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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글] <묵상 에세이 2부> 진리를 잃어버린 시대, 이성의 절대화와 상대주의의 독재

2948 박소영 [b38927] 스크랩 15:57

아주 중요한 글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어 마지막으로 잠시 찾아왔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높은 성덕의 길로 이끌고 계십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그 부르심에 마음의 문을 닫고 있기에, 성모님의 티 없으신 성심은 깊은 가시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마지막 이 글을 통해 진리를 더욱 깊이 깨닫고,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단 하나의 길, 곧 "좁은 문"(마태 7,13)으로 들어가 "좁은 길"(마태 7,14)을 걸으며, 마침내 참하느님께 나아가시기를 기도합니다.

 

 



<묵상 에세이 2부>


✦ 진리를 잃어버린 시대, 이성의 절대화와 상대주의의 독재

 

지난 에세이 「묵시록의 우상, 텔레비전을 넘어 스마트폰과 AI로」와 「현대화의 이름으로 드러나는 교회의 배교와 작은 양떼의 길」을 통해 우리는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사고방식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 그리고 현대화라는 이름 아래 교회 안에 어떤 오류가 스며들고 있는지를 함께 묵상하였습니다.

 

그러나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정보가 넘쳐난다고 해서 인간이 반드시 진리에 더 가까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어느 때보다 많은 정보를 접하면서도 무엇이 참된 진리인지 분별하기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을 바라보며 저는 성모님 메시지와 교회의 가르침을 다시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오래전부터 인간의 이성이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진리보다 앞서려는 위험을 경고하셨고, 이러한 흐름이 교회와 세상에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도 여러 차례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은 성모님 메시지와 교회의 가르침을 통해 이성의 절대화가 어떻게 합리주의와 상대주의를 낳고, 그 결과 신앙을 약화시키는지 살펴보고, 이러한 시대 안에서 우리가 어떻게 진리를 지켜 나가야 하는지를 함께 묵상해 보겠습니다.

 

 

<이성의 절대화와 신앙의 약화>


성모님께서는 이미 이 시대의 뿌리 깊은 위험을 다음과 같이 경고하셨습니다.

 

(407. 그 짐승의 숫자인 666,15)

"666은 그 배수로 서기 1332년을 가리킨다. 역사상 이 시기에 '거짓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신앙을 근본적으로 공격함으로써 그 모습을 드러냈다. 오직 과학과 이성에만 가치를 부여하는 철학자들을 통해, 인간 이성을 진리에 대한 유일한 판단 기준으로 삼는 경향이 점차로 퍼지게 되었고, 현세기까지 이어진 큰 철학적 오류가 거기서 발생한 것이다."

 

교회는 언제나 인간의 이성을 하느님께서 주신 소중한 선물로 가르쳐 왔습니다. 이성은 계시된 진리를 이해하고 탐구하도록 돕는 귀한 능력입니다.

 

그러나 이성이 계시를 받아들이는 자리를 넘어, 계시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 시작할 때 문제가 발생합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말씀마저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하려 하고, 교회의 교도권보다 자신의 해석을 더 신뢰하게 됩니다. 그 결과 진리는 더 이상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진리가 아니라, 인간이 판단하고 해석하는 대상으로 바뀌게 됩니다. 

 

성모님께서는 이러한 흐름이 단순한 철학적 오류에 머무르지 않고, 결국 신앙 전체를 흔드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경고하십니다.

 

(407. 그 짐승의 숫자인 666,15)

"(...) 이성을 진리에 대한 유일한 판단 기준으로 여기며 그 중요성을 과장한 나머지, 필연적으로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신앙의 파괴라는 결과를 가져왔으니, 과연 프로테스탄트적 개혁은 그것과 아울러 신적 '계시'의 원천인 교회의 '전승'을 배척하였고 '성서'만 수용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렇게 수용된 성서마저 단지 이성으로 해석되는 운명을 겪어야 했고, 교계제도적 교회 -- 그리스도께서 신앙의 보고(寶庫)를 보존하도록 맡기신 교회 -- 의 진정한 '교도권' 역시 완강한 배척을 받게 되었다. 더욱이 누구나 '성서'를 읽고 자신 식으로 자유롭게 해석하며 이해하게 함으로써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신앙이 파괴되었다. 이와 같이 역사상 이 시기에 '거짓 그리스도'가 한 일이 바로 교회 분열이었다. 그 필연적인 결과로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참 신앙이 점차 유실되어 여러 갈래의 새로운 그리스도교 신앙고백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합리주의와 상대주의>



성모님께서 경고하신 이러한 흐름은 시간이 흐르면서 합리주의와 상대주의라는 형태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게 됩니다.

