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고난회 김준수 신부님 성모 승천 대축일: 루카 1, 39 -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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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97 이기승 [bona24] 스크랩 2026-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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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리의 어머니이신 마리아께서 하늘에 오르신 날, 성모 승천 대축일입니다. 성모님의 승천을 효성스러운 자녀의 마음으로 함께 축하합시다. 오늘 대축일을 성대하게 기념하고 기억하는 까닭은 우리도 언제가 어머니 마리아처럼 흠도 티도 없이 하늘, 아버지의 나라로 나갈 수 있게 되길 간절히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모 승천 감사송에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축일의 의미를 이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오늘 하늘에 오르신 분, 하느님을 낳으신 동정 마리아께서는, 완성될 주님 교회의 시작이며 모상으로서, 이 세상 나그넷길에 있는 주님의 백성에게, 확실한 희망과 위안을 보증해 주셨나이다.』 (성모 승천 감사송)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성모 승천 대축일이 제정된 것은 1950년 11월 1일입니다. 이 축일이 제정된 시기는 바로 제2차 세계대전으로 말미암아 세계 곳곳에 전쟁의 상흔傷痕이 남아 있던 시기였습니다. 20세기 들어 발발한 두 번의 세계대전으로 수많은 생명이 비참하고 참혹하게 죽었으며, 수많은 사람이 삶의 터전을 잃었습니다. 특히 유럽은 대부분 그리스도 국가였습니다. 이처럼 인간의 생명에 대한 존엄성은 땅에 떨어져 짓밟혔고, 인류의 미래는 절망의 어둠이 짙게 깔린 시기였습니다. 희망이 아닌 절망이 사람들 가슴 속에 깊이 베여 있었던 시기에 교회는 바로 성모 승천 대축일을 통해 세상에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하고자 했으며, 이를 통해 상처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인간의 존엄성을 일깨우고, 인류의 미래는 하느님 손에 달려 있으며, 하느님만이 우리 희망의 원천임을 밝히고자 제정한 것입니다. 더더욱 오늘은 우리 민족에겐 새로운 희망이 싹튼 날, 광복절이기도 합니다. 광복절은 한층 더 성모승천 대축일의 의미를 풍요롭게 해 줍니다. 성모님의 전구로 참된 희망의 메시지가 이 땅, 특히 침묵의 땅인 북녘에도 희망의 빛이 가득 충만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복음에 보면, 어머니 마리아께서 엘리사벳의 문안 인사의 말을 듣고(1,41) 엘리사벳에게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향해 노래한 마리아의 노래(1,48-55)는 하느님의 자비를 입은 어머니 마리아께서 자신에게 큰일을 하신 하느님께 대한 신앙고백이며, 아울러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던진 희망의 선포이기도 합니다. 이 희망은 단지 주님 잉태 기별을 받은 순간에 국한하지 않고, 당신의 평생의 여정 곧 못 박히신 아드님의 십자가 아래까지의 여정을 통해 당신께서 마음에 새겨둔 삶의 체험을 바탕으로 어둠과 절망으로 힘겨워하는 세상을 향해 선포하신 희망의 찬가입니다. 마리아께서 주님을 찬송하고 기뻐하는 까닭은 바로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비천한 당신 종을 굽어보시고 보잘것없는 당신 종을 통하여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1,48.49참조) 이 찬가는, 마리아의 입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는 세상의 비천한 이들, 굶주린 이들과 하느님을 경외하는 이들에게도 당신에게 베푸신 자비와 은총이 영원히 세세 대대로 미칠 것임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희망이 없고 힘없는 민중들에게 지금 보는 세상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 머지않아 새로운 세상으로 바꾸리라는 것입니다. 이 찬가는, 온 존재로 겪고 체험한 사건들로부터 솟구쳐 오르는 신앙의 비전이며 희망의 선언과도 같습니다. 자신의 생애를 통해 겪었던 가난과 멸시, 거부와 차별, 절망과 고통을 체험한 어머니 마리아께서 세상에서 당신처럼 어렵고 힘들게 살아왔고 살아가야 할 모든 민중을 향한 따뜻한 위로이며, 확신에 찬 희망의 예언이고, 사랑을 바탕으로 한 믿음의 노래입니다. 전능하시고 자비하신 하느님 안에서 아브라함의 후손인 우리가 지금껏 비천하였기에 존귀하게 될 것이며, 겸손했기에 들어 높여질 것이며, 굶주렸기에 배부를 것이며, 가진 게 없었기에 모든 것을 다 가질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이 얼마나 희망찬 선포이며 선언입니까? 그러기에 매일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마리아의 노래’를 노래하는 우리 역시 희망의 사람으로 세상에 나가서, 동일한 음조音調로 희망의 노래를 들려줍시다. 희망의 사람만이 성모 마리아의 희망에 동참하게 되며, 마침내 이 모든 것이 실현되는 하늘에서 웅장한 하늘의 오케스트라와 함께 행복과 기쁨에 넘쳐 영원한 희망의 찬가를 함께 노래하리라 믿습니다. 그날이 꼭 오리라 믿습니다.
