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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6년 7월 2일 (목)연중 제13주간 목요일군중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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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이병우 신부님 묵상

190389 최원석 [wsjesus] 스크랩 2026-07-01

김건태 신부님_공동체의 바람과 희생

 

오늘 복음 속의 기적 이야기는 다소 ‘익살’이 섞여 있는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귀 들린 두 사람, 아무도 가까이 다가설 수 없을 만큼 마을 공동체의 일상을 뒤흔들어 놓고 있던 두 사람을 치유해 주십니다. 그런데 치유 과정에서 이 두 사람을 지배하고 있던 마귀들을 “돼지 떼 속으로 들여보내”, “물속에 빠져 죽게 한다”라는 장면이 묘하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다른 방법으로 이 사람들을 구하실 수 없으셨을까? 복잡한 과정을 밟을 필요 없이, 그저 단순하게 이 악령들이 물러나도록 명령만 내리셔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물론 유다인들이 부정한 짐승으로 여기는 돼지를 제거한다는 이야기를 통해, “가다라인들의 땅” 곧 이교도 지역의 더러움을 깨끗하게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을 수 있다 하더라도, 이 악령들을 돼지 떼 속으로 들어가게 함으로써 마을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을 뿐만 아니라, 남의 소유물을 희생시키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돼지 떼를 소유하고 있던 사람들은 돼지 떼가 물속에 빠져 죽는 장면을 바라보면서 분명 격노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저희 고장에서 떠나가 주십시오” 하는 요청은 분노를 삭이며 건넨 언사임이 틀림없습니다.

 

기이하게 보이는 기적 이야기, 그러나 이 이야기는 분명 하나의 가르침, 눈에 보이는 현실을 넘어 좀 더 생각해보도록 이끄는 하나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이웃을 악으로부터 구해내기 위해서, 예수님은 우리가 그에 필요한 대가를 치르도록 요구하신다는 메시지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하나 같이 이 두 마귀 들린 사람이 마귀로부터 자유로운 몸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바람이 이루어지기를 기대만 하고 있었을 뿐, 그에 필요한 희생, 그것이 무엇이든 희생이라는 대가를 치르는 데는 인색했던 모습, 바로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는 주님이 우리 안에 있는 악으로부터 우리를 구해주시기를 늘 기도하며 소망하고 있지만, 그에 필요한 노력을 몸소 내보이는 데는 머뭇거리기 일쑤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정의와 진실과 평화 넘치는 나라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이를 위해 싸우고 고통을 감수하는 데는 주저하기 일쑤입니다. 싸우기는커녕, 오히려 불의와 거짓과 다툼 편에 서 있었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님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배고픔과 목마름과 헐벗음이 없는 사회를 기대하지만, 가진 것을 나누고 안락한 삶을 포기하는 데는 많은 숙고의 시간, 숙고의 숙고를 거듭하는 시간을 왜 그렇게 오랫동안 질질 끌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직도 우리가 원하는 사회가 자리를 잡지 못한 것은, 그런 사회를 만들도록 우리를 보내신 주님의 뜻을 애써 외면하거나 마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함께 나누어 먹고 마시고 걸치겠다는 다짐 없이, 그것을 구체적인 행동으로 실천에 옮기겠다는 의지 없이, 정의와 진실과 평화 넘치는 나라에 대한 기대는 망상에 불과할 것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가 원하는 사회 구현을 기대하고 기도하면서도,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나 자신을 희생하며 뛰어들겠다는 다짐을 새로이 하며, 조금씩 실천에 옮겨나가는, 의미 있는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가다라인들 지방의 마귀 들린 사람 

 

오늘 복음은 무덤 사이에서 살며 쇠사슬조차 끊어버리는, 인간성을 잃어버린 마귀 들린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예수님을 보자 “하느님의 아드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때가 되기도 전에 저희를 괴롭히시려고 여기에 오셨습니까?”(마태 8,29)하고 외친다. 이제, 예수님 앞에서는 마귀도 그분이 누구신지 고백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오리게네스는 이렇게 말한다. “악마들은 그리스도를 알아보았으나, 그분을 사랑하지 않았고 그분께 순종하지 않았다.”(Commentarium in Matthaeum 요약) 즉, 지식으로 구원받지 못한다. 구원은 주님께 대한 사랑과 순종으로 이루어진다. 

