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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성녀 클라라 기념일

191101 조재형 [umbrella] 스크랩 04:21

오늘은 성녀 클라라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성녀 클라라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따라 가난과 겸손의 길을 걸었습니다. 세상의 부유함과 안락함을 내려놓고, 오직 그리스도만을 따르며 살았습니다. 성녀 클라라에게 가난은 단순히 물질이 없는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가난은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믿음이었고, 그리스도를 가장 큰 보물로 모시는 자유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기도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복된 클라라를 자비로이 이끄시어 가난을 사랑하게 하셨으니, 그의 전구를 들으시어 저희도 가난의 정신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다가 마침내 하늘나라에서 하느님을 직접 뵈옵게 하소서.”

 

저의 주변에도 클라라 세례명을 가진 분들이 있습니다. 저는 2002년에 복음화학교의 담당 사제가 되었습니다. 그 뒤로 뉴욕에 올 때까지 16년 동안 복음화학교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곳에서 한 클라라 자매님을 만났습니다. 처음에는 학생으로 만났고, 그 뒤로는 봉사자로 만났고, 뉴욕으로 올 때는 복음화학교 회장으로 만났습니다. 20년 가까이 복음화학교를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성지순례를 갈 때도 늘 앞에 나서기보다는 뒤에서 말없이 순례자들을 돌보았습니다. 드러나지 않는 자리에서, 칭찬받지 않는 자리에서, 묵묵히 봉사하는 모습은 성녀 클라라의 삶을 떠올리게 하였습니다. 2019년 뉴욕의 가톨릭평화신문에서도 또 다른 클라라 자매님을 만났습니다. 함께 신문을 만들면서 저는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을 보았습니다. 여행을 좋아하는 자매님은 남들이 잘 가지 않는 험지를 찾아갔습니다. 문명과 문화의 익숙한 틀을 벗어나, 인간의 냄새가 나는 곳을 다녔습니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려는 열정이 있었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사로 만드는 지혜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 두 분의 클라라 자매님에게서 한 가지 공통점을 보았습니다. 깊은 영성과 뜨거운 열정입니다.

 

새는 두 개의 날개로 날아갑니다. 하나의 날개만 있으면 원하는 곳으로 날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를 향해 나아갈 때도 두 개의 날개가 필요합니다. 하나는 영성입니다. 영성은 깊은 침묵과 기도를 통해 자라납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람들을 만나시고, 병자를 고쳐 주시고, 복음을 선포하시기 전에 따로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영성은 뿌리 깊은 나무와 같고, 샘이 깊은 물과 같습니다. 영성이 깊은 사람은 말이 많지 않아도 다른 이에게 위로가 됩니다. 지친 이에게 그늘이 되어 주고, 외로운 이에게 쉼터가 되어 줍니다. 다른 하나의 날개는 열정입니다. 예수님의 복음 선포는 하느님 나라에 대한 뜨거운 열정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기 위해 길을 걸으셨고, 병자들을 찾아가셨고,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셨고, 소외된 이들의 손을 잡아 주셨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도 예수님의 사랑과 열정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초대 교회의 사도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에게는 많은 재물도 없었고, 큰 조직도 없었고, 세상의 권력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복음을 전하려는 열정이 있었습니다. 그 열정이 교회를 세웠고, 그 열정이 세상을 바꾸었습니다.

 

그러나 영성과 열정은 함께 있어야 합니다. 영성이 없는 열정은 방향을 잃을 수 있습니다. 열정은 있지만 기도가 없으면 쉽게 지치고, 때로는 자기 뜻을 하느님의 뜻으로 착각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열정이 없는 영성은 공허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하지만 이웃을 향한 사랑이 없다면, 침묵은 하지만 작은 이를 돌보는 손길이 없다면, 그 영성은 아직 열매를 맺지 못한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예수님께 묻습니다. “누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입니까제자들의 관심은 여전히 큰 사람이 되는 데 있었습니다. 더 높은 자리, 더 인정받는 자리, 더 중요한 자리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어린이 하나를 가운데 세우시고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어린이는 단순히 나이가 어린 사람을 뜻하지 않습니다. 어린이는 스스로를 높이지 않습니다. 어린이는 모든 것을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린이는 부모의 손을 잡고 걸어갑니다. 어린이처럼 된다는 것은 하느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것, 내가 이룬 것, 내가 아는 것을 자랑하지 않고, 모든 것이 하느님의 은총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말씀하십니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하느님 나라는 큰 사람들만 들어가는 나라가 아닙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성공한 사람들만 들어가는 나라가 아닙니다. 오히려 작은 이를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 들어가는 나라입니다.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끝까지 찾아 나서는 사람이 하느님의 마음을 닮은 사람입니다. 가족과 이웃에게 관심을 갖고, 아낌없이 자신을 내어주며, 말없이 뒤에서 봉사하는 사람이 하느님 나라에 가까운 사람입니다.

 

성녀 클라라는 가난을 사랑함으로써 하느님 나라의 길을 보여 주었습니다. 복음화학교의 클라라 자매님은 드러나지 않는 봉사로 하느님 나라의 길을 보여 주었습니다. 평화신문의 클라라 자매님은 사람을 향한 열정과 지혜로 하느님 나라의 길을 보여 주었습니다. 우리도 저마다의 자리에서 성녀 클라라의 정신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깊은 기도로 영성의 날개를 키우고, 이웃을 향한 사랑으로 열정의 날개를 펼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며, 작은 이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으시는 하느님의 마음을 닮아갈 수 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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