 

상대주의란 진리와 선악의 기준이 절대적이지 않고, 개인과 문화,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보는 사고방식입니다.

 

처음에는 다양성을 존중하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태도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가 깊어질수록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진리를 찾기보다 자신의 판단과 경험을 기준으로 삼게 됩니다.

 

결국 인간은 하느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자신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받아들이려는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합리주의와 상대주의는 서로 맞물려 작용합니다. 합리주의는 "이성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태도로 신앙의 신비를 축소시키고, 상대주의는 "모든 해석은 동등하다."는 사고를 통해 계시된 진리의 권위를 약화시킵니다.

 

그 결과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진리는 여러 해석 가운데 하나로 여겨지게 되고, 신앙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삶이 아니라 인간이 선택하고 재구성하는 대상으로 변질될 위험에 놓이게 됩니다.

 

 

<스테파노 곱비 신부님>

 

이러한 시대의 위험에 대해 마리아 사제운동의 고 스테파노 곱비 신부님께서도 분명히 경고하셨습니다.

 

2010년 10월 25일 파티마 강론에서 곱비 신부님께서는 교회 안에 침투한 두 가지 흐름을 지적하셨습니다. 첫째는 합리주의, 둘째는 그 결과로 나타나는 상대주의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은 결국 신앙의 약화와 교회 내부의 분열로 이어진다고 경고하셨습니다.

 

(곱비 신부님의 2010년 10월 25일 파티마 강론 '파티마는 거짓 신들의 몰락이다' 중)


"용(사탄)은 교회를 파괴하기 위해 교회 안에도 두 개의 거짓 우상을 세웠습니다. 첫 번째 우상은 합리주의와 상대주의로 형성된 것으로, 이는 교회의 신앙을 파괴하려는 경향을 가집니다.


성 베드로의 둘째 편지에는, 너희 가운데 거짓 교사들이 나타나 파멸을 가져오는 이단을 가르치며, 자신들을 구원하신 하느님을 거슬러 행동할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많은 이들이 그들을 따르며, 그들처럼 부도덕한 삶을 살게 될 것이고, 그들로 인해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멸시받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2베드 2,1-2 참조)


오늘날 교회 안에서 신앙의 상실이 확산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거짓 교사들 때문입니다. 그들은 가르치고 있지만, 잘못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류를 퍼뜨리기 때문에 잘못 가르치는 것이며, 교사이기는 하지만 거짓 교사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참된 교사와 거짓 교사를 분별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그들이 가톨릭 신앙의 진리를 충실히 전하고, 겸손하며 교도권에 순종한다면 그들은 참된 교사입니다. 그러나 교만하고 오류를 퍼뜨리며 교도권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거짓 교사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반드시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모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이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라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분별해야 합니다. 올바른 가르침을 따르고 신앙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잘못된 이들의 말을 듣지 말아야 하며, 그래야 오류에 빠지지 않고 신앙을 잃지 않게 됩니다."

 

곱비 신부님께서는 오늘날의 신앙의 위기는 단순히 지식이나 정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넘쳐나는 정보와 다양한 가르침 속에서 오류를 진리로 착각하고 거짓 교사를 분별하지 못하는 데 있다고 경고하십니다. 따라서 신자들은 참된 교사와 거짓 교사를 올바로 분별하며, 교회의 신앙과 교도권에 충실히 머물러야 한다고 강조하십니다.

 

이러한 흐름은 단순한 이론적 경고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교회의 교육과 사목 현장에서도 이를 경험했다고 증언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정원일 가브리엘 신부님>

 

『서원을 실천하는 길』의 저자 정원일 가브리엘 신부님께서는 자신의 신학교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당시 일부 신학 교육에서 인간의 이성과 합리적 설명이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복음의 신비와 초월성이 약화되는 경향이 있었다고 증언하십니다.

 

대표적인 예가 오천 명을 먹이신 '빵의 기적'입니다. 예수님의 초자연적인 기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사람들이 서로 가진 것을 나누었기 때문에 모두가 배불리 먹게 되었다는 이야기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확산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접근은 현대인이 이해하기 쉽게 복음을 설명하려는 시도로 제시되지만, 그 과정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기적의 초월성이 약화될 위험이 있다고 신부님은 지적하십니다.

 

('서원을 실천하는 길' 중에서)


"성모님 메시지에 의하면 신학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망각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인간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것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성으로만 복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임으로써 예수님의 신성은 철저히 부정당하고 오직 예수님의 인간성만 이해하게 되고 그 결과 신앙은 없어지고, 지식만 이성만 남게 되었다.


