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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칼럼 : 무신론자가 주장하는 사실 중 간과하고 있는 사실

191176 강만연 [fisherpeter] 스크랩 2026-08-13

 

저는 하느님을 믿는 입장에서 무신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왜 그들의 주장에 관심이 없는지는 제가 하느님을 믿고 있기 때문에 저와 반대 입장과 노선을 취하기 때문에 관심이 없는 게 아닙니다. 왜냐하면 지금 존재론적으로 존재하고 계신다는 사실도 아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없다는 사실을 주장하는 그 근거까지 알려고 시간을 더 투자할 수도 없고 또 그럴 만한 가치가 없기 때문에도 그렇습니다. 방금 표현 ' 계신다는 사실도 아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 이 표현은 제가 확신을 하지 못해 확신을 할 수 있을 만큼 더 많은 자료를 얻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여기서 편의상 무신론을 언급하기 때문에 하느님을 '신'이라는 의미로 표현함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가톨릭에서 믿는 하느님이신 신뿐만 아니라 하느님 이외의 다른 신을 믿는 모든 종교를 포함해 그 어떤 종교도 신의 존재를 과학적으로 증명한 곳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종교와 믿음은 어떤 실존을 가지고 있어서도 믿음과 신앙의 표본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기도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신이라는 게 존재한다는 게 증명은 안 되지만 여기서 증명은 실제 과학적으로나 아니면 눈으로 볼 수 있는 현실적인 증명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증명이 되지 않았다고 해서 그럼 부존재한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이 말은 무신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수많은 종교 이론과 또 한편 기독교에 몸담았다가 기독교의 실체를 언급한다고 하면서 주장을 하는 그 근거를 그들은 기존의 성경이나 아니면 다른 신앙적인 사실이나 학문에 기반을 두고 그 근거로써 신이 없다고 주장을 하는 것보면 참으로 가소롭기 짝이 없습니다. 제가 반대적인 입장을 취하는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논리적으로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주장이 궁핍하기 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그런 주장을 하려면 자기만의 주장을 통해서 뭔가 논리적으로 주장을 해야 그나마 신빙성이 있을 텐데 자기의 주장에 대한 근거로서 유신론의 입장을 가지고 그 입장에 대한 모순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의 눈으로 봤을 때 그게 설령 모순이라고 한다고 해도 어찌 그 모순으로 인해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그 논리 자체가 이미 논리적이지 않습니다. 역으로 말하면 무신론자 역시 신이 없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나 다른 사실로 실증적인 차원에서 증명을 하지 않고서 단순히 이론적으로 어떤 신의 존재를 인간의 논리로 증명하려는 그 자체도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도 이미 무신론을 주장하는 입장에서 그 '무신론' 이라는 단어에서 이미 '신'이란 단어를 사용한 것입니다. 이때의 신은 일반적으로 유신론이나 무신론이나 양쪽 모두에서 사용하는 일반적인 개념의 신입니다. 그렇다면 그들 역시도 무신론을 주장하기에 앞서서 자기들이 사용하고 언급하는 단어에 나온 그 '신'은 인간과 다른 어떤 존재를 가진 존재라는 걸 이미 전제를 깔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미 이 자체에서 그들의 주장은 허구라고 단정을 내리는 주장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만 다만 이미 그들의 주장은 모순과 같다는 것입니다. 