 

마귀 들린 사람들은 단순히 고대적 미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 우상과 죄에 사로잡힌 인간의 모습을 드러낸다. 무덤에 산다는 것은, 죄 안에서 이미 영적으로 죽어 있음을 의미한다. 쇠사슬을 끊는다는 것은, 사회적 관계조차 파괴된 인간 고립의 상징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인간의 내적 분열을 이렇게 설명한다. “죄에 사로잡힌 사람은 자기 안에서 둘로 나뉘어 있다. 그는 자유로워지려 하지만 죄의 사슬이 그를 붙잡고 있다.”(Confessiones VIII,5 요약) 따라서 예수님의 만남은 단순한 기적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을 다시 온전히 회복시키시는 하느님의 구원 행위다. 

 

마귀들은 예수님의 권능 앞에서 쫓겨나 돼지 떼 속으로 들어간다. 유다인에게 돼지는 부정한 동물이었고, 탐욕과 무절제의 상징이었다. 돼지 떼가 호수에 몰려가 몰살당한 것은, 죄의 세력이 궁극적으로 파멸할 운명임을 드러내는 표징이다. 성 에프렘은 이렇게 주석한다. “군중은 돼지 떼를 잃었다고 슬퍼했으나, 하느님은 사람 하나를 되찾으심을 기뻐하셨다.”(Commentarius in Diatessaron 8,28 요약) 이는 우리에게도 큰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영혼의 구원보다도 세속적 손실을 더 크게 여기는 것은 아닌가? 

 

마을 사람들은 치유된 기적을 보고도 예수님께 떠나 주십사고 요청한다.(34절) 이는 구원의 기쁨보다 현세적 손실을 더 중시한 사람들의 모습이다. 교리서도 이 긴장에 관해 설명한다. “예수님의 현존은 사람들 앞에 선택을 요구한다. 사람은 빛을 따르거나, 혹은 빛을 거부할 수 있다.”(548,142-143항 참조) 우리 역시 신앙 안에서 날마다 같은 갈림길에 서 있다. 진리를 따르느냐, 편안함을 따르느냐? 십자가를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포기하느냐? 하느님의 뜻은 언제나 십자가의 도전으로 다가온다. 십자가는 우리를 두렵게 하지만, 동시에 영광의 길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격려한다. “그리스도와 함께라면 어떤 십자가도 무거움이 아니라, 영광의 관문이 된다.”(Homilia XXIX 요약)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님께 올바른 응답을 드리는 선택이다. 믿음으로 주님을 받아들이고, 우리 자신을 그분께 봉헌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병우 신부님_"하느님의 아드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마태8,29ㄱ) 

 

'다시 시작하자!' 

 

오늘 복음(마태8,28-34)의 제목은 '마귀들과 돼지 떼'입니다. 

 

마귀 들린 사람 둘이 무덤에서 나와 예수님께 마주 와서 이렇게 외칩니다. "하느님의 아드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때가 되기도 전에 저희를 괴롭히시려고 여기에 오셨습니까?"(마태8,29) 

 

마귀가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알아봅니다. 그런 마귀들이 예수님께 청합니다. "저를 쫓아내시려거든 저 돼지 떼 속으로 들여보내 주십시오." 예수님께서 "가라." 하고 말씀하시자, 마귀들이 돼지들 속으로 들어가고, 돼지 떼가 모두 호수를 향해 비탈을 내리 달려 물속에 빠져 죽고 맙니다.(마태8,31-32 참조) 

 

6월의 마지막을 뒤로 하고, 7월의 첫 날을 맞이했습니다.

'붉은 말의 해인 2026년 병오년(丙午年) 한 해의 절반을 보냈습니다. 

 

절반을 어떻게 보내셨는지요?

새해의 약속들은 잘 지켜나가고 계신지요? 

 

작년 말 인사를 통해 우리농으로 이동되어 왔습니다. 지난 6개월은 저에게 참으로 다사다난 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부활 신앙입니다.

우리의 여정은 부활을 향한 여정입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직접 보여주신 부활은 죽음 그 너머에 있습니다. 의로운 사람이 겪는 모진 수난과 고통 그 너머에 부활이 있음을 몸소 보여 주셨습니다. 

 

악령을 따라가지 말고, 성령을 따라가는 의인이 되자고 외쳐봅니다. 그래서 이제와 영원히 죽지 않고 부활하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되자고 외쳐봅니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의 적대자 악마가 으르렁거리는 사자처럼 누구를 삼킬까 하고 찾아 돌아다닙니다."(1베드5,8) 

 

이처럼 우리를 죽음으로 이끄는 악마는 늘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겸손한 마음 안에서 기쁘게 다시 시작합시다! 다시 화이팅 합시다! 

 

(~ 시편45,18)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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