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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6년 8월 5일 (수)연중 제18주간 수요일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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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이병우 신부님 묵상

190984 최원석 [wsjesus] 스크랩 2026-08-04

김건태 신부님_조상의 전통

 

오늘 복음 말씀은 예수님이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과 벌이신 논쟁 장면 하나를 소개합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과 자주 논쟁을 벌이는, 예수님의 적대자로 등장하는 사람들 가운데,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을 자주 만납니다.

 

 

바리사이들은 유다교의 기록 전승인 ‘모세의 율법’은 물론 구전 전승을 가리키는 ‘조상들의 전통’에 충실했던 사람들로서, 이 두 전승에 대한 철저한 준수가 구원을 결정짓는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것이 바로 구원의 절대적 요소인 의(義)를 쌓는 일이라 생각했으며, 따라서 죄인들과의 접촉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한편, 예수님 시대에 흔히 ‘라삐’(스승)라 불리던 율법 학자들은 대부분 바리사이파에 속했던 사람들로서 그 중심축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본디 율법 학자들은 서기관들로서 국가의 각종 문서를 기록하고 해석하는 임무를 수행했으며, 후에는 율법을 보존하고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에 전념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모세오경을 집대성한, 유다교의 아버지라 불리는 ‘에즈라’입니다.

 

오늘의 문제는 식사 전에 손을 씻는 규정에 관한 것입니다: “어째서 선생님의 제자들은 조상들의 전통을 어깁니까? 그들은 음식을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않습니다.” 사실,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어야 한다는 것은 위생상의 권고에서 비롯되었을 것입니다. 무더울 뿐만 아니라 먼지가 많은 지방에서, 그것도 음식을 섭취할 때 손을 사용하던 사람들에게 손 씻음은 절대적인 권고 사항이었을 것입니다. 물론 이 절차가 하나의 규정으로 성문화될 때는, 이를 경시하는 경향이 팽배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이러한 규정을 ‘사람의 전통’으로 단정하신 다음, 보다 근원적인 문제로 넘어가십니다: “너희는 듣고 깨달아라.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지 않는다. 오히려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은 소위 ‘조상들의 전통’이라는 차원에 대하여 비판적인 시각을 표명하시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시 말해서, 식사 전에 손을 씻는 의식은 권고 정도로 충분하지, 굳이 규정으로 만들어 인간을 속박할 필요까지는 없다는 말씀이신 것 같습니다. 이어서 주님은 정말 씻어야 할 것은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임을 밝히십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는 이 부분이 생략되어 있지만, 예수님은 이 작고 모자란 인간의 마음에 그 크신 하느님을 모시기에 부적합한 요소들, 씻어 없애 버려야 할 요소들, 곧 “입에서 나오는 것”으로, “나쁜 생각들, 살인, 간음, 불륜, 도둑질, 거짓 증언, 중상”(15,19)을 나열하십니다. 마음이 깨끗해야, 달리 말하면 마음을 비워야 비로소 하느님을 모실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열거된 이 요소들은 모두 이웃과 올바른 관계 형성을 위해 경계해야 할 것들이라는 점에서, 이웃과의 관계를 올바르게 할 때 비로소 하느님과의 관계를 의롭게 하고 회복할 수 있다는 가르침으로 다가옵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계명 준수는 그 계명에 내 마음이 온전히 실려 있을 때 가능한 일입니다. 신앙인으로 살아가면서, 준수해야 할 계명 또는 규정의 의미와 가치를 제대로 터득할 수 있을 때, 좀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자세가 동반될 것입니다.

 

오늘 하루, 이러한 계명과 규정에 담긴 하느님의 뜻은 세상과 인류 구원에 있음을 다시금 마음에 새기며, 하느님의 뜻 구현을 위해 힘쓰는 교회의 구성원으로서 조금 더 기도하고 희생할 것을 다짐하는, 기억에 남는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 “사람을 더럽히는 것” 

 

오늘 복음에서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을 찾아온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 믿음을 가지려 온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조상들의 전통을 지키지 않았다고 따지러 왔다. “어째서 선생님의 제자들은 조상들의 전통을 어깁니까?”(2절) 그들이 문제 삼은 것은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일이었다. 원래 정결례 규정은 하느님께 대한 경외와 이웃 사랑을 돕기 위한 것이었지만, 그들은 그 정신을 잃어버리고 문자와 관습 자체에 집착하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불러 말씀하신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지 않는다. 오히려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11절) 주님께서는 율법을 폐지하신 것이 아니라, 율법의 참된 중심이 마음의 정결에 있음을 드러내신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 대목을 해설하며, 예수님께서 음식 규정을 문제 삼으신 것이 아니라 위선과 교만을 문제 삼으셨다고 말한.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음식이 아니라 “악한 의지와 부패한 마음”이라는 것이다(“마태오 복음 강해”, 51강). 성 아우구스티노도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손의 씻김보다 양심의 씻김을 바라신다.” 겉은 깨끗해 보여도 마음 안에 미움과 시기와 거짓이 있다면 참된 정결이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음식 자체가 사람을 더럽히지 않는다고 하신다. 창조된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창세 1장 참조) 교리서는 이렇게 가르친다. “창조된 것은 모두 좋은 것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으면 배척할 것이 하나도 없다.”(299; 1티모 4,4 참조) 그러므로 문제는 음식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마음이다. 교회는 외적 절제와 단식의 가치를 인정하지만, 그것은 마음의 회개를 위한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열거하신 “살인, 간음, 불륜, 도둑질, 거짓 증언, 중상”(19절)이야말로 사람을 참으로 더럽히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음식이 사람을 거룩하게 하지 않는다고 해서, 성체성사의 은총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성체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과 피이다. 성 바오로는 경고한다. “합당하지 않게 빵을 먹고 주님의 잔을 마시는 자는 주님의 몸과 피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1코린 11,27) 교리서는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중대한 죄를 의식하는 사람은 먼저 고해성사를 받은 뒤에 성체를 모셔야 한다.”(1385) 성체는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은총의 성사이지만, 그것을 합당하지 않게 받아 모시면 오히려 심판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오늘 복음의 핵심은 “성체가 거룩하게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거룩한 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이 정결해야 한다는 데 있다. 

