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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6년 7월 29일 (수)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와 성 라자로 기념일주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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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승수신부님 [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와 성 라자로 기념일]

190869 박영희 [cornelia2] 스크랩 12:14

함승수 신부님 

 

[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와 성 라자로 기념일] 요한 11,19-27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마르타와의 대화를 통해 당신을 따르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마음가짐을 ‘나는 안다’라는 인식의 차원에서 ‘나는 믿는다’라는 투신의 차원으로 변화시키십니다. 오빠의 장례 절차가 끝나갈 때 쯤 뒤늦게 도착하신 예수님께 그녀는 이렇게 말하지요.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말 안에는 예수님께 대한 원망과 섭섭함이 담겨 있습니다. 자기 오빠가 죽은건 예수님이 제 때 도착하시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예수님이 곁에 계시기만 했다면 오빠가 금새 회복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그렇기에 이 말 안에는 예수님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 그리고 자기들을 향한 그분의 사랑을 신뢰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고도 할 수 있지요.

 

그러나 주님께 대한 그녀의 믿음은 머리로 ‘아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초보적인 단계에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즉,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분이 어떤 능력을 지니셨는지는 알겠는데 그게 내 삶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는 아직 모르고 있던 겁니다. 그래서일까요? 하느님 아버지와 예수님 사이의 친밀한 관계에 대해서도, 그리고 주님을 굳게 믿고 따르는 이들이 세상 종말의 때에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된다는 약속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οιδα)고 말할 뿐 ‘믿는다’(πιστιω)고 고백하지는 않습니다. 지금 당장 내가 세상을 떠나 하느님 아버지께로 가는게 아니기에 ‘부활’이 그렇게 절박하지 않고, 주님을 믿고 따른 보상이 지금 여기에서 주어지는 것도 아니기에 ‘구원’을 나와 먼 남의 일처럼 여기는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르타에게, 그리고 무미건조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부활에 대한 믿음을 일깨우시고자, 당신을 믿고 따르는 이들이 받게 될 보상에 대해 알려주시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당신께서 가르치신 구원의 진리를 우리가 ‘믿는지’를 물으십니다. 구원은 먼 훗날 우리가 죽은 다음에야 이루어지는 미래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부터 시작되는 ‘현재’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신앙생활 하는 지금 구원을,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믿고 체험하지 못한다면 죽은 다음에는 하느님을 무서운 심판자로만 여겨 두려워하고 멀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구원을, 그리고 하느님 나라를 지금 여기에서부터 이루어질 ‘나의 일’이라고 믿고 받아들이며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 주님의 뜻을 헤아린 마르타는 마침내 가슴에서 우러나는 믿음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있는 메시아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을 알게 되었고 또 믿게 되었다면 그 믿음대로 ‘살아야’ 합니다. 말로만 ‘주님 주님’한다고 해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믿음 안에서 사랑을 실천해야 하느님 안에 머무를 수 있고 하느님께서도 그 안에 머무르시게 되지요. 그렇게 하느님 사랑 안에서 영원히 머무르며 참된 기쁨과 행복을 누리는 것이 우리가 바라고 지향해야 할 참된 구원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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