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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홍) 2026년 8월 10일 (월)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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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신부님_“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요한 12,26)

191109 최원석 [wsjesus] 스크랩 10:03

* 오늘의 말씀(8/10) :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 독서 : 2코린 9, 6s-10

* 복음 : 요한 12, 24-26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25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26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 <오늘의 강론>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인 오늘 말씀전례의 <독서>(2코린 9,6ㄴ-10)에서 는 바오로 사도는 ‘선행을 할 때는 마지못해 하거나 억지로 해서는 안 되며,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하십니다.’(2코린 9,7 참조) 라고 말합니다.

이는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를 기억하게 해줍니다. 그는 로마 총독이 교회의 보물을 황제에게 바치라고 협박하자, 모든 보물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가난한 이들을 데리고 나타나 “바로 이들이 교회의 보물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격분한 총독은 라우렌시오 부제를 석쇠 위에 눕혀 구워 죽이는 형벌을 내렸고, 그는 오히려 형리들에게 “자! 한쪽은 다 익었으니 나 좀 뒤집어 주시오.”라고 하고, 마지막에는 법관을 향하여 “이제 다 익었으니 잡수시오.”라고 말하며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다음, 축제를 지내기 위해 예루살렘에 온 헬라인들이 예수님 뵙기를 청합니다. 그러자 이를 알리는 필립보와 안드레아에게 예수님께서는 인자가 영광스럽게 될 시간이 왔습니다.”(요한 12,23)하시면서, 당신의 때가 왔음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

대체 어떤 힘이 이 ‘밀알’을 죽음으로 밀어붙일 수 있을까? 묘하게도 죽음으로 밀어붙이는 그 힘은 ‘생명력’입니다. 생명의 힘이야말로 ‘밀알’을 죽게 할 수 있는 힘입니다. ‘죽을 수 있는 힘’, 그것은 살리기 위해 죽을 수 있는 힘입니다. 죽어야 살기 때문입니다.

결국, 살리기 위해 죽을 수 있는 힘이 ‘생명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죽음의 고통은 생명을 드러내기 위해서 꼭 필요합니다. 곧 죽음의 고통은 자기를 벗게 하는 사랑의 다른 이름이요, 새 생명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요한 12,25)

이 대비를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죽음의 당위성을 말해줍니다. 곧 땅에서의 ‘죽음’이 생명의 끝이 아니라, ‘참된 생명’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이 바로 참된 실재를 보존하는 길이며, 미래에 대한 신뢰와 의탁, 곧 영원한 생명에 대한 개방이 됩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요한 12,26)

이는 ‘섬긴다는 것’과 ‘따른다는 것’의 긴밀한 연관성을 말해줍니다. 섬기는 이는 당연히 섬기는 분과 함께 있어야 하지만, 함께 있다고 해서 모두가 섬기는 이는 아니기에, 결국, 섬길 때라야 진정 따르는 것이 됩니다. 곧 따라 나서기는 했지만 여전히 그분을 섬기기보다 ‘따라 나선 자신’을 섬기고 있다면, ‘떠나온 자기’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에 해당한다. 묘한 것은 섬기면서 자신을 떠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섬기는 사람으로 타인을 우러르고 공경하는 것이며, 그럴 때 자신을 떠나는 일이 실행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분의 죽음의 길에 함께 할 때 비로소 우리는 ‘당신을 따르고 섬기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삶 속에서 죽는 장엄한 순교의 길일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라우렌시오 순교자처럼 말이다.

하오니 주님! 오늘 우리도 우리의 삶이라는 석쇠 위에서 기꺼이 자신을 내어놓는 순교의 삶을 살게 하소서. 아멘.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요한 12,26)

주님!

함께 있는 이를 존중하게 하소서!

함께 있는 이를 업신여기지 않게 하소서!

당신께서 저를 결코 무시하지 않으시듯,

저 역시 형제를 존중하게 하소서!

형제를 섬김으로 당신을 증거 하게 하소서.

자신을 내려놓고 상대를 떠받들어 사랑으로 순교하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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