통도 맡기셨으며, 죽음마저 맡기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조차 자신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에 자신을 온전히 내어 맡기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이 길을 걸어야 합니다. 하느님 자비 5단 기도는 단순히 기도문을 반복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며 자신의 삶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기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성녀 파우스티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성녀 마리아 파우스티나 코발스카, 일기 365)
"나는 네가 은총을 주라고 청한 그 영혼에게 그 은총을 나누어주었다. 그러나 네가 스스로 선택한 고행 때문에 준 것이 아니다. 오히려, 네가 나의 대리자에게 완전히 순명했기 때문에, 네가 전구하고 자비를 청한 그 영혼에게 은총을 주었다. 네가 너 자신의 의지를 접을 때에, 나의 뜻이 네 안에서 군림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두어라."
결국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고집이 아니라 순명이며, 우리의 계획이 아니라 의탁입니다.
오늘날 예수님의 성심은 여전히 많은 상처를 받고 있습니다. 무신론과 무관심, 죄와 배은망덕, 교회에 대한 냉담함과 배교가 그분의 성심을 아프게 합니다.
그래서 성모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십니다.
(93. 완전한 위로자들,14-17)
"사랑하는 아들들아, 나는 너희를 부른다.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아래 모으듯이 (마태24,37;루가 13,34), 세계 곳곳에서 너희를 모은다. 모두를 내 티없는 성심에 모아들인다.
자기 아들이 무참히 버림받고 큰 고통속에 있음을 보면서도 무관심한 엄마가 있을 수 있겠느냐?
그러니 무엇보다 그분을 위로해드리는 것이 내 임무이다.
너희 모두가 내 티없는 성심에 자신을 봉헌하라고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래야 내가 너희를 다 내 아들 예수 성심의 완전한 위로자로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활동가를 찾고 계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과 함께 머무르며 기도하고 사랑하는 영혼을 찾고 계십니다.
성녀 파우스티나에게도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성녀 마리아 파우스티나 코발스카, 일기 367)
"내 마음은 영혼들, 특히 불쌍한 죄인들을 위한 크나큰 자비로 흘러넘친다. 오, 내가 그들에게는 가장 좋은 아버지이고, 자비가 흘러넘치는 샘에서처럼 나의 심장으로부터 피와 물이 흘러나온 것은 그들을 위해서라는 것을 그들이 이해할 수만 있다면! 그들을 위해서 나는 감실 안에서 자비의 왕으로 살고 있다. 나는 영혼들에게 은총을 내리고 싶지만, 그들 자신이 은총 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적어도 너만은 가능한 한 자주 내게 와서, 그들이 받아들이지 않는 은총을 네가 받아 다오. 이런 방법으로, 너는 내 마음을 위로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오, 어떻게 영혼들이 그 좋은 많은 것들에, 그 많은 사랑의 증거에 무심할 수 있다는 말인가! 내 마음은 이 세상에 사는 영혼들의 배은망덕과 망각에 놀라고 있다. 그들은 온갖 다른 것들에는 시간을 내지만, 내게 은총을 받으러 오기 위해서는 시간을 내지 않는다."
오늘날 우리 역시 같은 질문을 묵상해보야 합니다.
우리는 정말 하느님을 위해 시간을 내고 있는가?
우리는 정말 깨어 기도하고 있는가?
우리는 정말 예수님의 위로자가 되고 있는가?
오늘날 세상은 우리를 더욱 바쁘게 만들고 있습니다. 스마트폰과 인터넷, 뉴스와 영상, 수많은 활동과 인간관계가 우리의 마음을 끊임없이 분산시킵니다. 그러나 성모님께서는 우리를 더 많은 활동으로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깨어 기도하는 삶으로 부르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니 동산에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그대로 주어지고 있습니다.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여라." (마태 26,41)
그래서 우리는 침묵을 배워야 합니다. 세상의 소음보다 하느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자신의 뜻보다 하느님의 뜻을 먼저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어린아이처럼 모든 것을 아버지 손에 맡겨야 합니다.
성모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잠든 영혼을 깨우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의 성심을 위로하는 영혼으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모님의 손을 붙잡고 회개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기도 안에 머물고, 하느님 자비에 의탁하며,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고, 성모님의 티없으신 성심 안에서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잠든 영혼이 아니라, 예수 성심의 위로자가 되고, 이 시대를 비추는 거룩한 봄꽃처럼 피어나게 될 것입니다.
함께하는 가톨릭 기도 (체나콜로)
https://www.youtube.com/@letspraytogether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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