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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6년 9월 6일 (일)연중 제23주일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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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191705 조재형 [umbrella] 스크랩 06:29

휴가 중에 복음화 학교선생님들을 만났습니다. 오랜만에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지난 시간들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2002년부터 10년 동안 복음화 학교의 담당 사제로 지냈습니다. 복음화 학교는 신자들을 위한 재교육 프로그램입니다. 다섯 단계의 과정을 거치면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구원에 대한 확신을 키우며, 신앙은 머리로만 이해하는 관념이 아니라 삶으로 실천하는 것임을 배우는 학교입니다. 복음화 학교는 1991년에 시작되었으니 어느덧 35년이 되었습니다. 제가 담당 사제로 있을 때 교구의 신심 단체로 등록되었고, 가톨릭 회관에 강의실과 사무실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주로 했던 일은 월례 미사와 기도회 미사, 피정 미사를 봉헌하는 일이었습니다. 그 밖의 행정적인 일들은 봉사자들이 자발적으로 알아서 해 주었습니다. 일 년에 한 번 공동체 수련회에 함께했고, 때로는 성지순례에도 동행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제가 복음화 학교를 도와준 것 같지만, 오히려 제가 더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봉사자들의 열정과 헌신을 보면서 신앙인의 자세를 배웠고, 그분들의 구원에 대한 갈망과 확신을 보면서 저의 신앙도 새롭게 할 수 있었습니다. 복음화 학교는 지식을 전달하는 곳만이 아니었습니다. 신자들의 영적인 갈증을 채워주는 우물과 같았습니다. 사람에게는 육체적인 갈증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정받고 싶은 갈증이 있고, 사랑받고 싶은 갈증이 있습니다. 삶의 의미를 찾고 싶은 갈증이 있고, 죽음을 넘어서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갈증도 있습니다. 세상의 성공과 재물, 명예와 즐거움이 잠시 갈증을 잊게 할 수는 있지만, 영혼 깊은 곳의 갈증까지 채워주지는 못합니다. 그 갈증은 오직 하느님의 말씀과 사랑으로만 채울 수 있습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묵은 누룩을 깨끗이 치우고 새 반죽이 되십시오. 우리의 파스카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악의와 사악이라는 묵은 누룩이 아니라, 순결과 진실이라는 누룩 없는 빵을 가지고 축제를 지냅시다.” 누룩은 아주 적은 양이지만 온 반죽을 부풀게 합니다. 좋은 누룩은 반죽을 맛있는 빵으로 만들지만, 상한 누룩은 반죽 전체를 망가뜨립니다. 우리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작은 원망과 질투, 작은 거짓과 욕심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 어느새 그것이 우리의 마음과 공동체 전체를 흔들어 놓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작은 친절과 용서, 작은 기도와 봉사도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절망한 사람에게 용기를 줄 수 있고, 진심 어린 기도가 상처받은 사람에게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헌신이 공동체 전체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도 있습니다. 복음화 학교가 35년 동안 이어질 수 있었던 것도, 묵묵히 봉사한 선생님들의 작은 희생과 열정이 좋은 누룩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말하는 새 반죽은 단순히 제도나 법을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새 건물을 짓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시작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참된 새로움은 우리의 마음이 바뀌는 것입니다. 악의와 사악이라는 묵은 누룩을 버리고, 순결과 진실이라는 새 누룩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과 의로움을 위해 기꺼이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베네딕토 성인이 혼란스러운 시대에 기도와 노동의 영성을 보여 주었고, 프란치스코 성인이 가난과 형제애의 영성을 보여 주었던 것처럼, 우리 시대에도 새로운 영성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새로운 영성은 특별하고 신비한 체험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찾고, 이웃을 살리며, 복음을 삶으로 실천하는 것이 참된 영성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 주십니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 규정을 어기는지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고통받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직 규정을 어겼는가, 지켰는가만 중요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물으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묻겠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안식일은 본래 사람을 억압하기 위해 주어진 날이 아닙니다. 하느님 안에서 쉬고, 생명을 되찾으며, 이웃과 함께 기뻐하도록 주어진 날입니다. 그런데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안식일을 사람을 판단하고 단죄하는 기준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생명을 살리기 위해 주어진 법이 오히려 생명을 억누르는 도구가 된 것입니다.

 

칼도 마찬가지입니다. 칼은 음식을 만들어 사람을 먹이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의사가 수술을 통해 환자를 살리는 도구로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칼이 사람을 해치는 무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칼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마음입니다. 율법도, 제도도, 지식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을 통해 사람을 살리고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낼 수도 있지만, 사람을 판단하고 상처 입히는 도구로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옳은 말을 하더라도 그 말로 사람을 죽인다면 복음이 아닙니다. 아무리 규정을 잘 지키더라도 고통받는 이웃을 외면한다면 참된 신앙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냐시오 성인은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하느님을 찬미하고 영혼의 구원에 도움이 된다면 취하고,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내려놓아야 합니다. 안식일도, 율법도, 제도도 하느님의 영광과 인간의 구원을 위해 존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말씀하십니다. “손을 뻗어라.” 그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손을 뻗자, 그의 손이 다시 성해졌습니다. 손이 오그라들었다는 것은 단지 육체적인 장애만을 의미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도 상처와 두려움 때문에 오그라들 수 있습니다. 실패와 좌절 때문에 사랑의 손을 내밀지 못할 수 있습니다. 원망과 미움 때문에 용서의 손을 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했어도 봉사와 나눔의 손이 굳어 있을 수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손을 뻗어라.” 기도의 손을 뻗으라고 하십니다.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사랑의 손을 뻗으라고 하십니다. 상처받은 사람에게 화해의 손을 내밀고, 영적으로 목마른 사람에게 복음의 물을 건네라고 하십니다.

 

복음화 학교의 사명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지식을 많이 가진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그라든 마음을 펴 주는 것입니다. 구원에 대한 확신을 잃은 사람에게 희망을 전하고, 영적으로 목마른 사람에게 생명의 말씀을 건네며, 배운 복음을 삶으로 실천하도록 손을 잡아 주는 것입니다. 우리도 오늘 묵은 누룩을 버리고 새 반죽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악의와 사악의 누룩이 아니라 순결과 진실의 누룩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람을 판단하고 억압하는 율법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고 자유롭게 하는 복음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손을 뻗어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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