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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6년 7월 29일 (수)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와 성 라자로 기념일주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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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이병우 신부님 默想

190868 최원석 [wsjesus] 스크랩 10:37

김건태 신부님_마르타 마리아 라자로 

본디 오늘은 ‘성녀 마르타’의 기념일이었으나, 선임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교황청 경신성사성의 교령(2021년 1월 26일)을 승인하고 확정함으로써, ‘성녀 마르타, 성녀 마리아, 성 라자로 기념일’, 곧 ‘삼남매 기념일’이 되었습니다. 서방 교회 전통에서 성녀 마리아의 신원이 분명하지 않아,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전례력을 개정하면서 7월 29일에 성녀 마르타 기념일만 수록했습니다. 또한 성 라자로는 전례력에는 빠져 있었지만, ‘로마 순교록’은 12월 17일자 목록에서 주님에 의해 죽음에서 소생한 인물이자 주교로서 프랑스의 마르세유에서 선종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앞의 교령은 최신 ‘로마 순교록’의 연구 결과와 일부 지역교회 전례력에서 이미 세 남매를 같은 날 함께 기념해 온 사실 등을 근거로, 오늘을 세 남매의 복음적 증거를 함께 기념하는 날로 변경하여 확정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주 예수님은 베타니아의 집에서 마르타, 마리아, 라자로의 가족 정신과 우애를 경험하셨고, 이런 까닭에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셨다고 말한다. 마르타는 예수님께 너그러이 환대를 베풀었고, 마리아는 주님의 말씀을 온순하게 경청했으며, 라자로는 죽음을 굴복시키신 분의 명령으로 무덤에서 즉시 나왔다.”라고 세 남매의 복음적 증거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을 앞서는 내용을 보면, 라자로가 병을 앓고 있을 때, 마르타와 마리아 자매는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이 소식을 알려드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그 병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하는 말씀과 함께 며칠이 지난 다음 베타니아로 가십니다. 마르타는 예수님을 만나자마자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 하는 원망 섞인 신앙고백을 합니다. 이어지는 예수님과의 대화에서도 예수님의 뜻을 온전히 깨닫지는 못하지만,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하며 좀 더 성숙한 신앙고백에 이르게 됩니다. 이처럼 마르타는 예수님의 사랑을 받으며 가까이에서 주님을 섬기는 봉사를 통해 차츰 완전한 신앙고백으로 나아간 참된 제자의 모범이 됩니다.

 

오늘 복음 말씀의 다음 부분에서 우리는 마르타처럼 원망 섞인 목소리로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고 말하는 마리아를 만나며, 마리아 역시 마르타처럼 동일한 신앙고백에 이르게 되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마르타와 마리아의 슬픔과, 이 슬픔의 원인이 된 라자로의 죽음 앞에 예수님은 “마음이 북받치고 산란해지시며”, “끝내 눈물을 흘리시며”, 라자로를 다시 살리심으로써 슬픔의 원인을 제거하십니다. 예수님이 이 세 남매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확인할 수 있으며, 이들의 참 신앙이 “그 병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하는 그분 말씀의 완성을 맛보게 합니다. 물론 우리는 라자로를 다시 살리심이 당신의 죽음을 앞당기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사실과 함께, 당신의 부활을 준비하고 예고한 사건이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와 성 라자로, 이 세 남매는 성경의 인물들 가운데 부활신앙을 바탕으로 한 신앙고백을 통해 신앙인의 모범으로, 아울러 형제애의 본보기로 공경받고 계신 분들입니다. 예수님이 이들 세 남매를 특별히 사랑하신 이유도 이들 안에서 참된 부활 신앙인의 모습과 진정한 형제 관계를 체험하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하루, 신앙적으로 부족함이 많지만, 오늘의 세 남매처럼 주님의 도우심으로 완벽한 신앙고백에 이를 수 있는 은총을 청하며, 형제 또는 이웃과의 관계에서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살피는, 기억에 남는 하루 되기를 바랍니다.

 

조욱현 신부님_주님께서는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 

 

1. 복음 말씀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27절) 오늘 복음은 예수님과 마르타의 대화를 중심으로, 예수님께서 자신을 “부활이요 생명”(25절)이라고 선포하시는 장면을 보여 준다. 마르타는 인간적인 슬픔 속에서도 주님께 대한 믿음을 고백한다. 이는 단순히 먼 훗날의 희망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주어지는 구원에 대한 고백이었다. 

