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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6년 7월 21일 (화)연중 제16주간 화요일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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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연중 제16주간 화요일

190715 조재형 [umbrella] 스크랩 06:19

김진명 작가의 세종의 나라를 읽었습니다. 작가는 세종 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이유를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찾고 있습니다. 당시 백성들은 글을 몰랐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글로 호소할 수 없었습니다. 중국의 문자인 한문은 배우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세종 대왕은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글자를 만들고자 하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한글이었습니다. 한글은 단순한 문자가 아니었습니다. 백성을 향한 세종 대왕의 사랑이었고, 약한 이들의 억울함을 풀어 주려는 자비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조정의 대신들 가운데 여덟 명은 세종 대왕의 뜻을 반대하였습니다. 새로운 글자를 만드는 것은 중국의 뜻과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백성들이 글을 알게 되면 자신들의 기득권이 흔들릴 것이라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중국 황제에게 세종 대왕을 폐위시켜 달라고 청하였습니다. 이는 분명히 반역이고 역모였습니다. 중국 황제는 오히려 그 청을 거절하면서 세종 대왕에게 그런 신하들을 벌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세종 대왕은 그들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중국 황제의 신하가 아니라 조선의 신하라고 하며 용서하였습니다. 그리고 한글이 얼마나 쉽고 편리한 글자인지 설명해 주었습니다. 작가는 한글이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왔을 뿐 아니라, 자신을 배반한 사람들까지 용서하는 넓은 마음에서 나왔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말에서도 드러납니다. 어떤 사람은 늘 로 말을 마칩니다. “자지 말고 공부할걸.” “화내지 말고 참을걸.” “교통신호를 지킬걸.”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날걸.” 이렇게 늘 을 입에 달고 살면 후회와 불평이 많아집니다. 삶의 빛보다는 그림자를 먼저 보게 됩니다. 그러면 하루를 사는 것도 힘들고 고통스럽습니다. 물론 후회가 전혀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후회를 통해서 우리는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후회가 습관이 되면 마음이 과거에 묶이게 됩니다. 반대로 로 말을 마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이런 말을 자주 하는 사람은 마음에 여유가 생깁니다. 저도 웬만하면 잘했다.”라는 말을 많이 하려고 합니다. 고맙다는 말도 자주 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말하다 보면 기분이 나쁘다가도 마음이 조금씩 풀립니다. 속이 상하다가도 다시 편안해집니다. 말이 마음을 바꾸기도 하고, 마음이 삶을 바꾸기도 합니다. 나뭇잎은 부는 바람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부는 바람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 더 지혜로운 일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도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신앙을 통해서 우리는 하느님에게서 왔고, 하느님께로 돌아간다는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나뭇잎이 바람에 자신을 맡기듯이, 우리도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에 우리 삶을 맡길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은 죽고 못 살 것 같고, 지금의 걱정이 영원할 것 같지만, 결국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지나가지 않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족을 부정하신 것이 아닙니다.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보다 더 깊은 가족이 있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뜻 안에서 맺어지는 가족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가 됩니다. 신앙인은 혈연과 지연과 학연만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세대와 이념과 빈부의 잣대로 사람을 가르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찾고,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신앙인의 삶입니다. 우리 사회에는 분열과 대립이 많습니다. 지역의 갈등이 있고, 이념의 갈등이 있고, 세대의 갈등이 있고, 빈부의 갈등이 있습니다. 나와 생각이 다르면 쉽게 밀어냅니다. 그러나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새로운 가족의 길을 보여 주십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모두 형제요 자매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남이 아니라 가족입니다. 세종 대왕은 자신을 반대한 신하들까지 용서하면서 백성을 위한 길을 걸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 참된 가족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후회와 불평의 에 머물지 말고, 감사와 용서의 로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괜찮습니다.” “사랑합니다.” 이런 말이 우리의 가정과 공동체를 살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할 때, 우리는 서로에게 형제요 자매가 됩니다. 우리는 어두운 우주 안에 있는 작은 별, 지구 위에서 함께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러니 서로 미워하기에는 우리의 시간이 너무 짧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아껴주기에도 우리의 삶은 길지 않습니다. 오늘 하루, 하느님의 뜻을 먼저 찾으면 좋겠습니다. 나와 다른 사람 안에서도 하느님의 자녀를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참된 가족으로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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