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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6년 7월 24일 (금)연중 제16주간 금요일말씀을 듣고 깨닫는 사람은 열매를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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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이병우 신부님 묵상

190758 최원석 [wsjesus] 스크랩 2026-07-23

김건태 신부님_듣고 보는 신앙인

 

바리사이들과 같은 예수님의 적대자들이 아무것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은 하느님의 잘못도 예수님의 잘못도 아닙니다. 그들이 알아듣기를 원하지 않고, 알아보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존재도 그분의 가르침도 인정하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원하지 않는다’라는 표현은, 우리가 경험하는 하느님께 대한 온전한 자유 의지의 문제이므로, 그렇게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닫아버리기로 작심한다면, 이웃이 어떤 말을 하거나 아무리 두들겨도, 이 의지가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입니다. 우리 인생의 평범한 상황이나 아니면 중요한 순간에, 타인의 말을 경청하기 위하여 우리의 마음을 활짝 열어놓은 적이 몇 번이나 있었는지 돌이켜 보아야 하겠습니다. 특별히 이 타인이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일 때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집착하는 욕구의 대상으로 말미암아 눈이 멀거나, 이러저러한 유혹이 불러일으키는 잡음으로 귀가 막혔을 때, 우리는 알아보지도 못하고 알아듣지도 못합니다.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입니다: “저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좀 더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른 말씀이나 상황이 나를 편하게 만든다는 이유로, 또는 그것들이 내 마음에 든다는 이유로, 들어야 할 것을 듣지 않고, 보아야 할 것을 보지 않은 경우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더욱 큰 문제는 이를 바로잡아야 할 대상으로 깨닫지 못하고서, 그냥 그대로 안주하는 삶을 고집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또한 이러한 삶에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그 책임을 이웃에게, 나아가 하느님께 돌리는 행태 또한 큰 문제입니다. 나아가, 누군가 이러한 행태를 멈추도록 권고했을 때, 분개하거나 불의하다고 외칠 때도 있었습니다.

 

바리사이들이 우리보다 별로 나은 것이 없던 것처럼, 우리와 똑같이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했던 사람들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별로 관심을 끌지 못하거나 자기들의 종교적 신념과 어긋나 그분의 말씀 듣기를 거부했던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이 그들을 사랑하지 않으셨다거나 당신 말씀에 대한 지식을 가로막으셨던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 마다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책임은 다른 사람들 또는 하느님께 있던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들에게 있음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이사야 예언자의 말을 인용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당신의 말씀을 알아듣도록 허락하셨음을 분명히 하십니다: “저 백성이 마음은 무디고, 귀로는 제대로 듣지 못하며, 눈은 감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볼 수 있는 눈과 들을 수 있는 귀”를 갖출 수 있도록 사랑과 인내로 양성하신 사도들을 신앙의 모범으로 보내주시고, 이들을 기초 삼아 세우신 교회 안에 우리를 불러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려야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마음의 눈을 크게 뜨고 귀를 활짝 열어 예수님의 행적과 가르침을 눈여겨보고 귀 기울여 듣는 신앙인의 자세를 점검하고 다짐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하루, 만나는 사람들의 말에 좀 더 귀 기울이고 그들의 바람에 좀 더 눈을 여는 가운데, 신앙인들은 누구보다도 편견 없이 잘 보고 잘 듣는 사람들임을 드러내는, 자랑스러운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무리를 향해 말씀하신다. “너희에게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11절)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를 받아들일 준비가 된 자에게는 그 신비를 열어 주시고, 마음을 닫은 자에게는 닫힌 채로 두신다. 이는 신앙이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열정과 선택의 결과임을 보여 준다. 

 

예수님은 이어서 말씀하신다. “사실,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12절) “가진 자”는 하느님을 찾고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을 뜻한다. “없는 자”는 하느님께 마음을 닫고, 복음을 무관심하게 대하는 사람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에 대해 “신앙 안에서 이미 가진 자는 더 깊은 이해와 은혜를 얻게 되고, 마음을 닫은 자는 그 이해조차 잃게 된다.”(De Doctrina Christiana 1 요약)라고 설명한다. 즉, 신앙은 적극적 선택과 반응을 요구하며, 이를 통해 성장하는 것이다. 

 

유다인들은 모세의 기적과 예수님의 표징을 보고도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전히 회개와 체험의 가능성을 열어 두신다. “내가 정말 기뻐하는 것이 악인의 죽음이겠느냐? … 악인이 자기가 걸어온 길을 버리고 돌아서서 사는 것이 아니겠느냐?”(에제 18,23)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주님을 ‘안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분의 뜻을 행하지 않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 참된 앎은 삶으로 증명된다.”(Homilia XXIII in Matthaeum 요약)라고 강조한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하늘 나라의 신비는 주어졌다. 그러나 복음에 무관심하거나 일상적 바쁨에 파묻혀 있다면, 이미 받은 은총을 잃을 수 있다. 가지고 있어야 줄 수 있다는 말처럼, 우리는 받은 은혜를 다른 사람과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한다. 신앙, 사랑, 용서, 봉사는 모두 체험한 은총에서 비롯된다.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을 깨닫고, 매일 기도와 성찰로 마음을 준비해야 한다. 그래야 시련과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신앙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 

 

그러면, 나는 하느님께 마음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이고 있는가? 내가 받은 신앙의 은혜를 다른 이에게 나누고 있는가? 일상에서 주님과 함께 걸으며,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체험하고 있는가? 하느님을 알고, 체험하며, 살아내는 삶 속에서 신앙의 능력과 기쁨이 자라난다. 그리하여 우리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아는 행복한 자가 되고, 받은 은혜를 세상에 풍성히 나누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병우 신부님_<연중 제16주간 목요일>

 

"너희에게는 하늘 나라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마태13,11) 

 

'신비의 나라인 하느님의 나라!' 

 

오늘 복음(마태13,10-17)은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에 대한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왜,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십니까?"(마태13,10)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너희에게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내가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이유는 저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너희의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마태13,11.13.16) 

 

'하늘 나라의 신비!'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의 나라는 신비의 나라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세상 가치인 돈과 권력과 명예를 통해 이루어지는 나라가 아닙니다.

신앙인의 목적이요 희망인 하느님의 나라는 신비의 나라입니다. 곧 내가 예수님처럼 죽어야 하고, 내가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지금 여기에서 실행할 때 들어갈 수 있는 신비의 나라입니다. 

 

예수님께서 여러 비유를 통해 설명하신 하느님의 나라는 믿음이 있어야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비유이기에 말하고자 하는 그 본질이 감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은 인간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있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큰 믿음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아주 작은 믿음, 참깨보다도 작은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이면 충분하다고 하십니다. 이런 믿음을 청합시다!

이런 믿음만 있으면 감추어져 있는 많은 것들을 보게 되는 기적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산더러 '여기서 저기로 옮겨 가라.' 하더라도 그대로 옮겨 갈 것이다. 너희가 못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마태17,20) 

 

(~ 잠언19,29)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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