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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홍) 2026년 8월 24일 (월)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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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우 묵상] 무화과나무 아래의 시간_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을 준비하며...

191396 서하 [nansimba] 스크랩 2026-08-23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

요한 묵시록 21,9ㄴ-14 / 요한 1,45-51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요한 1,.48


무화과나무 아래의 시간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 계셨던 시선

 

나타나엘은 무화과나무 아래에 혼자 있었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내가 너를 보았다." 이 한마디에 나타나엘은 무너지듯 고백합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우리에게도 저마다의 무화과나무 아래가 있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눈물, 혼자 견디는 마음.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말을 겁니다. "그 자리, 나도 알고 있었다."


"그에게는 거짓이 없다." 

 

나타나엘은 처음에 회의했습니다. "나자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겠는가?"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그를 두고 "그에게는 거짓이 없다"고 하십니다. 그의 회의조차 억압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의심과 저항까지도 진실한 자기됨의 일부인 것입니다.

방어와 가식 없이 자기 자신으로 있을 수 있는 상태, 그것이 참된 인간 존재의 성숙입니다. 의심을 숨기지 않고 정직하게 드러낸 것, 그것이 오히려 진실함이었습니다.


"와서 보라"

 

필립보는 논쟁 대신 이렇게 말합니다. "와서 보라." 설명이 아니라 초대였습니다. 나타나엘은 그 초대에 응해 걸음을 옮겼고, 그 발걸음이 결정적인 만남으로 이어졌습니다. 신앙은 때로 머리보다 발걸음이 먼저입니다.

 

이미 알려지고 사랑받은 존재


이 만남의 핵심은, 나타나엘이 예수님을 알아본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먼저 그를 알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찾아낸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를 먼저 알고 사랑하셨습니다.

나는 이미, 무화과나무 아래에서부터 알려지고 사랑받아 온 존재입니다.


오늘, 나의 무화과나무 아래는 어디인가


나타나엘, 곧 바르톨로메오는 훗날 먼 땅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다 순교했습니다.

그 시작은 거창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혼자 있던 자리에서, 이미 자신을 보고 계셨던 분을 만난 것뿐이었습니다.

 

오늘, 나의 무화과나무 아래는 어디였습니까.

그 자리에서도 나는 이미 알려지고 사랑받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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