 

2. 교부들의 묵상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마르타의 믿음을 이렇게 해석한다. “마르타는 죽음의 현실 앞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주님을 신뢰하였다. 그녀는 눈앞의 죽음을 보면서도 생명의 주님을 고백하였다.”(Hom. in Ioannem 62,1 의역) 성 아우구스티노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라는 말씀을 설명하며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안에서 죽은 이들을 일으키시는 분이다. 죄 속에서 죽은 영혼을 지금 여기서 되살리시는 분이며, 마지막 날에는 우리의 육체까지 일으키실 것이다.”(In Ioannem Tractatus 49,15 의역) 이 가르침은 구원이 단순히 미래의 약속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삶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 주고 있다. 

 

3. 교회의 가르침

교리서는 말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지금 당신 성령과 성사들을 통해 이미 당신 생명을 우리에게 주신다. … 마지막 날에 이 생명은 충만하게 드러날 것이다.”(1000항 요약) 사목 헌장도 이렇게 가르친다. “사실 인간은 오직 육화하신 말씀 안에서만 인간 존재의 신비를 참으로 깨닫는다. … 그리스도는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써 모든 사람에게 새 생명을 열어 주셨다.”(22항 요약) 즉, 부활은 단순히 종말론적 사건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총 안에서 지금 체험되는 현실이다. 

 

4. 오늘의 메시지

예수님은 마르타에게 말씀하신다.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23절). 이 말씀은 단순히 라자로를 위한 약속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향한 약속이다. 부활은 현재의 체험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지금 누리는 구원인 것이다. 믿음의 고백은 단순한 말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그분의 말씀을 살아내는 삶을 말한다. 

 

5. 삶의 적용

우리도 믿음의 고백을 일상에서 실천해야 한다. 마르타처럼 고통과 죽음의 현실 속에서도 “주님은 그리스도시다.”라는 믿음을 고백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현재의 구원을 체험하는 것이다. 매일의 기도와 성사 안에서, 그리고 이웃 사랑을 통해 지금 여기서 구원의 은총을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부활 신앙이라는 것은 죽음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작은 희생과 자기 부정의 삶에서 이미 부활의 신비를 맛보게 될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세상에서 부활 신앙의 증거자가 된다. 

 

6. 결론

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 성 라자로의 삶은 신앙, 사랑, 그리고 부활의 증언을 보여 준다. 우리도 “예, 주님!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27절)라는 고백을 삶으로 드러내며, 지금 여기서부터 부활 신앙을 살고 증언하는 제자가 되어야 하겠다. 

 

이병우 신부님_<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와 성 라자로 기념일>(7.29)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요한11,27)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오늘 복음(요한11,19-27)은 '부활이며 생명이신 예수님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라자로가 죽었습니다. 라자로가 죽은 지 나흘이 지났을 때에 예수님께서 라자로의 집을 방문하십니다. 라자로는 마르타와 마리아의 오빠입니다.

 

오늘은 세 형제자매를 함께 기념하는 '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와 성 라자로 기념일'입니다. 먼저 오늘 영명축일을 맞이한 형제자매님들께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오늘 복음은 '죽은 라자로를 두고 나눈 예수님과 마르타의 대화'입니다. 그 대화는 이렇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요한11,21-22)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요한11,23)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요한11,24)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요한11,25-26)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요한11,27)

 

사후의 세계를 걱정하는 이들이 있고, 그 세계를  두려워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보편 마음, 특히 사후의 세계가 있다고 믿는 이들의 보편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을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의 옮아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연결해 주는 다리라고 생각하면서, 저 세상에서의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행복을 누리기 위해 잠시 지나가는 이 세상에서 잘 살려고 끊임없이 노력합니다.

 

그 노력이 바로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 '십자가 죽음을 통해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이제와 영원한 행복(생명)은 지금 여기에서 이 사랑을 믿고, 이 사랑 안에 머물려고, 이 사랑이 되려고 노력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은총(선물)입니다.

 

항상 지금 참되게 믿고, 참되게 희망하고, 참되게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됩시다!

나중에 가서 후회하지 말고, 죽음을 기쁘게 맞이할 수 있도록.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사랑해야 합니디."(1요한4,11)

 

(~ 지혜18,20)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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