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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연중 제23 주일

191675 조재형 [umbrella] 스크랩 04:04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는 마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잘 되던 남편의 사업이 무너지면서 엄청난 빚을 떠안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딸은 코로나를 지내면서 갑자기 아파서 1년에 10번이나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퇴원을 못 하면서 병원에서 1년을 넘게 지내고 있습니다. 공부를 곧잘 하던 아들이 힘든 시기를 지내면서 대학 시험에 실패했습니다. 성경 공부도 하였고, 봉사도 많이 하였던 분이었습니다. 자매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는 구약성경의 욥 성인을 떠올렸습니다. 욥은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하느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며 성실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모든 것이 무너졌습니다. 재산을 잃고, 자녀들을 잃고, 건강까지 잃었습니다. 욥에게 닥친 불행은 한둘이 아녔습니다. 마치 파도가 연이어 밀려오듯 고통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때 욥의 친구들이 찾아왔습니다. 처음에는 욥과 함께 앉아 울어 주었습니다. 일주일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곁에 머물렀습니다. 그때까지는 참 좋은 친구들이었습니다. 말없이 함께 있어 주는 것, 아픈 사람 곁을 떠나지 않는 것은 큰 위로가 됩니다.

 

그러나 친구들이 입을 열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친구들은 욥이 고통받는 데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욥이 알지 못하는 죄를 지었거나, 하느님께 잘못했기 때문에 벌을 받는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친구들의 말에는 당시의 종교적인 지식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랑과 자비가 부족했습니다. 그들은 욥의 아픔을 들어 주기보다 고통의 원인을 분석하려고 했습니다. 욥을 위로하기보다 가르치려고 했고, 함께 울기보다 잘못을 찾아내려고 했습니다. 욥에게 필요했던 것은 정답이 아니었습니다. 곁에 있어 줄 사람이었습니다. 자매님에게 하느님만을 믿고 의지하기에는 시련의 파도가 너무 높았고, 신앙의 깊이는 낮았습니다. 사랑하는 딸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한국에 휴가를 갔던 저와 연락이 되었습니다. 2시간 넘게 이야기하면서 마음의 고충을 털어놓았습니다. 자비하신 하느님께서는 비록 잠시 하느님을 떠났었지만, 자매님을 사랑하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세상에는 종교가 있습니다. 종교는 고속도로의 휴게소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긴 고속도로를 운전하다 보면 휴게소가 나옵니다. 휴게소에서는 잠시 쉬기도 하고, 음식을 먹기도 하며, 자동차에 기름을 넣기도 합니다. 지친 몸을 풀고 다시 길을 갈 힘을 얻습니다. 종교도 우리 인생길의 휴게소와 같습니다. 지친 영혼이 쉬어 가는 곳입니다. 상처 입은 마음이 위로받는 곳입니다. 삶의 방향을 잃었을 때 다시 길을 확인하는 곳입니다. 사랑의 연료가 떨어졌을 때 하느님의 은총으로 다시 채우는 곳입니다. 그런데 휴게소는 목적지가 아닙니다. 우리는 휴게소에서 힘을 얻고 다시 길을 떠납니다. 때로는 운전하다가 휴게소를 그냥 지나칠 수도 있습니다. 너무 마음이 급해서, 너무 지쳐서, 또는 출구를 놓쳐서 휴게소에 들어가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휴게소가 그 운전자를 미워하지는 않습니다. 다음 휴게소가 또 기다리고 있습니다.

 

자매님은 한동안 성당이라는 휴게소를 지나쳤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자매님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성당 건물 안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자매님이 성당에 나오지 못했던 시간에도 하느님께서는 자매님 곁에 계셨습니다. 눈물 흘리던 밤에도 함께 계셨고, 혼자라고 느꼈던 순간에도 지켜 주셨습니다. 자매님은 하느님을 잠시 놓쳤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하느님께서는 자매님의 손을 놓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흔들려도 하느님의 신실하심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에게서 멀어져도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향해 다가오십니다. 우리가 돌아갈 길을 찾지 못할 때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보내 주시고, 만남을 마련해 주시며, 작은 위로를 통해 우리를 다시 부르십니다.

 

15년 만에 만남도 우연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하느님께서 자매님에게 말씀하시기 위하여 저를 만나게 하신 것인지도 모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하느님께서는 에제키엘 예언자를 이스라엘의 파수꾼으로 세우십니다. 파수꾼은 다른 사람의 잘못을 감시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위험에 빠진 사람을 살리기 위해 외치는 사람입니다. 길을 잃은 사람이 돌아올 수 있도록 알려 주는 사람입니다. 파수꾼에게 중요한 것은 높은 곳에 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우리도 신앙 공동체 안에서 서로의 파수꾼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파수꾼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사람을 감시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형제가 죄를 지으면 먼저 단둘이 만나 타이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비난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소문을 내라고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먼저 단둘이 만나라는 것은 그 사람의 인격과 명예를 지켜 주라는 뜻입니다. 그의 사정을 듣고, 그의 상처를 살피며, 사랑으로 대화하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오늘 복음의 목적은 잘못한 사람을 심판하는 것이 아닙니다. 형제를 얻는 것입니다.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을 되찾는 것입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모든 계명을 한마디로 요약합니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사랑은 죄와 잘못을 무조건 괜찮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을 바로잡아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방법은 반드시 사랑이어야 합니다. 상대방을 모욕하거나 공동체에서 밀어내는 것은 복음적인 충고가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도 잠시 성당을 떠난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 때문에 신앙 공동체에서 멀어진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기도해도 응답이 없다고 느껴 하느님에게 마음을 닫은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삶의 무게에 눌려 미사에 나올 힘조차 없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판단이 아닙니다. 비난도 아닙니다. 정답과 훈계가 아닙니다. 욥의 친구들이 처음에 했던 것처럼, 말없이 곁에 앉아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해 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여전히 사랑하십니다.” 이번 한 주간 우리도 멀어진 사람 한 명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먼저 전화하고, 따뜻한 안부를 전하며,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주면 좋겠습니다. 판단과 비난의 말을 내려놓고, 용서와 사랑으로 다가가면 좋겠습니다. 한 사람을 다시 얻는 일이야말로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맡기신 복음의 사명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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