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승수 신부님 [연중 제20주일 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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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30 박영희 [cornelia2] 스크랩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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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0주일 가해] 마태 15,21-28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자기 자신이나 사랑하는 가족이 고치기 힘든 중병에 걸렸을 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어떤 종교의 용하다는 사람을 찾아가서는 ‘그 병을 낫게만 해주시면 그 종교를 열심히 믿겠다’고 매달리는 분들이 있습니다. 얼마나 마음이 절박하면 그러실까 충분히 이해는 가지만, 그런 모습을 ‘신앙’이라고 할 수는 없지요.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는 것부터가 한군데에 온전히 의탁하지 못한다는 뜻이고, 이런저런 ‘조건’을 거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흥정’일 뿐입니다. 조건이 마음에 안들면 언제든 깨질 수 있는 게 흥정입니다. 마음 속에 참된 믿음을 지니고 있다면 조건을 걸기 전에 먼저 믿을 것입니다. 또한 자기 기대나 바람대로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또한 자기가 믿는 분의 뜻이며 그렇게 하시는데에는 분명한 의도가 있을 거라고 받아들일 겁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가나안 부인’에게는 마귀 들린 딸을 구해야 한다는 절박함과 간절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예수님을 찾아간 마음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을 뿐 참된 믿음은 아니었지요. 그런 점이 예수님을 부르는 호칭에서도 드러납니다. ‘다윗의 자손’이라는 호칭은 유다인들이 고대하는 정치적 메시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또한 ‘주님’이라는 말은 유다인들이 하느님의 이름인 ‘야훼’를 함부로 부르지 않기 위해 대체해서 부르는 호칭입니다. ‘이방인’인 그녀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할 정도의 깊은 믿음을 지니고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고, 어떻게든 예수님께 매달려 원하는 것을 이루고자 유다인들에게 전해들은 신적 호칭을 다 동원해서 그분을 불렀다고 봐야겠지요.
하지만 예수님은 그저 당신께 간절히 매달린다고 해서 치유의 은총을 베푸시는 분이 아닙니다. 당신께 청하는 이의 ‘믿음’을 먼저 깊게 만드시고 나서, 그가 그 믿음을 통해 자연스럽게 치유의 은총을 입게 만드시는 겁니다. 그래야만 질병의 치유라는 육체적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영적 구원이라는 ‘궁극적 목표’에 다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여인의 간절한 외침을 외면하시고 ‘침묵’하십니다. 주님의 이런 침묵은 참으로 견디기 어렵지요. 내가 그분께 사랑받지 못하고 내쳐진다는 느낌이 들어 서운해지기 때문입니다. 고통과 시련을 겪는 나를 그대로 방치하시는 듯한 모습에 미움과 원망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침묵하시는 건 우리를 당신께 더 가까이 다가가게 만드시기 위함입니다. 당신의 뜻과 섭리를 더 깊이까지 들여다보고 당신의 눈으로 더 큰 그림을 보게 하심으로써, 당신을 향한 우리의 믿음을 더 깊어지게 만드시려는 겁니다. “뿌리 깊은 나무”에 더 풍성한 열매가 열리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모든 것을 아시고 주관하시는 주님의 관점일 뿐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그분의 뜻과 섭리를 헤아릴 길 없는 우리에게 주님의 침묵은 참으로 아프게 다가오는 게 사실입니다. 게다가 그 침묵이 그저 ‘외면’ 정도가 아니라, ‘무시’와 ‘냉대’로까지 느껴진다면 그로 인한 절망은 더 커질 수 밖에 없지요. 오늘 복음 속 가나안 여인이 바로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주님께 간절히 청하는데도 그분은 침묵하셨고, 당신은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라고 그녀를 배척하셨으며, 다른 유다인들이 그랬듯 ‘이방인’인 그녀를 ‘개’에 빗대어 무시하시기까지 했습니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서럽고 분해서 발끈했을 것입니다. 커다란 수치심을 느끼며 자리를 피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 말씀을 통해 주님과 자신의 관계를 돌아보았습니다. 너무나 부족하고 약한 그래서 딸이 마귀가 들렸는데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 비참한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전능하신 분께 온전히 의탁하는 것 뿐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서 그런 자신의 처지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겸허하게 수용하지요. 그저 간절하기만 했던 그녀의 얕은 믿음에 비로소 ‘깊이’가 생기기 시작한 겁니다.
그 여인은 자신이 ‘자격’으로 따지면 주님의 은총을 받을 수 없는 ‘강아지’와 같은 처지임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자신을 냉대하시는 주님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더 겸손한 모습으로 자신을 낮추어 그분의 자비에 모든 것을 내맡깁니다. 예수님 당시 팔레스타인 지방에서는 물이 귀했기에, 식사를 마친 후 물이 아니라 빵 조각을 손에 비벼서 씻었지요. 결국 그 여인이 청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란 주인의 식구가 먹다가 흘린 음식이 아니라, 그런 식으로 손에 묻은 음식찌꺼기를 씻어낸, 엄밀히 따지면 음식이랄 수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은 그런 은총마저도 귀하게 여깁니다. 선택된 민족을 위해 마련된 크고 특별한 은총까지는 아니지만, 그 은총의 아주 작은 ‘부스러기’만으로도 자신과 딸이 구원받기에는 충분하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녀의 믿음에 감동하신 주님은 그녀가 믿는 그대로 될 것이라고 분명하게 선포하시지요. 한 때는 ‘이방인’이었던 그녀는 이제 주님의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은총의 부스러기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처지가 아니라, 주님께서 베푸시는 은총을 충만하게 받아 누리는 그분의 어엿한 자녀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믿음은 우리에게 큰 희망이 됩니다. 우리의 참된 믿음이 주님을 기쁘게 해드려 그분께 구원받을 수 있음이 확실해졌기 때문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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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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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32
최원석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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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근 신부님_“예수님께서는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다.”(마태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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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31
최원석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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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승수 신부님 [연중 제20주일 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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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30
박영희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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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빵부스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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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29
이경숙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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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예수님은, 우리가 바라는 대로 될 수 있게 해주시는 분입니다."(마태 15, 28 마음에 와 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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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28
한택규엘리사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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