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GOOD NEWS 게시판

검색
메뉴

검색

검색 닫기

검색

오늘의미사 (홍) 2026년 7월 3일 (금)성 토마스 사도 축일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가톨릭마당

sub_menu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조욱현 신부님_김건태 신부님 묵상

190423 최원석 [wsjesus] 스크랩 09:53

 

조욱현 신부님_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오늘은 의심 많은 제자, 토마스 사도를 기념하는 날이다. 토마스라는 이름은 “하느님은 완전하시다”라는 뜻을 담고 있으며, 복음 속 그의 성격을 잘 보여 준다. 토마스를 ‘쌍둥이’라고 불렀는데(요한 20,24), ‘쌍둥이’라는 의미는 혈연적 쌍둥이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일에서 그리스도를 본받는 사람,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이라는 의미로 이해된다. 

 

토마스 사도는 페르시아와 인도에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마드라스(현: 첸나이)에서 순교하였다. 그곳에 성 토마스 성당이 세워졌고, 중앙 제대 아래 안장되어 있다. 인도에서는 ‘인도의 사도’로 공경 되며, 많은 신자가 세례명으로 토마스를 선택한다. 또한, 성 토마스는 건축가의 수호자로도 공경받고 있다. 

 

1. 복음 해설과 교부 가르침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토마스가 없는 자리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다. 토마스는 쉽게 믿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여드레 후, 예수님께서는 그의 앞에 나타나신다. 왜 바로 나타나지 않으셨을까? 이는 토마스가 다른 제자들의 증언을 듣고, 더 뜨거운 마음으로 주님을 만나고 믿을 준비가 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예수님께서는 토마스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의 소망을 들어주신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27절) 이에 토마스는 부활하신 주님을 믿고 고백한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28절) 이 고백은 초대교회의 부활 신앙을 보여 주며, 오늘날 우리 신앙의 본보기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부활 신앙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육체적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눈으로 하느님의 위대한 계획과 사랑을 체험하는 것이다.”(Serm. 219 의역) 예수님께서는 이어 말씀하신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29절) 토마스는 ‘보고 믿는’ 제자로서 우리 불신의 상처를 치유하였으며, 우리에게는 ‘보지 않고 믿는’ 믿음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말한다. “믿음은 체험 없이도 이루어지는 영적 눈의 열림이다. 보지 않고 믿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서 참된 행복을 누린다.”(Homilia in Ioannem, Hom. 87 의역) 

 

2. 부활 신앙의 핵심

우리 신앙의 핵심은 부활 신앙이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것이 곧 우리 신앙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영광은 십자가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부활을 체험한다는 것은 단순히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고통과 사랑을 내 삶에서 받아들이고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부활 신앙은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친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해하고, 우리 삶에서 새로운 태어남과 참된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3.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

신앙의 체험과 고백: 토마스처럼 부활하신 주님을 체험하고,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신앙을 가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의심과 믿음: 의심은 믿음을 성장시키는 계기가 된다. 우리는 토마스 사도의 도움으로, 보지 않고도 믿는 신앙의 길을 배울 수 있다.

부활 신앙 실천: 부활하신 주님을 세상에서 체험하며, 삶으로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 중요하다.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을 통해 주님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 안에서 주님을 만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4. 삶의 적용

매일 십자가를 지고 부활 신앙을 살아가며 주님을 증거하기, 의심이 찾아올 때 토마스 사도의 믿음을 본받아 신앙을 성장시키는 기회로 삼기, 세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체험하고, 올바른 신앙 고백을 삶으로 실천하도록 하여야겠다. 

 

김건태 신부님_토마스 사도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열두 사도들 가운데 하나인 토마스 사도를 기념합니다. 토마스를 포함한 사도들은 예수님이 당신의 구원사업을 이어나가도록 몸소 선택하셨고, 늘 곁에 두고 말씀과 행적으로 가르쳐온 사람들로서, 무엇보다도 그리고 누구보다도 앞장서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증언해야 했던 사람들입니다. 그 자리에는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한, 의심의 대명사 토마스도 당연히 포함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토마스는 지금 부활이 아니라 죽음의 상태, 곧 무덤을 벗어나지 못해 쩔쩔매고 있습니다. 주님의 상흔, 손과 발의 못 자국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지 않고는 믿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사람의 감각 기관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만 믿겠다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것이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짐으로써, 한마디로 감각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행위가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인간의 감각 기능이라는 것이 인간의 마음처럼 변덕스럽기 짝이 없기 때문입니다. 때와 장소, 혹은 기분이나 건강 상태에 따라 인식의 차이를 보입니다. 똑같은 사물을 놓고서도 보는 각도에 따라 차이를 보이고, 똑같은 음식을 두고서도 시장기에 따라 맛을 가름하는 것이 감각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오히려, 정말 믿지 못할 것이 감각 기능입니다. 그런데 그 감각 기능에 의존하여 믿음을 결정짓겠다니 걱정스럽습니다.

 

믿음이 자신의 운명과 삶의 모든 것을 내맡기는 행위이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감각으로 믿음이 아니라, 오히려 믿음으로 감각이 제 기능을 발휘하도록 도움을 주어야 할 때가 더 많습니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 하는 속담은, 모든 것을 의심하라기보다는 매사에 실수하지 않도록 신중하게 처신하라는 가르침인데도, 믿음이 없으면 어떠합니까? 두들겨 보고 또 두들겨 보고서도 무너지면 어쩌나 하는 불신이 앞서면 결코 건너지 못합니다. 의심 많은, 믿지 못하는 토마스를 통해 우리가 다시금 살펴야 할 상식적인 지점입니다.

 

토마스를 좀 더 가까이 보았으면 합니다. 토마스는 한때 다른 제자들의 모범이 되었던 사람, 주님의 죽음을 예감하고서는 “우리도 스승님과 함께 죽으러 갑시다.” 하고 제안했던 사람입니다. 그러했던 그가 철저한 냉담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예수님께 걸었던 희망이 컸던 만큼 그분의 참혹한 죽음이 주었던 충격도 컸기 때문일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상 처절한 죽음 앞에서 믿음과 희망이 무너지고 만 것입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그 좌절과 불신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아직도 죽음의 상태에서 허덕이고 있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토마스를 죽음에서 건져내시려 그에게 다가오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사랑이 절망과 불신과 두려움이라는 죽음에서 토마스를 구원해내십니다. 보고서야 믿는 처지를 뛰어넘어 보지 않고도 믿는 수준으로 차가웠던 토마스의 믿음, 죽어버린 믿음을 다시 끌어 올리십니다. 그리하여 (미사에서 사제가 성체와 성혈을 들어 올릴 때, 우리가 마음속으로 외치는)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이라는 신앙고백으로 인도하십니다. 이처럼 오늘 복음의 토마스 이야기는 또 다른 차원의 부활 이야기, 우리가 살아야 할 부활신앙입니다.

 

오늘 토마스 사도 축일을 지내면서, 의심 많던 토마스를 통해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인 부활 사건을 증언하도록 이끌어주심에 감사드리며, 우리 또한 부활사건에 대한 굳은 믿음을 드러내는 데 신앙인으로서의 보람과 행복을 느끼는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0 43 0

추천  0 반대  0 신고  

TAG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로그인후 등록 가능합니다.

0 / 500

이미지첨부 등록

더보기
리스트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