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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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21 최원석 [wsjesus] 스크랩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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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들의 강론을 들어 보면 어느 부분에서는 참 어려워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 부분이 어디냐 ? 예수님의 수고 수난 중에 나오는 참형 부분과 부활 후 토마 사도의 이야기, 또 하나는 나는 살아 있는 빵이다. 라는 말씀에 도저히 이해가 안되고 이것을 논리적으로 이해하려 해도 도무지 잘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어려워 하세요. 그런데 복음 말씀은 인간의 손으로 썻지만 그러나 그 안에 있는 저자는 하느님입니다. 인간의 능력으로 쓰여진 것이 아니고 성령으로 쓰여진 것입니다. 성령의 영역을 인간의 눈으로 해석하려 하고 이것을 모든 사람에게 알리려 하다 보니 글이 글로 표현되나요? 않됩니다. 그런데 쉽게 볼 수도 있습니다. 의탁하고 받아들이면 되는 것입니다. 나중에 주님이 나의 이해의 키를 키워주실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부활한 예수님이 발현하십니다. 그런데 그 발현한 순간에 토마 사도는 자리에 없습니다. 그런데 토마가 제자들을 만납니다. 제자들은 토마에게 말합니다. 나는 부활한 주님을 뵈었소 라고 하자 토마는 말을 합니다. 나는 그분의 손과 발, 옆구리를 보지 않고서는 믿지 못하겠소 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제자들과 같이 있는 순간에 예수님께서 발현하시어서 토마에게 말씀하십니다. 토마야 너의 눈으로 나의 손과 발, 옆구리를 만저 보아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제서야 토마는 예수님에게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하면서 고백합니다. 그러니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보지 않고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라고 말씀하십니다.여기서 두 가지 볼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토마와 제자들이 나눈 대화 당시 그 자리에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발현하시어서 토마에게 너는 보고서야 믿느냐? 말씀하시는 것은 주님은 전지 전능하신 하느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시공간에 존재 자체가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건 보이건 간에 주님은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영이라는 것입니다. 토마 사도의 인식의 단계를 봅니다. 주님을 보고 믿는 것은 이전에 주님이 공 생활하면서 말씀하신 것을 내면의 작업에 완전한 정착이 않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활동만 하였지 내면의 영적인 기본 작업이 부실했다는 것입니다. 영의 눈이 열린 것은 주님의 부활을 보고 그제서야 영적인 눈이 열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그것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완성입니다. 인간의 이성으로 주님의 신비를 이해한다는 것은 수박 겉핥기에 불과 합니다. 온전한 의탁, 온전한 믿음이 있어야 영적인 눈이 열릴 것입니다. 능동적인 신앙에서 수동적인 신앙 안에서 당신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눈을 뜨게 하시는 분도 예수님입니다. 토마 사도를 보아서도 그렇습니다.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주님은 당신은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보이시고 구원으로 이끄신다는 것입니다. 온전히 의탁하고 온전히 투신하여서 당신을 믿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어린이와 같이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을 받아 들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어린이와 같이 순수한 것은 이성으로 해석이 안됩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의 해 맑은 눈에 당신의 속살을 드러내신다는 것을 알고 나도 나의 죄를 회개를 하고 영혼의 순수함을 찾아 나서는 내가 되어야 겠습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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