지금 유럽에서 이렇게 발달한 신학이 과연 교회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끼쳤는가? 많은 사람들을 신앙에서 떠나게 했다. 신학의 발달이 신자들에게 신앙심을 굳건하게 해주고, 교회를 튼튼하게 해 주는 것이 아니라, 신자들에게는 신앙심을 잃게 하고, 교회는 쇠퇴하게 만든 원인이었다고 한다.


사실 우리 신학생 때만 해도 마리아론을 배우고 교회론을 배우면서 더 이상 묵주기도를 하지 않는 신학생들이 있었고, 오천 명을 먹이신 빵의 기적의 진짜 의미는 '인간적인 방법으로 한 소년이 자기가 가진 것을 내놓으니까, 모두 각자가 숨긴 것을 내놓음으로써 모두가 배불리 먹었다.'는 교리서를 만든 책이 가장 인기 있는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모든 신학생들이 이런 교리서에 열광하였던 것을 기억한다."


또한 신부님께서는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기도와 신앙보다 학문적 지식과 인간적 이해가 우선시되고, 단순하고 순수한 신앙이 오히려 뒤처진 것으로 여겨지는 풍조가 나타났다고 고백하십니다.

 

"오늘날 사회나 교회나 많이 배운 사람 앞에서, 전문가 앞에서 아무런 이유도 다는 일 없이 그저 맹목적으로 머리를 조아린다. 그렇지 않으면 무식하다는 소리를 듣거나 혹은 비이성적으로 자기주장만 편다는 인상을 받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예수님보다도 사람들의 평판에 신경을 쓴다. 더 이상 베드로처럼 단순한 신앙, 기도하는 신앙인은 교회 안에서 좋은 대접을 못 받는다.


기도하는 사람이나 신앙심이 깊은 사람들보다는 오히려 신앙은 없음에도 많이 배운 사람들에 의해 교회가 인도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신학교에서부터 기도가 첫째 자리에 잡혀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게 되었다. 공부나 성적이 결코 신앙과 기도보다 더 중요하고 우선시할 수 없다. 기도하는 사람만이 성령을 받을 수 있고,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만이 참으로 사람들을 예수님에게로 이끌 수 있어야 참다운 교회가 될 수 있다."


정원일 신부님의 증언은 인간의 이성이 계시된 진리보다 앞서게 될 때, 복음이 살아 있는 신비가 아니라 인간의 이해와 설명의 대상으로 축소될 위험이 있음을 보여 줍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는 신앙과 이성의 올바른 관계를 다시 분명하게 가르치시며, 인간의 이성이 계시를 대신하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도 깊이 통찰하시며 거듭 경고하셨습니다.

 

1998년 회칙 『신앙과 이성(Fides et Ratio)』에서 교황님께서는 현대 사회가 회의주의와 허무주의, 그리고 상대주의의 확산으로 진리에 대한 확신을 점차 잃어가고 있다고 진단하셨습니다.

 

특히 교황님께서는 신앙과 이성은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진리로 이끄는 두 날개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이성은 계시된 진리를 더 깊이 이해하도록 돕는 선물이며, 신앙은 이성이 스스로 도달할 수 없는 하느님의 진리로 인간을 이끕니다.

 

그러나 인간이 이성을 진리를 탐구하는 도구가 아니라 진리를 판단하는 최종 기준으로 삼기 시작할 때 문제가 생깁니다. 계시된 진리마저 인간의 판단 아래 두려는 태도는 결국 진리에 대한 확신을 약화시키고, 삶의 목적과 방향마저 흐리게 만듭니다.

 

이어 2003년 교황 권고 『교회의 유럽(Ecclesia in Europa)』에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는 현대 사회를 향해 "침묵하는 배교(silent apostasy)"라는 표현을 사용하셨습니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그리스도교 문화 안에서 살아가면서도 실제 삶에서는 하느님 없이 살아가는 현실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겉으로는 신앙을 고백하지만 삶의 기준은 복음이 아니라 시대정신이 되고, 하느님의 계시보다 인간의 생각과 가치관을 앞세우는 현실을 교황님께서는 깊이 우려하셨습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신앙과 이성의 올바른 관계를 가르치셨다면,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는 그 질서가 무너진 현대 사회를 '상대주의의 독재'라는 표현으로 명확하게 진단하셨습니다.

