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GOOD NEWS 게시판

검색
메뉴

검색

검색 닫기

검색

오늘의미사 (녹) 2026년 9월 6일 (일)연중 제23주일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가톨릭마당

sub_menu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함승수 신부님 [연중 제22주간 토요일]

191693 박영희 [cornelia2] 스크랩 2026-09-05

[연중 제22주간 토요일] 루카 6,1-5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걸핏하면 예수님을 트집잡고 옭아맬 생각만하는 근본주의자들 때문에, 사람들은 ‘율법’이라고 하면 도무지 융통성이라고는 없이 앞뒤가 꽉 막힌, 바늘로 찔러도 피 한방울 안나오는 차갑고 매서운 ‘원리원칙’을 떠올리지만, 사실 율법의 근본정신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예로 신명기에 따르면 가난하고 먹을 게 없어 굶주리는 사람이 이웃의 밭에 들어가 밀 이삭을 잘라 먹는 것을 허용하고 있지요. 다른 사람의 재물에 함부로 손을 대는건 십계명에서 엄하게 금지하는 ‘도둑질’에 해당하지만, 그가 가련한 처지에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저지른 그 죄를 단죄하는 것보다, 그가 하느님께 받은 소중한 생명을 지키도록 돕는 일이, 부유한 사람이 지닌 재산의 ‘일부’를 보호하는 것보다 힘 없고 가난한 이들이 가진 ‘전부’인 생명을 보호하는 것이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자비에 보다 합당하다고 판단한 겁니다.

 

그런데 그런 율법의 너른 품에 비해,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 일행에게 시비를 거는 바리사이들의 속마음은 쪼잔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들은 밀 이삭을 뜯어서 손으로 비벼 먹은 제자들의 행위를 추수에 준하는 노동으로 규정하고는 ‘안식일 법’을 어겼다며 비난하지요. 어떤 사실을 자기들의 의도에 맞춰 과장하고 왜곡하는 ‘침소봉대’(針小棒大)의 전형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사무엘기에 기록된 다윗과 그 일행의 이야기를 상기시키십니다. 다윗 시대에 예루살렘 성전 성소에는 사람들이 봉헌한 열두 개의 빵이 하느님께 바친 ‘제물’로서 일주일 동안 접시에 놓여 있었는데, 일주일이 지나면 오직 제단의 봉사자들인 사제들만 그 빵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윗과 그의 일행이 그 빵을 먹은 것입니다. 그들이 너무나 굶주렸고 다른 빵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다윗에게 빵을 내어준 사제 아히멜렉도, 그 이야기를 기록한 성경 저자도,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 따지고 들었던 율법학자들 조차도 다윗과 그 일행을 탓하지 않았습니다. 성전의 봉헌규정을 지키는 일보다 더 중요한건 어려움에 처한 이들이 소중한 생명을 보전하는 것이라는 율법의 ‘근본정신’에 모두가 동의했던 겁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바리사이들은 어떻게든 예수님을 율법으로 옭아매어 보려고 그분께 시비를 걸었지만, 예수님은 모든 계명과 율법을 주관하는 ‘주인’이시지 그것에 매이는 분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바리사이들이 해야 할 일은 율법을 무기처럼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신 이유와 뜻을 생각하며 그 근본정신을 실현하는 것이겠지요. 하느님께서 안식일 규정을 만드신 것은 그 날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막으시려는 게 아니라, 그날 하루 만이라도 평소에 욕심내고 집착하던 것들을 잠시 내려두고 꼭 해야 할 중요한 일에 집중하라는 뜻입니다. 그 중요한 일이란 ‘외딴 곳’을 찾아 하느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 하느님과 친교가 깊어지는 만큼, 사랑과 자비를 실천함으로써 함께 사는 이웃과의 친교도 깊어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게 모두가 하느님 안에서 삶의 기쁨을 충만하게 누리는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1 70 0

추천  1 반대  0 신고  

TAG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로그인후 등록 가능합니다.

0 / 500

이미지첨부 등록

더보기
리스트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