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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연중 제15주간 토요일]

190680 박영희 [cornelia2] 스크랩 2026-07-18

[연중 제15주간 토요일] 마태 12,14-21 “그는 올바름을 승리로 이끌 때까지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연기 나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니 민족들이 그의 이름에 희망을 걸리라.”

 

 

 

 

예수님께 말로 올무를 씌워 쓰러뜨리려 했던 바리사이들이 자기들 뜻을 이루지 못하고 계속해서 망신만 당하자, 결국 그분을 없애기로 모의합니다. 말로 안되면 극단적인 폭력을 동원해서라도 억지로 자기들 뜻을 이루려 드는 교만하고 강압적인 모습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의도를 다 아시면서도 그들의 검은 계략에 맞대응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당신이 원래 계시던 그곳에서 물러나심으로써 그들과 멀리 떨어지는 방법을 선택하십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타인의 폭력에 제대로 맞대응하지 않으면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는 곳입니다. 피해를 당했을 때 되로 받은 것을 말로 돌려주지 못하면 ‘진 것’이 되어 분하게 여기는 곳입니다. 그렇기에 ‘선함’은 곧 ‘무능’과 동일시되기도 하지요. 

 

하지만 예수님은 굳이 악에 맞대응하지 않고 자리를 피함으로써 더 큰 자비로 악의 고리를 끊고자 하십니다. 그런 모습이 세상 사람들 눈에는 ‘비굴함’이나 ‘무능’으로 비쳐질 수 있음을 아시면서도 그 길을 피하지 않으십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더 큰 자비로 덮어 선을 이루는 것이 하느님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뜻임을 잘 아셨기 때문입니다. 손등으로 왼쪽 뺨을 맞았을 때 반대쪽 뺨 마저 돌려 대는 것이, 겉옷을 가지려는 자에게 속옷까지 내어주는 것이, 그렇게 하여 상대방에게 자기 행동을 되돌아보고 반성하며 회개할 기회를 주는 것이 이 세상에 하느님 나라를 이루는 길임을 잘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그분을 믿고 따르는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그래야 합니다. 물러남은 패배가 아니라 하느님의 공정하심을 믿는 이들만이 할 수 있는 과감한 결단입니다. 기다림은 포기가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에 의탁한 이들만 할 수 있는 용기있는 선택입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그런 예수님의 모습을 하느님께서 택하신 충실한 종의 모습에 빗대어 설명합니다. “내가 그에게 내 영을 주리니 그는 민족들에게 올바름을 선포하리라. 그는 다투지도 않고 소리치지도 않으리니 거리에서 아무도 그의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올바름’ 즉 하느님의 정의를 선포하면서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나는 맞고 너희는 틀렸다’는 식의 교만함이나, ‘내 말이 정답이니 무조건 복종하라’는 식의 강압적 태도를 지니지 않으셨다는 뜻입니다. 또한 당신 주장을 억지로라도 관철시키기 위해 다투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세상에서는 목소리가 큰 놈이 이길지 몰라도 하느님 나라에서는 그분 뜻을 묵묵히 실천한 이가 더 ‘큰 사람’으로 인정받음을 잘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부족하고 약한 우리는 ‘진리’라는 거대한 우주 중 티끌만큼 작은 일부분만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남이 하는 말에도 일리가 있음을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하는 말이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하지요. 상대방이 하는 말의 논리가 갈대처럼 부러졌다고 해서 그의 기까지 꺾으려 들어서는 안됩니다. 그가 잔뜩 주눅들어 자존감이 바닥까지 떨어지면 하느님께서 마음 아파 하시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의 마음에서 사랑이라는 기름이 똑 떨어져 신앙의 등불이 제대로 타오르지 못하고 연기만 난다고 해서 그를 무시하거나 손가락질 해서는 안됩니다. 그의 마음 속에 주님께서 심으신 말씀의 씨앗이 남아있는 한, 믿음이라는 심지만 망가지지 않는다면 신앙의 불꽃은 언제든 다시 활활 타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주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큰 사랑과 자비에 감사하며, 죄를 지어 기가 꺾인 이웃들의 힘을 ‘자비’로 북돋워주고, 무관심으로 꺼져가는 형제의 신앙을 ‘사랑’으로 밝혀주어야겠습니다. 그렇게 구원에 대한 희망을 소중하게 키워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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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 승수 신부님 강론 말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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