오늘 하루만큼은 성모 마리아와 함께 힘겹게 살아가는 모든 힘없고 가난한 이들이 우리의 노래를 듣고, 자비하신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니, 모든 일이 다 잘 될 것이다, 라고 희망과 꿈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주님께서 어머니 마리아를 하늘로 불러올리시고, 천상 모후의 관을 씌워 주셨음을 기억하면서 우리 또한 어머니 마리아께서 앞서가신 여정을 걷고 언젠가 성모님의 중재에 힘입어 천상 하늘로 나아갈 날을 희망으로 기다리며 살아갑시다. 이런 마음가짐이 진정한 성모 승천 대축일의 진정한 의미라고 믿습니다. 성모 마리아는 바로 우리의 미래이며 희망의 보증이십니다. “알렐루야. 성모 마리아 하늘로 오르시니 천사들의 무리가 기뻐하네. 알렐루야.” (복음 환호성)
*** 성모 승천 대축일에 승천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긴 인류 역사를 통해서, 아주 최근까지 인류는 神이, 각 종교에 따라 다르지만, 하늘 위에서 인간의 삶을 내려다보고 있다고 생각해 왔었습니다. 하늘은 언제나 신의 영역이었습니다. 신곡 천국 편에서 ‘단떼’는 ‘베아트리체’에게 이끌려, 첫 번째 하늘에서 시작해서 열 번째 하늘까지 올라갔지요. 하지만 현대인은 천국, 하느님 나라가 우리 머리 위에 있는 하늘의 훨씬 위쪽에 물리적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최초로 하늘, 지구를 선회했던 예전 소련의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은 “하늘엔 신은 없었다. 주변을 아주 열심히 둘러보았지만, 역시 신은 보이지 않았다.”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상하上下-종횡縱橫-고저高低가 없는 우주를 체험한 사람은 인류 역사상 기껏해야 250 여명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주비행사란 ‘신의 눈’을 가진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미국의 아폴로 7호 우주비행사 ‘돈 아이즐리’는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면서 깨달은 바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 지구에 있는 인간은 결국 지구 표면에 찰싹 달라붙어 있을 뿐이며, 사물을 평면적으로 밖에 볼 수 없다. 평면적으로 보는 한 평면적인 차이점만 자꾸 눈에 뛴다. 지구상의 이곳저곳에서 살다 보면 다른 나라는, 역시 다르다는 인상을 받을 것이다. 풍토도, 인종도, 언어도 문화도 심지어 생활양식이나 음식, 먹는 법까지도 다르다. 어딜 가도 다른 것만 눈에 보인다. 그러나 차이점으로 보이는 모든 것이 우주에서 보면 아예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것은 중요하지 않은 차이이다. 우주에서는 중요하지 않은 것은 보이지 않고 본질만 보인다. 표면적인 차이는 모두 날아가 버리고, 다 같은 것으로 보인다. 차이는 현상이고 본질은 동일성이다. 지표에서 다른 곳을 보면, 역시 다르다 라고 생각되는 것에 비해 우주에서 다른 곳을 보면 역시 다른 곳도 같구나 라고 생각된다. 인간도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종족, 민족이 다를지 모르지만, 같은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에 속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대립, 전쟁이란 모두 어떤 차이를 전제로 하므로 동일한 것 사이에서는 싸움이 없을 것이다. 같다는 느낌이 부족하기 때문에 싸움이 일어난다. 』
우리는 하늘에 오를 수 없습니다. 오직 소수의 사람, 우주비행사들만이 지구를 벗어난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우주비행사들처럼 실제로 지구 환경을 벗어나서 직접 우주를 체험하기 전에는 그들이 바라본, ‘같음. 인간 가족의 단일성’의 비전을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 우주 체험을 한 우주인들은 지구 환경을 떠남으로써 평면적 관점에서부터 입체적 관점 곧 하느님의 시선으로 세상과 지구 환경을 바라보게 되었지요.
이 세상 나그넷길에 있는 주님의 백성에게 확실한 희망과 위안을 보증해 주는 성모 승천 대축일을 기념하면서, 특히 「우주로부터의 귀환」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승천이란 어쩌면 우주비행사들처럼 ‘하느님의 시선’으로 전환, 즉 지구 환경 의식, 자신을 제외한 존재하는 모든 것에서부터 우주 의식, 나를 포함한 존재하는 모든 것으로 고양이 승천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으면서도 여전히 전달해야만 하는 우주비행사들의 도전처럼 그리스도인 역시 세상에서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눈으로 보고, 하느님의 마음으로 다름에서 같음을, 상극에서 상생을, 배치에서 일치를 그리고 현상에서 본질을 살도록 초대받는 존재가 바로 우리 신앙인입니다. 주님께서 아빠 하느님께 기도하신 그 기도가 우리 기도가 되길 바랍니다.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처럼 이 사람들도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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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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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02
김중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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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8.15.토.성모 승천 대축일 낮 미사 / 한상우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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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01
강칠등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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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99
오완수
2026-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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