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활묵상 : 제가 생활묵상을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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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85 강만연 [fisherpeter] 스크랩 2026-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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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제 개인적인 일로 묵상글을 올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개인적인 시간만 허락한다면 정말 많은 묵상을 하고 있는데 이걸 전하고 싶지만 전하지 못해 참 아쉽습니다. 이 묵상은 복음묵상과는 차원을 달리 합니다. 복음묵상은 말 그대로 복음을 읽고 그 복음을 주제로 해서 말씀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생활묵상은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든지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그 의미를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묵상하는 것입니다. 저는 처음엔 복음묵상글을 올렸다가 언제부터 생활묵상이라는 타이틀로 올리곤 했습니다. 사실 몇몇 교우님들은 오히려 저는 복음묵상글보다는 생활묵상글을 올려주면 더 좋겠다는 개인적인 바람을 전하신 분도 계십니다. 그래서 그런 건 아니지만 저 또한 오히려 이게 좀 더 유익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계기가 있었습니다. 사실 요즘 저는 시간만 많이 있다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렇다면 제가 매일 매일 편하게 시간에 구애되지 않고 많은 사람들에게 삶으로써 생생한 복음을 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복음이라는 건 말 그대로 기쁜 소식입니다. 그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전해주시는 사랑의 편지입니다. 하느님의 속삭임입니다. 바로 예수님이신 거죠. 신앙인은 복음묵상을 해야 합니다.
왜 복음묵상을 해야 할까요? 예수님의 가르침을 우리는 삶 속에서 살면서 행동으로 실천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럼 누군가는 이렇게 반문할 수 있을 겁니다. 꼭 복음묵상을 해야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 수 있단 말인가 하고 말입니다. 물론 그 말도 일면 일리가 있습니다. 솔직히 복음을 몰라도 신학을 몰라도 정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복음의 정신으로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건 신앙의 유무와 상관도 없습니다.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다뿐이지 오히려 어떤 면에서 보면 신앙인보다도 더 훌륭하게 복음 정신대로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히려 신앙인이라는 게 부끄러운 사람도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신앙인이라도 신앙인이라고 말하기에 너무나도 부끄러울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인이라고 해서 세상 사람들보다도 더 뛰어나야 한다는 논리를 설파하는 건 아닙니다. 신앙인도 신앙인이기 이전에 나약한 한 인간임을 알아야 합니다. 다만 나약한 인간이기에 좀 더 신앙을 가지지 않았을 때보다는 더 나은 인간의 모습으로 살기 위해서 그런 가르침을 신앙 안에서 얻기 위해서 신앙인으로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건 진정한 의미에서 신앙인의 본 모습과는 거리가 멀지만 지금의 현실에서는 이것도 상당히 훌륭한 신앙인이라고 말해도 조금도 지나치지 않는 현실이 됐습니다. 그만큼 신앙이라는 본질이 퇴색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종교학문적으로 보면 물질문명이 정신문명을 앞질러 성장하고 자본주의 시장구조에서는 어쩔 수 없는 시대적인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역설적으로 학문적으로는 이렇게 되면 오히려 신앙은 더 퇴보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럴 때일수록 더 신앙에 매진하는 극소수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보통의 평범한 사람의 눈으로 보면 이상한 사람으로 오인을 받을 정도로 어쩌면 신앙에서 말하는 광신도로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이 세상에선 광신도로 여겨진다면 그 사람은 하느님의 나라가 도래했을 때 과연 어떤 영광을 받을지는 복음의 눈으로 보면 답이 나오지만 아직 그 결과가 현실적으로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어느 누구도 단정을 지을 수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여러 번 묵상글에서도 표현을 한 적이 있습니다. 신앙인은 신앙이란는 걸로 신앙인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건 위험한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앙인은 신앙을 가진 사람이란 정의보다 우리는 하느님과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기 때문에 어쩌면 하느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으로 정의를 하는 게 더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건 저의 말이 아니라 현대의 신학자들 중에서는 이렇게 정의를 하는 신학자들이 있다고 해서 그렇게 말씀드릴 뿐입니다. 이런 전반적인 사정을 고려했을 때 평소 복음묵상을 평신도가 하는 건 신앙생활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하나 간과해서는 안 될 점이 있습니다. 자칫 복음이라는 이상주의와 현실 생활의 차이를 줄이지 못하게 되면 신앙생활이라는 게 하나의 관념주의로 흐를 수 있기 때문에 주의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하는 신학자들이 있습니다. 이건 개신교 신학자들뿐만 아니라 가톨릭 신학자도 많은 부분 공감하는 내용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복음묵상을 등한시한다는 게 아닙니다. 다만 복음묵상도 중요하지만 현실에서는 기본 정신은 복음을 바탕으로 하되 현실에서는 삶 그 자체가 복음이 된다면 그게 가장 이상적인 복음의 삶을 사는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쩌면 생활묵상이 더 좋다고는 말할 수는 없지만 덤으로 복음묵상도 하면서 하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게 저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최근의 신학적인 흐름도 이런 방향으로 흘러가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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