모순이라는 이 단어의 유래를 잘 생각해보시면 답이 나옵니다. 창은 어떤 방패도 다 뚫을 수 있다고 하고 방패는 어떤 창도 다 막을 수 있다고 하면서 창과 방패를 파는 가게 주인이 있다면 그 가게 주인의 말과도 같다는 것입니다. 그럼 신의 존재가 증명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신을 믿는 사람들은 과연 어리석은 사람들일까요? 여기에는 실제 과학자나 천체 물리학자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이 과연 바보라서 증명이 되지 않는 신의 존재를 믿을까요? 저는 솔직히 만약에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 세상에서 신의 존재를 믿는 게 더 좋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증명을 할 수는 없지만 인간사회에서 일어나는 사회학적인 관점에서는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통해서 종교라는 게 탄생하기도 합니다. 종교는 종교를 이용해서 무지몽매한 사람들을 이용하는 부정적인 면도 없지 않아 있지만 한편 순기능을 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이 세상은 신의 존재 유무를 떠나서 인간의 삶은 인간의 머리로서는 이해가 안 되는 불가능의 영역이 존재합니다. 오늘과 같은 과학이 엄청 발달한 시대에도 그 영역은 미지의 영역입니다. 그 미지의 영역이 얼마나 많은데도 불구하고 단순히 어떤 인간적인 머리 속에 있는 이론으로 신의 존재를 부정하려고 하는 그런 사람은 참으로 신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가소롭기 짝이 없겠는지 생각을 해봤는지 참으로 궁금할 따름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믿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가톨릭 신자가 다 하느님의 존재를 눈으로 자기가 보거나 어떤 사실로 다 증명이 된 사실로 인해서 믿음과 신앙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인류가 가톨릭이 됐든 개신교가 됐든 기독교 역사가 종말을 고하지 않고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것은 신앙과 믿음, 종교라는 건 물론 신의 존재를 과학적으로 증명이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믿을 수 있는 것은 신앙과 종교는 그게 다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바로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바람이 눈에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바람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바람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신의 존재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는 법관이 있습니다. 법관은 재판을 하는 사람입니다. 재판을 하면 재판의 판결을 판결문 형식으로 작성을 합니다. 그 판결문이 흔히 말하는 판례입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법관들의 판례가 존재합니다. 그 판례들을 보면 어떤 경우에는 판례를 연구하면 제가 법학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오랜 시간 법을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그 무수한 판례들을 보면서 한 생각이 있습니다. 그 생각을 제가 대한민국에 있는 모든 법관에게 이 사실을 주장한다고 해도 그들 역시 반박을 하지 못할 내용이 있습니다. 이건 저의 개인적인 생각만이 아닙니다. 한국의 권위 있는 법학자들의 법학 논문에도 있는 개념을 바탕으로 해서도 이런 주장을 할 수 있습니다. 갑자기 왜 제가 무신론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이런 걸 언급하느냐 하면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마치 법관이 판결문을 작성할 때 그들이 주장하는 법리에 대한 이해를 하면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흔히 언론을 통해서 보면 특정 어떤 개인이 재판의 결과에 대해 납득이 되지 않을 때 사용하는 말이 있습니다. '법리에 대한 착오' 이와 같은 말입니다. 설사 법관도 인간이기 때문에 완벽할 수는 없다고 해서 이런 말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인간이 하는 재판이라서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주장하는 것은 일단 자기들이 불리한 입장에서는 누구나 그렇게 주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순간적으로 그 재판 결과를 수용할 수 없다면 말입니다. 이런 모든 것을 떠나서 재판의 판결문은 아무리 법적인 해석을 통해서 인간이 작성한다고 하더라도 그게 불완전한 인간이라서 불완전한 판결문이라는 게 아니라 완전한 인간인 법관이 작성한다고 해도 불완전한 판결문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판사인 법관이 이미 유죄를 염두에 두고 아니면 무죄에 염두에 두고 법리를 그런 쪽 방향으로 설정해 논리를 애매한 영역으로 자의적인 해석으로 해서 유죄도 무죄의 판결로 할 수도 있고 무죄도 유죄로 판결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재판에서도 결과는 분명 있는 실체가 있지만 그 실체를 증명할 수가 없어서 무죄가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논리적으로뿐만 아니라 실체적으로도 정황상 모든 경우를 종합해서도 나타나는 것이지만 그 존재를 증명할 근거가 부족하면 확증할 수가 없기 때문에 어떤 경우는 법관이라는 존재는 범의 테두리 안에서 완전히 법적으로 모순이 되지 않는 이상 얼마든지 자의적인 해석을 통해 유무죄를 판결하곤 합니다. 무신론을 주장하는 사람들 역시도 그와 같은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논리가 마치 인간 세상의 법관이 자기 마음먹은 대로 얼마든지 무죄를 주장하고 싶으면 무죄를, 유죄를 주장하고 싶으면 유죄를 줄 수 있는 논리를 다시 재구성할 수 있는 것처럼 그들 역시도 그렇게 주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유신론을 믿는 사람이든 무신론을 믿는 사람이든 파스칼이 주장한 신의 존재에 대한 이론 '도박이론'에 근거를 해서가 아니라 어쨌든 설사 신이 없다고 해도 신의 존재를 믿어서 손해를 본들 그 손해는 유한한 인간이 한 세상을 살면서 얼마나 될 것이며 그로 인해 일어날 손해보다는 없다고 생각해 부정해 살았는데 실제 존재한다면 그땐 어떻게 할 것인가를 한번 생각해본다면 그들이 그렇게 주장할 때 과연 죽음 앞에서도 두려움 없이 신의 존재를 부정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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