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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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11 최원석 [wsjesus] 스크랩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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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고모님의 위독 상황을 가서 봅니다. 참 내가 어찌 못하니 더욱 가슴이 아파요. 거룩하게 사시는 신부님을 뵐 때도 한편으로는 좋지만 그분의 그 거룩함이 그냥 이루어 지는것이 아니라 매 순간 정성을 기울이고 나를 버리는 그런 마음이 없이는 이루기 어렵다는 것을 봅니다. 성화는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를 비움의 연속이어야 합니다. 어제 복음에서 바다 위를 예수님이 걸어오시는데 그런데 그 순간 베드로가 바다 위로 걸어갑니다. 순간 자신의 마음에 고취되어서 결국은 바다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바다 위를 걷는 것은 나의 힘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에 믿음으로 믿고 걸어가는 것입니다. 나를 바라보는 순간에 우리는 바다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믿음에서 나를 바라보는 순간에 신앙에서 하느님은 없고 결국은 어둠으로 넘어가는 상황이 초래됩니다. 유한한 것과 무한한 것입니다. 나를 미워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자기 학대와 다른 것입니다. 자기 학대는 교만으로 가득 차서 영혼을 나 최상위로 올려 놓고 하느님을 나와 같은 등급으로 보는것이 자기 학대 입니다. 하느님을 알아 보지 못하고 결국은 자신의 영혼을 저 지옥 불로 몰아 넣는 것이 자기 학대요. 무지의 극치입니다. 어둠의 극치입니다. 그럼 미워한다는 말씀은 무엇일까? 하느님을 중심으로 살아가는데 최대의 적은 나 입니다. 그것도 나의 안위, 나를 극존칭하고 타인과 나 사이에서 나를 이기적으로 사랑하는 나의 본성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악을 미워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느님이 없는 나는 어둠입니다. 본질적인 나는 하느님 안에서 본질을 찾을 수 있습니다. 참 나는 하느님 안에 있는 나 입니다. 내 힘으로 살아갈 수 없는 것이 나 입니다. 요사이 고모님의 아픔 안에서 내가 어찌 못하는 나를 보는데 그것이 나 입니다. 오직 주님 함께 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사랑하면서 필연적으로 따르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박해 입니다. 하얀 박해도 분명히 따릅니다. 예수님 시대와 같이 처참한 죽음이 아닐지라도 주변의 냉대와 빈정됨, 그리고 모함, 왕따와 같은 것이 옵니다. 하느님의 법을 사랑하면 사랑 할 수록 분명히 하얀 박해는 분명히 우리에게 옵니다. 그 순간 나의 감정에 집중해서 하느님의 일을 그르칠 수 있습니다. 결국은 나의 감정을 나로 착각하여서 주님의 얼굴을 외면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래서 더욱 관상에 머물 수 있어야 나를 볼 수 있습니다. 관상에 머물 수 없으면 나의 영혼과 육신의 내가 하나되어서 하느님과 거리를 두게됩니다. 분명한 것은 나의 영혼과 하느님이 하나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니다. 하나는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공학에서 Trade off라는 말과 같이 나의 영혼과 육신의 나는 병립 할 수 없습니다. 편안함을 쫒는 나가 육신의 나입니다. 성화의 여정은 하느님을 닮아 가는것인데 그런데 그 여정 안에서 나를 버리고 미워하는 것이 길입니다. 그러나 그 버림 다음에 오는 것이 참 기쁨 안에 머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성령이 결국 참 기쁨이요. 참 희열입니다. 천국은 내천자 그린 사람들의 곳이 아니라 하느님의 참 기쁨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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