 

2005년 교황 선출 직전 강론에서 교황님께서는 절대적 진리를 부정한 결과, 시대의 여론과 인간의 욕망이 새로운 기준이 되었고,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조차 분명하게 말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고 경고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현실을 곳곳에서 마주합니다. 과거에는 진리를 발견하려고 노력했다면, 이제는 "나에게 맞는 신앙", "내가 생각하는 신앙", "각자의 신앙"라는 표현이 더 익숙해졌습니다. 진리의 기준이 객관적 실재에서 개인의 판단과 경험으로 옮겨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진리는 사람마다 달라질 수 없습니다. 만일 진리가 시대와 개인에 따라 달라진다면 복음도 시대에 따라 바뀌어야 하고, 죄와 성덕의 기준 또한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계시된 진리는 더 이상 인간을 이끄는 기준이 아니라, 수많은 의견 가운데 하나로 전락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 경고하신 '상대주의의 독재'의 본질입니다. 진리의 기준이 흐려질수록 선과 악의 경계도 모호해지고, 인간은 결국 하느님의 진리가 아니라 자신의 판단과 시대정신을 따라 살아가게 됩니다.

 

 

<디지털 시대와 상대주의의 구조적 확산>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시대적 흐름이 디지털 혁명의 시작과도 맞물려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난 에세이 「묵시록의 우상, 텔레비전을 넘어 스마트폰과 AI로」에서 살펴본 것처럼, 1998년을 전후하여 인터넷과 검색 기술은 인간의 정보 접근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하나의 공통된 정보 환경 안에서 동일한 현실을 공유하지 않습니다. 각자는 자신이 선택한 정보에 주로 노출되고, 알고리즘은 개인의 관심과 성향에 따라 서로 다른 정보 흐름을 만들어 냅니다. 그 결과 우리는 같은 세상에 살면서도 서로 다른 '정보적 현실' 속에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사실 성모님께서는 407번 「그 짐승의 숫자인 666」 메시지에서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미리 예고하셨습니다.

 

(407. 그 짐승의 숫자인 666,16)

"666은 그 세 배의 수로 서기 1998년을 가리킨다. 역사상 이 시기에 프리메이슨은 교회 프리메이슨의 협력으로 그 자체의 큰 계획을 성공적으로 달성할 터인데, 그것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를 대신하는 우상, 즉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교회'를 세운다는 계획이다."


"그리하여, '첫째 짐승'을 위해 세워진 그 우상을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경배하게 할 것이고, 물건을 사거나 팔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낙인을 받게 할 것이니(묵시13,17 참조), 그것은 바로 거짓그리스도의 낙인이다. 그러기에 너희는 정화와 대환난과 배교의 극점에 이르른 것이다. 배교가 일반화될 터인즉, 거의 모든 사람이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교회를 따라갈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스마트폰과 SNS, 그리고 인공지능은 이러한 환경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같은 사건을 접하면서도 서로 다른 정보와 해석에 노출되고, 점차 공통된 현실 인식을 공유하기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인공지능은 개인의 관심과 성향에 맞춘 정보와 설명을 제공함으로써 이러한 경향을 더욱 강화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기술 자체가 아니라, 이러한 정보 환경이 개인의 판단을 끊임없이 강화하는 구조를 만들어 낸다는 데 있습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점차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진리보다 자신의 경험과 판단을 더 신뢰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무엇이 참인가?"라는 질문이 점차 "나에게는 무엇이 맞는가?"라는 질문으로 바뀌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디지털 기술은 이미 확산되고 있던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더욱 빠르게 증폭시키는 환경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윌리엄 맥그래스 신부님>


미국 마리아 사제운동의 윌리엄 맥그래스 신부님께서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설명하시며 매우 중요한 통찰을 제시하셨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교회 안에서 여러 변화가 있었음을 언급하시며, 문제는 변화 자체가 아니라 그 변화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이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점차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을 바꿀 수 있다면, 저것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처음에는 전례의 일부 변화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사고는 신앙의 내용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기도의 방식이 바뀔 수 있다면 믿음도 바뀔 수 있고, 믿음이 바뀔 수 있다면 교리 역시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 사람들의 의식 속에 조금씩 자리 잡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오래전부터 하나의 원칙을 소중히 지켜 왔습니다.

 

"기도의 법은 신앙의 법이다." (Lex orandi, lex credendi.)


우리가 어떻게 기도하는가는 결국 우리가 무엇을 믿는가와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신부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교회는 언제나 시대의 변화보다 사도들에게서 전해 받은 교의와 교리에 대한 충실함을 가장 중요하게 지켜 왔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오늘날 디지털 문화는 변화의 속도를 더욱 빠르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시대와 환경이 달라져도, 신앙의 기준은 인간의 판단이나 시대정신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계시하시고 교회에 맡기신 진리 위에 굳게 서 있어야 합니다.

