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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6년 8월 2일 (일)연중 제18주일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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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승수 신부님 [ 연중 제 17주간 성 알퐁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기념]

190926 박영희 [cornelia2] 스크랩 2026-08-01

함승수 신부님

 

[연중 제17주간 토요일, 성 알퐁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주교학자 기념] 마태 14,1-12 "헤로데는 요한을 죽이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웠다."

 

 

 

 

오늘 복음에서는 허영과 욕망에 휘둘려 ‘방종’을 ‘자유’라고 착각하며 누리다가 죄의 노예가 되어버린 사람이 등장합니다. 바로 예수님 시대 최고의 권력자였던 헤로데입니다. 그도 사리분별을 할 줄 아는 사람이었기에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모를 리 없었지만, 욕정이 그의 눈을 가려 동생의 아내를 빼앗아 차지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말았지요. 그런데 그의 권력을 두려워한 주위사람들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니 자신이 잘못을 저질렀다는 의식이 희미해지고, 그와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다보니 옳고 그름의 기준마저 모호해졌을 겁니다. 그렇게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눈가리고 아웅하며 넘어가고 싶은 잘못들이 많았지요.

 

그런데 요한이라는 자가 나타나 계속 양심을 건드리니 마음이 꽤나 불편했습니다. 동생의 아내를 빼앗는 것이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불의’라는 건 자기도 모르는 바가 아닌데, 그래서 그냥 조용히 덮어두고 넘어가고 싶은데, 자꾸만 그 문제를 들먹거리니 화도 낫겠지요. 보통 그런 상황에서 불의한 권력자들이 택하는 해결책은 진리를 선포하는 입을 힘으로 틀어막아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헤로데도 그런 식으로 요한을 죽이고 싶었지요. 그런데 그럴 수 없게 만드는 ‘걸림돌’이 있었으니 바로 자신을 지켜보는 ‘군중의 눈’입니다. 요한을 참된 예언자로 여기던 군중이 도끼눈을 뜨고 자신이 그에게 불의를 저지르지 않는지 감시하고 있었으니 섣불리 그를 제거했다가 폭동이 일어나지 않을까 두려워했던 겁니다. 숨은 일도 보시는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두려워하며 눈치를 본 것, 이것이 바로 헤로데가 둔 가장 큰 패착이었습니다. 그런 헤로데였기에 자기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경솔하게 맹세를 남발했다가 역사에 영원히 박제될 ‘불의한 살인’을 저지르고 말았지요.

 

헤로데는 한 고을을 다스리는 영주였지만, 정작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자기를 지켜보던 사람들의 눈에 휘둘리고, 자기를 과시하고 싶은 허영에 휘둘리고, 체면을 지키기 위해 한 잘못된 선택에 휘둘리고… 그러다 결국 하느님께서 보내신 예언자를 죽이는 죄인이 되었습니다. 하느님을 내 삶의 주님으로 모시지 못하고 내가 주인공이 되려고 들면 이 세상에 오직 ‘나 뿐인’ 사람, 즉 ‘나쁜’ 사람이 됩니다. 그렇게 하느님 뜻을 거스르고 죄의 노예가 되는 겁니다. 헤로데처럼 ‘나뿐인’ 사람으로 살다가 죄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에게는 아버지로 섬기고 따라야 할 하느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철저히 하느님의 뜻을 따랐고, 그분께서 보여주신 구원의 진리 안에서 참된 자유를 누렸습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하느님의 뜻대로 했기에 그에게는 남들 눈치를 볼 일도, 자기가 저지른 죄 때문에 하느님 눈치를 보며 주눅들 일도 없었지요. 말 그대로 ‘진리가 그를 자유롭게 한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하느님께 대한 믿음 안에서 누려야 할 참된 자유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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