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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6년 9월 10일 (목)연중 제23주간 목요일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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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함승수 신부님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191780 박영희 [cornelia2] 스크랩 2026-09-09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루카 6,20-26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신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이 ‘행복하다’고 선언하십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행복’으로 번역된 그리스어 원문의 뜻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르지요. 우리는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며 흐뭇한 상태’를 행복이라고 부르는데, 그런 만족과 기쁨을 느끼기 위해서는 돈, 권력, 명예 같은 세속적인 조건들을 갖추는 것이 필수라고 여깁니다. 그렇기에 가난한 이, 굶주린 이, 슬퍼서 우는 이가 행복하다는 예수님 말씀은 이해하기도 납득하기도 어렵습니다. 특히 가난한 이는 갖고 싶고 먹고 싶고 하고 싶은 것들이 제한되기에 삶에서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당신을 믿고 따르는 이들이 그런 관점과 기준에서 행복하다고 말씀하신 게 아닙니다. 그런 이들이 하느님으로부터 “축복받았다”라고 선언하신 것이지요. 반면 지금 부유하고 배부르며 뜻한 바를 이룬 기쁨에 웃는 이들은 불행하다고 하십니다. 그들을 괘씸하게 생각하여 저주하신 게 아니라, 세상 것들이 주는 풍요에 만족하며 안주하는 이들은 그저 그런 상태가 오래 지속되기만을 바랄 뿐,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은총과 축복을 굳이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필요로 하지 않으니 무관심하게 되고, 관심이 없으니 하느님께서 아무리 많이 베풀어주셔도 받지 못하는 겁니다. 물론 지금 당장은 별다른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세속적인 것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언제든 변하고 사라질 수 있기에, 그런 것들이 주는 일시적인 만족을 행복으로 착각하며 사는 이들은 언제든 그것을 잃고 절망에 빠질 수 있음을 예수님은 경고하시는 것이지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축복받았다”고 선언하시는 ‘가난’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는 분명히 새겨들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가난은 아무리 욕심을 부리고 집착해도 도무지 재물이 모이지 않아 어쩔 수 없이 곳간이 텅텅 비어버린, 박탈감과 원망 가득한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가난이 아닙니다. 하느님과 그분 뜻을 위해 자기 전 재산인 ‘렙톤 두 닢’을 아낌 없이 봉헌한 가난한 과부처럼, 힘들고 어려운 와중에도 하느님과 그분 뜻을 위해 내어드릴 몫을 먼저 떼어놓고, 그로 인해 생긴 빈 자리를 기쁨과 보람으로 채우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가난을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그런 가난을 기꺼이 감당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의 마음이 온통 하느님 나라에 가 있기 때문입니다. “너희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루카 12,34)는 말씀처럼, 하느님 나라가, 하느님과 함께 누릴 참된 행복이 그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보물’이기에, 그들은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은총과 축복들을 ‘한 톨’도 흘리지 않고 온전히 받아 누리게 된다는 뜻입니다. 외적인 조건들에 흔들리지 않고 영원토록 지속될 이 행복이야말로 우리 그리스도 신앙인들이 추구해야 할 참된 행복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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