 

 

<진리를 지키는 길>

 

성모님께서는 384번 「엄청난 배교」 메시지에서 이러한 시대정신의 위험을 다음과 같이 경고하십니다.

 

(384. 엄청난 배교,3-4)

"내 원수 '사탄'은 속임수와 교활한 유혹으로, 진리에 대한 새롭고도 가장 현대화된 해석이라는 허울을 쓴 오류를 곳곳에 퍼뜨리는 데 성공했다. 또한 수많은 이들로 하여금 의식적으로 죄를 택하여 죄 속에 살게 하는데다, 죄를 더 이상은 악으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가치롭고 선한 무엇으로 착각하게 하는 데도 성공했다.

영적 혼란과 동요가 전반적이고 극단적인 때가 왔다. 너무도 많은 내 자녀들의 영혼과 삶 속에 혼란이 침투한 것이다."

 

여기서 특히 주목해야 할 표현은 "새롭고도 가장 현대화된 해석"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오류가 처음부터 오류의 모습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맞는 새로운 이해와 현대적 접근이라는 이름을 입고 사람들의 사고와 의식 속에 서서히 스며든다고 경고하십니다.

 

이러한 위험은 다른 메시지에서도 반복해서 나타납니다.

 

(91. 반대 받는 표적,8)

"너무나 많은 너희 형제 사제들이 복음을 세속 정신에 맞추려 함으로써 그 진리를 배반한다는 사실을 너희는 알고 있느냐? 그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말을 더 잘 이해하게 하고 더 많이 귀담아 듣게 하고 더 쉽게 따르게 하리라는 그릇된 착각에 빠져 그렇게 하는데, 이보다 더 위험한 착각은 달리 없는 것이다."


(127. 나의 전투,12)

"그는 또 복음 선교를 현대 세계가 보다 기꺼이 수용할 수 있게 활성화시키자면서, 문명과 현대화라는 것으로 치장(治粧)한 불충실로 너희를 유혹했다. 따라서 어떤 자들이 설교하는 복음은 더 이상 내 아들 '예수님의 복음'이 아닌 것이다."

 

성모님께서는 복음의 힘이 인간적인 설득력이나 시대적 수용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진리 그 자체와 삶의 일치에 있음을 강조하십니다. 복음은 끊임없이 새롭게 해석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삶으로 실천해야 할 진리입니다.

 

그래서 성모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가난하고 단순하며 순종하는 삶, 곧 예수님처럼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삶을 요구하십니다. 이러한 삶만이 복음을 왜곡 없이 드러내는 참된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91. 반대 받는 표적,4-7)

"티없는 내 성심에 봉헌한, 내 '작은' 아들들인 너희 역시, 오늘날 '반대 받는 표적'이 되도록 부름 받은 것이다.

오로지 산 복음이 되어야 할 '너희의 생활로' 너희는 반대받는 표적이 될 것이다. 이 시대에는 내 아들 예수님의 복음이 점점 더 불신되고, 교회 안에서도 복음을 인간적으로, 또 상징적으로 해석하려드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너희는 복음을 글자 그대로 실천해야 한다: 가난하고 단순하며 순결하고 작은 사람, 하느님 아버지께 자신을 온전히 내맡긴 사람이 되어라.

'너희의 말로' 너희는 반대 받는 표적이 될 것이다. 내 아들 예수께서 오셔서 계시하신 진리를 너희가 갈수록 더 힘차고 분명하게 거듭거듭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진리를 지키는 길은 새로운 해석을 찾는 데 있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계시하시고 교회와 교도권을 통해 전해 주신 진리를 겸손히 받아들이고, 그 진리를 삶으로 살아가는 데 있습니다.

 

인간의 이성은 계시를 대신하는 기준이 아니라, 계시된 진리를 더 깊이 이해하도록 돕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또한 교회의 성전은 사도들에게서 전해 받은 계시된 진리를 살아 있게 간직하며, 교도권은 그 진리를 시대를 초월하여 충실히 전하는 사명을 맡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끊임없이 새로운 해석을 만들어 내거나 '무엇이 옳은가'를 스스로 결정하려는 태도를 내려놓고, '무엇이 하느님의 진리인가'를 끊임없이 묻고 그 진리에 순종하는 삶입니다.

 

그때 비로소 진리에 대한 혼란은 질서를 되찾고, 교회 안의 분열은 치유와 일치를 향해 나아가며, 인간은 자기 판단에 갇힌 상대주의를 넘어 하느님의 진리 안에서 참된 자유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 함께하는 가톨릭 기도(체나콜로) 블로그: https://blog.naver.com/letspraytogether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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