 

예수님께서는 이어 말씀하신다.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 심지 않으신 초목은 모두 뽑힐 것이다.”(13절) 성 히에로니모는 이 말씀을 해석하며, 하느님께서 심으신 것은 믿음과 사랑과 진리이고, 인간의 교만에서 나온 가르침은 오래 남지 못한다고 말한다. 바리사이들의 문제는 전통 자체가 아니라, 인간의 전통을 하느님의 뜻 위에 놓은 것이었다. 교리서도 같은 원칙을 가르친다. “전통은 하느님 말씀에 봉사해야 하며, 그 위에 군림해서는 안 된다.”(83-87 참조) 참된 전통은 복음을 보존하고 전달하지만, 인간적 관습이 복음의 정신을 가리게 될 때는 끊임없이 정화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는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그들은 눈먼 이들의 눈먼 인도자다.”(14절) 성 그레고리오는 “진리를 보지 못하는 사람이 다른 이를 인도하려 하면 함께 넘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영적 지도자의 첫 번째 조건은 지식이 아니라 겸손과 회개이다. 교리서는 양심에 대해 이렇게 가르친다. “양심은 진리에 따라 형성되어야 한다.”(1783-1785) 성경을 자기 생각대로 왜곡하면 우리도 눈먼 인도자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의 가르침 안에서 말씀을 배우고, 성령의 빛 안에서 분별해야 한다. 

 

오늘 주님께서는 외적 형식에 머무르지 말고 마음의 회개로 나아가라고 부르신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권고한다. “입술을 깨끗하게 하려 하지 말고, 먼저 마음을 깨끗하게 하라. 마음이 깨끗하면 말도 깨끗해진다.” 우리의 손은 씻겨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씻겨 있는가 하는 것이다.

오늘 하루 주님께 이렇게 청하자. “주님, 제 마음을 깨끗하게 하시고, 제 입에서 나오는 말이 형제를 살리는 말이 되게 하소서. 저를 눈먼 인도자가 아니라, 당신 빛을 따르는 참된 제자가 되게 하소서.” 아멘.

 

 

 

이병우 신부님_<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 기념일>(8.4)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 심지 않으신 초목은 모두 뽑힐 것이다."(마태15,13)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자!!'

오늘 복음(마태15,1-2.10-14)은 '조상들의 전통에 관한 논쟁'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합니다. "어째서 선생님의 제자들은 조상들의 전통을 어깁니까? 그들은 음식을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않습니다."(마태15,1)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말하는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을 '위선자'라고 하시면서, 이사야서 29장 13절의 말씀을 들어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기고 있다."(마태15,8-9)

 

그리고 군중을 가까이 불러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듣고 깨달아라.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지 않는다. 오히려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마태15,10-11)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못마땅하게 여기는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을 두고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 심지 않으신 초목은 모두 뽑힐 것이다. 그들을 내버려 두어라. 그들은 눈먼 이들의 눈먼 인도자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질 것이다."(마태15,13-14)

무엇을 바라보고 있고, 무엇을 믿고 있는가?

 

바라보고 믿는 것에 맞게 살아가고 있는가?

 

참되게 믿지 못하고 헛되이 믿는 믿음은 아닌지?

 

이 모든 것이 지금 여기에서 나의 모습으로 다 드러납니다. 진짜 믿음인지 거짓 믿음인지가 나의 삶으로 드러납니다.

 

자주 거듭해서 함께 노력해 보자고 말씀드리지만, '그리스도인의 본질'은 '믿고(신덕), 희망하고(망덕), 사랑하는 것(애덕)'입니다. '믿고 희망하는 바를 지금 여기에서 삶으로 사는 것'입니다. 여기에 결정적인 것 하나를 더 붙이면, '그렇게 하지 못함에 대해 용서를 청하고 자비를 청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크신 자비에 힘입어 다시 부활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본당 사제들의 수호성인이신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비안네 신부님은 겸손하고 가난한 사제로 사셨고, 많은 사람들에게 고해성사를 주신 사제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한마디로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사제로 사신 분입니다.

이런 사제들이 이 땅에 많아지게 해 달라고 기도합시다!

 

고해성사의 참의미와 은총을 기억하면서, 나약함이 드러날 때마다 고해성사를 잘 보도록 합시다!

"얘야, 네가 병들었을 때 지체하지 말고 주님께 기도하여라.

 

그분께서 너를 고쳐 주시리라.

 

잘못을 그만두고 손을 씻으며

 

온갖 죄악에서 마음을 깨끗이 하여라."(집회38,9-10)

 

(~ 집회43,33)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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