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승수 신부님 [연중 제17주일 가해, 조부모와 노인의 날]
-
190809 박영희 [cornelia2] 스크랩 08:06
-
[연중 제17주일 가해, 조부모와 노인의 날] 마태 13,44-52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내가 원하는 어떤 것을 얻으려면 다른 무엇을 포기해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귀하고 가치있는 것일수록, 내가 포기해야 하는 것들의 가치도 커지지요. 내가 가진 유한한 재물과 능력으로는 원하는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무엇이 참으로 귀한 것인지를 알아보고 식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또한 더 귀한 것을 선택하기 위해 그렇지 않은 것을 과감하게 포기하는 ‘결단력’도 필요합니다. 오늘의 제1독서에 나오는 솔로몬이 바로 이 두가지를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하느님 백성을 그분 뜻에 따라 올바르게 이끌기 위해서 꼭 필요하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깊이 묵상했기에, ‘장수’나 ‘부’, ‘원수들의 목숨’ 같은 것을 바라지 않고, 옳은 것을 가려내는 ‘분별력’을 얻고자 했습니다. 그런 분별력을 갖추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하느님 말씀을 귀기울여 ‘듣는’ 일임을 알았기에, 하느님께 ‘듣는 마음’, 즉 그분 말씀을 겸허한 자세로 듣고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린 마음을 달라고 청했습니다. 그 결과 참된 지혜라는 보물을 얻을 수 있었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여러 비유를 통해 우리가 솔로몬과 같은 마음으로 ‘하느님 나라’라는 보물을 추구해야 함을 알려주십니다. 첫번째는 ‘밭에 숨겨진 보물’의 비유입니다. 어떤 사람이 밭에서 일을 하다가 아주 큰 보물을 발견하게 되자,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샀다는 것입니다. 유다인들은 보통 귀한 보물을 땅 속에 깊이 묻어서 보관했는데, 전쟁을 많이 겪다보니 그 보물을 묻어둔 사람이 죽거나, 멀리 유배갔다가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지요. 율법에 따르면 그 보물의 소유권은 그것이 묻혀있는 땅 주인에게 있었기에, 밭에서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먼저 그 밭을 통째로 사야만 합법적으로 그 보물을 취득할 수 있었습니다. 이 비유를 통해 알 수 있는 ‘하느님 나라’의 특징은 그것이 주는 ‘좋은 것들만’ 골라서 취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그 보물이 숨겨진 ‘인생’이라는 밭 전체를 온전히 ‘나의 것’으로 취해야 하는데, 인생이라는 밭 안에는 고통과 시련, 슬픔과 아픔, 실패와 좌절 같은 ‘십자가’들이 가득하지요. 결국 신앙생활이 주는 참된 기쁨과 보람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서는 그런 십자가들을 기꺼이 끌어안아야 되는 겁니다. 그 과정에서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것들을 포기하게 되더라도 말이지요.
두번째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의 비유입니다. 그가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자, 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귀하고 대단한 것이라 해도 그 진주 ‘하나’를 얻기 위해 자기가 가진 진주 ‘모두’를 처분하는 상인의 모습은 언뜻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보석’이 지닌 특징을 제대로 알지 못해 생기는 오해이지요. 1캐럿짜리 다이아몬드 100개와 100캐럿짜리 다이아몬드 한 개 중 어느 쪽의 가치가 더 클까요? 당연히 100캐럿짜리 다이아몬드의 가치가 압도적으로 크지요. 무게는 20그램으로 서로 같지만 1캐럿 짜리 다이아몬드 100개의 가치가 1억원 정도라면, 100캐럿 짜리 다이아몬드 한 개는 최소 250억원 이상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보석 상인 입장에서는 그 다이아몬드 ‘하나’를 얻을 수만 있다면, 자기가 가진 다이아몬드 ‘전부’를 처분하는 것이 전혀 아깝지 않은, 오히려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 되는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라는 보물의 가치가 그렇다고 하십니다. 이 세상에 있는 수많은 보물들을 다 합쳐봐야 ‘하느님 나라’라는 보물 하나의 가치에 한참 못미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세상이 주는 ‘소소한’ 행복들에 연연하거나 집착하지 말고, 하느님 나라에서 누릴 참된 행복 하나를 얻기 위해 전심전력을 다하라는 것이지요.
세번째는 ‘온갖 종류의 고기를 모아들인 그물’의 비유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우리 가운데에’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시면서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가, 즉 그분의 뜻과 다스림이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랑과 자비가 넘치시는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더 많은 이들이 회개하여 구원받기를 바라시기에, 종말 때까지 밀과 가라지, 즉 선인과 악인들이 함께 자라도록 그대로 두시지요. 그러니 아직 종말의 때가 오지 않은 지금 이 순간에는 하느님 나라라는 그물 안에 좋은 물고기와 나쁜 물고기가 ‘함께’ 담겨 있는 상태인 겁니다. 그러나 내가 지금 그 그물에 담겨 있다고 해서 종말 이후에도 계속해서 그 그물에 담겨 있을 수 있는 건 아니지요. 종말의 때가 되면 주님께서 재림하셔서 하느님 뜻을 충실히 지키며 살아온 ‘의인’들은 구원의 그릇에 담으시고, 하느님 뜻을 거스르며 살아온 ‘악인’들은 그물 밖으로 내던지시어 세상과 함께 멸망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때에 가서 땅을 치고 후회하지 않으려면, 아직 내가 하느님 나라라는 그물 안에 담겨있는 지금 이 순간 하느님 뜻을 충실히 실천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가 우리가 도달해야 할 목표이자 보물이라면, 하느님 말씀은 우리를 하느님 나라까지 인도하는 내비게이션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 나라라는 보물을 얻고 싶다면 삶 속에서 하느님 말씀을 충실히 따라야 하는 겁니다. 예수님은 그런 우리의 모습을 ‘하늘나라의 제자가 된 율법학자’에 비유하시면서, 그런 이들은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내는 집주인 같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율법학자는 기본적으로 모세오경을 비롯한 ‘구약성경’에 담긴 하느님 말씀, 즉 ‘율법’을 충실하게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이지요. 그러나 그저 율법을 지키는 것 만으로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가르침, 그분께서 주신 새로운 계명들도 귀기울여 듣고 따르는 ‘하늘나라의 제자’가 되어야 하는 겁니다.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내 마음에 드는 말씀, 내 기호에 맞는 말씀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일 게 아니라, 주님 말씀 전체를 있는 그대로 내 안에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해 따라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하느님 나라라는 보물을 누리기에 합당한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
- 이영근 신부님_“하늘나라는 바다에 던져 온갖 종류의 고기를 모아들인 그물과 같다.”(마태 13,47)
-
190811
최원석
09:40
-
반대 0신고 0
-
- ■ 가톨릭 라디오 : 연중 제17주일 보물을 알아보는 마음
-
190810
이재현
09:30
-
반대 0신고 0
-
- 함승수 신부님 [연중 제17주일 가해, 조부모와 노인의 날]
-
190809
박영희
08:06
-
반대 0신고 0
-
- "오늘 예수님은, 하늘 나라와도 같은 분입니다."(마태 13, 45-48.)
-
190808
한택규엘리사
06:50
-
반대 0신고 0
-
- 가슴 속 시냇물같은 같은 친구들에게
-
190807
김중애
06:06
-
반대 0신고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