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중 제18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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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27 조재형 [umbrella] 스크랩 2026-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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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대교구 사제 모임이 콜롬비아 보고타에 있었습니다. 보고타 선교센터에서 사목하는 신부님이 지난 3년 동안의 사목 현황을 보고하였습니다. 주일 미사 참례 인원이 평균 4명에서 7명으로 많이 늘었다고 했습니다. 세례도 3년 동안 5명이나 받았다고 했습니다. 숫자로만 보면 큰 공동체는 아닙니다. 그러나 복음의 눈으로 보면 그곳에는 하느님 나라의 씨앗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고, 미사를 봉헌하고, 세례를 받고, 신앙 안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고타 선교센터는 주일 미사만 봉헌하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현지 본당의 미사를 도와주고, 남미에서 사목하는 선교 사제들의 쉼터가 되고, 순례자들을 맞이하는 열린 집이 되고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서울 대교구의 ‘한마음 한 몸 운동 본부’와 연계해서 남미의 어려운 교구를 돕는 일도 하고 있었습니다. 한 번에 30,000불씩, 벌써 6번이나 도움을 주었다고 합니다. 주교님께서는 사목 현황 보고를 들으신 후에 앞으로도 선교센터는 계속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선교센터는 남미의 어려운 교구를 돕는 거점이 될 수 있고, 선교 사제들의 쉼터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작은 공동체였지만, 그 안에는 복음의 큰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처럼 작아 보였지만, 주님께서 축복하시면 많은 사람을 살리는 은총의 자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예전에 적성 본당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 본당 신자 중에서 화재로 집이 전소한 분이 있었습니다. 그 형제님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였고, 본당의 공소회장도 했었고, 가족 모두가 성당의 일에 헌신적으로 봉사했었습니다. 마침, 성당에 비어 있는 숙소가 있었습니다. 본당 교우들은 집을 새로 지을 때까지 그 가족이 성당 숙소에서 지낼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제게 청하였습니다. 저는 신자들의 말을 듣고 기쁜 마음으로 4개월 동안 본당의 빈 숙소에서 지낼 수 있도록 배려하였습니다. 형제님께서는 성당 숙소에 머무는 동안 관리인처럼 성당의 일을 돌보았습니다. 나중에 집을 새로 지어 입주한 후에는 감사헌금도 하였습니다. 돌아보면 그것은 단순히 숙소를 빌려준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려움에 부닥친 이웃에게 공동체가 마음을 열어 준 일이었습니다. 성당의 빈방 하나가 한 가정에는 위로가 되었고, 공동체에는 복음의 실천이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제자들은 당황하며 말합니다. “저희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가진 것이 없습니다.” 제자들의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습니다. 현실적으로 보면 오천 명을 먹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많이 가진 뒤에 나누기를 바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없는 가운데서도 먼저 내어놓기를 바라셨습니다. 기적은 예수님께서 행하셨지만, 그 시작은 제자들이 가진 작은 것을 내어놓는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은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기적이 아니라, 작은 나눔이 주님의 손에 들렸을 때 일어난 기적이었습니다. 우리는 때로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가진 것이 별로 없습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능력이 없습니다. 돈이 없습니다.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가 없는 것을 보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가진 작은 것을 보십니다. 작은 시간, 작은 정성, 작은 친절, 작은 기도, 작은 봉헌을 보십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보잘것없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일지 모르지만, 주님께서 축복하시면 그것은 많은 사람을 살리는 은총이 됩니다.
보고타 선교센터의 작은 공동체도 그렇습니다. 성당의 빈 숙소를 내어준 적성 본당의 교우들도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큰 숫자와 큰 능력만을 통해서 일하시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작은 믿음, 작은 나눔, 작은 사랑을 통해서도 하느님 나라를 보여 주십니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보여 주신 것은 무엇일까요 믿지 않는 사람들의 눈에는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표징과 가르침이 마치 가상현실, 증강현실, 혼합현실처럼 보였을지 모릅니다. 현실의 세상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소경이 눈을 뜨고,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나병환자가 깨끗해지고, 중풍 병자가 치유되고, 물이 포도주가 되는 일은 인간의 계산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물고기 두 마리와 빵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셨습니다.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눈으로 보면서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면 예수님께서 행하신 모든 표징과 가르침은 지금 이곳에서 생생하게 체험하는 현실이 됩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가상현실도 아니고, 증강현실도 아니며, 혼합현실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우리가 믿고 따를 때 우리 삶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 나라의 현실입니다. 누군가를 용서할 때, 하느님 나라는 현실이 됩니다. 어려운 이웃에게 손을 내밀 때, 하느님 나라는 현실이 됩니다. 작은 것을 기꺼이 나눌 때, 하느님 나라는 현실이 됩니다. 절망 속에서도 다시 일어설 때, 하느님 나라는 현실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먼 하늘나라의 이야기를 하신 것이 아닙니다.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살아야 할 하느님 나라를 보여 주셨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 만남 이후 바오로 사도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세상의 기준으로 살지 않았습니다. 박해와 고난, 감옥과 매질, 배고픔과 위험 속에서도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제2독서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이 고백은 단순한 위로의 말이 아닙니다. 하느님 나라를 현실로 체험한 사람의 신앙 고백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이 말씀은 부담을 주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를 기적의 동반자로 초대하시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세상을 모두 바꾸기를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우리가 가진 작은 것을 주님께 내어놓기를 바라십니다. 우리의 작은 기도, 작은 나눔, 작은 친절, 작은 용서, 작은 봉헌이 주님의 손에 들릴 때, 그것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희망이 되고 생명이 됩니다. 보고타 선교센터의 작은 공동체처럼, 적성 본당 교우들의 따뜻한 배려처럼, 오늘 복음의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처럼, 우리도 주님께 우리의 작은 것을 내어놓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그 작은 것을 축복하시어 많은 사람을 살리는 은총으로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주님을 믿고, 주님께 내어놓고, 이웃과 나누는 바로 그 자리에서 하느님 나라는 이미 시작되고 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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