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중 제15주일 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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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78 박영희 [cornelia2] 스크랩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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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5주일 가해] 마태 13,1-23 "그는 말씀을 듣고 깨닫는다. 그런 사람은 열매를 맺는데, 어떤 사람은 백 배, 어떤 사람은 예순 배, 어떤 사람은 서른 배를 낸다.”
오늘 복음은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입니다. 그런데 정작 비유 안에서 씨 뿌리는 사람은 처음에 딱 한 번 등장하고, 나머지는 거의 대부분이 씨가 떨어지는 ‘땅의 조건’에 관한 내용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비유를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라고 부르는 것은 땅의 조건에 상관없이 하느님 말씀이라는 씨앗을 뿌려주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려야 이 비유에 숨은 뜻을 제대로 헤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하느님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는 것은 예수님의 몫이지만, 그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자라게 하여 내 삶에서 열매 맺을지는 우리의 몫이라는 뜻인 겁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먼저 씨를 뿌린 다음에 땅을 갈아 엎고 정돈하는 당시의 농사 방식에 빗대어 설명하신 것은, 그분께서 우리 마음이라는 밭에 ‘말씀농사’를 지으시는 방식도 그와 같기 때문입니다. 즉 길, 돌밭, 가시덤불, 좋은 땅과 같은 마음의 상태가 처음부터 결정되어 있어서 바꿀 수 없는 게 아니라, 먼저 하느님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 말씀에 따라 내 삶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여하에 따라 누구라도 얼마든지 ‘좋은 땅’이 될 수 있다는 뜻이지요. 하느님 말씀에 비추어 자신을 돌아보며 단단하게 굳어진 마음을 깨뜨리고 돌덩어리들을 골라내며 가시덤불을 걷어내다보면, 주님께서 내 마음에 뿌려주신 말씀의 씨앗이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겁니다.
이제 비유의 구체적인 뜻을 하나씩 살펴봅니다. 먼저 ‘길’은 고집과 편견으로 인해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진 상태를 가리킵니다. 이제 막 천주교 교리를 듣기 시작한 예비신자들은 물론이고, 신앙생활을 오래 했다고 하는 분들 중에도 이런 분들이 많지요. 자기 머리로 이해가 되지 않고 납득이 가지 않는 건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정한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더 나아가 하느님까지 판단하려고 듭니다. 그렇게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져 있으니 하느님 말씀이 파고 들 틈이 없고, 그런 상태로는 하느님 말씀을 아무리 많이 들어도 마음이 그 말씀을 다 튕겨내 버리기에 ‘쇠귀에 경읽기’처럼 소용없는 짓이 되는 겁니다. 하지만 믿음이란 이해가 가지 않아도, 납득이 되지 않아도 먼저 듣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열고 꾸준히 듣다보면 어느 순간 하느님 말씀을 깨닫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두번째로 흙이 많지 않은 ‘돌밭’은 하느님 말씀을 실행할 의지가, 그분 말씀을 따르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고통과 시련을 극복할 인내와 끈기가 부족한 마음 상태를 가리킵니다. 삶에 문제가 없고 마음이 편안할 때, 모든 일이 하고자 하는대로 잘 풀릴 때에는 신앙생활하기가 어렵지 않지요. 그러나 중간에 어떤 난관을 만나게 되면 그 사람의 마음에 박힌 신앙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가 비로소 드러나게 됩니다. 이렇게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데 왜 하느님은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시지 않느냐고, 왜 나에게 이렇게 힘들고 괴로운 일이 생기느냐고 툴툴 거립니다. 하느님 말씀대로 살려고 했다가 작은 손해를 보거나 희생이라도 하게 되면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가며 신앙생활 해야 하느냐고 불평과 불만을 늘어 놓습니다. 단체 활동을 하다가 실망을 하거나 서운한 소리를 듣게 되면 ‘성당 다닌다는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며, ‘나 혼자 열심히 신앙생활해서 구원받으면 되지 왜 저런 미운 사람을 계속 봐야 하느냐’며 발길을 뚝 끊어버립니다. 그러면 어렵게 싹을 틔운 말씀의 씨앗이 제대로 자라지도 못한 채 말라버리고 말지요.
세번째로 ‘가시덤불’은 더 많이 소유하고 싶고 더 큰 인기를 누리고 싶으며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고 싶은 욕망이 마음 속에 가득한 상태를 가리킵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느님 뜻대로 잘 살아보고 싶은 욕망도 가지고 있기에 말씀의 씨앗을 받아들여 싹을 틔우기는 합니다. 문제는 하느님과 그분 말씀에 대한 우선순위가 ‘먹고 사는 문제’에 밀려 자꾸만 나중으로, 다음 기회로 미뤄진다는 것이지요. 하느님 말씀을 열심히 실천하며 그분 뜻에 맞게 사는 것이 현세에서 잘 먹고 잘 사는 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재물’에, ‘성공’에 연연할수록, 더 많은 재물을 갖고 싶고 더 크게 성공하고 싶은 탐욕이 내 마음 속에 가득 차게 됩니다. 또한 내가 가진 것을 잃게 되면 어쩌나,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파도처럼 계속해서 나에게 밀려 들지요. 그러면 내 삶 속에서 하느님 말씀을 묵상하고 실천할 ‘여유’는 없어지고, ‘주일미사 참례’라는 의무 하나 챙기기도 빠듯해집니다. 그렇게 ‘냉담’이나 다름 없는, 껍데기만 남은 무의미한 신앙생활을 계속하다가 진짜 냉담에 빠지게 됩니다.
네번째로 ‘좋은 땅’은 하느님 말씀을 들으려는 ‘의지’와 그 뜻을 제대로 깨닫기 위한 ‘노력’이 일치되어, 그렇게 깨달은 뜻을 삶 속에서 구체적인 사랑으로 실천하는 데까지 나아간 상태를 가리킵니다. 이처럼 말씀에 대한 의지와 노력으로 하나된 사람은 당신의 의지를 현실로 만드시는 하느님을 닮았지요. 우리가 신앙생활을 통해 열매를 맺으려면 내가 아는 것과 바라는 것, 그리고 실천하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는 한 방향을 바라보고 일관되게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한다고 해서 다 같은 수준의 열매를 맺는 게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백 배, 어떤 사람은 예순 배, 어떤 사람은 서른 배”의 결실을 맺지요. 즉 신앙생활을 통해 구원받는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하느님 나라에서 누리는 행복의 크기가 다른 겁니다. 그 행복의 크기는 내가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주님과 맺은 관계의 깊이에 따라 결정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이신 주님께서는 당신이 직접 사랑의 ‘밀알’이 되시어 우리 마음 밭에 심어지시고, 우리가 많은 결실을 얻도록 기꺼이 당신 자신을 희생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느님 말씀을 마음 안에 받아들인 우리가 주님을 위해, 그분 뜻을 따르기 위해 변화되지 않고 ‘내 것’을 지키려고만 든다면, 주님과 참 사랑으로 하나되는 기쁨을 누리지 못하게 되겠지요. 그러니 욕심과 이기심에 빠져 ‘밀알 하나’의 상태로 남지 말고, 사랑의 열매를 옹골차게 맺는 튼실한 밀이 되어야겠습니다. 그것이 하느님 나라에서 참된 행복을 누리는 길입니다.
* 함 승수 신부님 강론 말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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