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GOOD NEWS 게시판

검색
메뉴

검색

검색 닫기

검색

오늘의미사 (녹) 2026년 9월 9일 (수)연중 제23주간 수요일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가톨릭마당

sub_menu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조명연 마태오신부님(빠다킹신부님) 9월 10일 출처https://cafe.daum.net/bbadaking/4Zol/7929

191781 박양석 [pys2848] 스크랩 19:23

2026년 9월 10일 연중 제23주간 목요일

 

 

학창 시절에 여행을 많이 다녔습니다. 그런데 한 번은 입석 기차를 탔습니다. 돈이 궁할 때였고,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좌석 대신 서서 가는 입석을 이용한 것입니다. 며칠 동안 혼자 여행하면서 많이 피곤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빈자리가 보이는 것입니다. 얼른 그 자리에 앉았습니다. 자리 주인이 오면 자리를 내 줄 생각으로 말입니다.

 

잠시 뒤에 깜짝 놀랐습니다. 편하게 자리에 앉아 있다 보니 잠든 것입니다. 잠든 시간이 무려 2시간이었습니다. 마음속으로 ‘다행이다. 이 자리가 계속 비어 있었나 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 옆에 어떤 아주머니가 서서 저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났어? 원래 여기 내 자리인데 총각이 너무 피곤해 보여서 깨울 수 없더라고.”

 

작년이었을 것입니다. 지방에 강의가 있어 기차를 탔습니다. 그런데 제 자리에 누가 앉아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곤히 자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학창 시절의 그 아주머니가 생각났습니다. 어떻게 했을까요? 흔들어 깨웠을까요? 아닙니다. 저도 일어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제가 내릴 때까지 주무시고 계셔서 그냥 끝까지 서서 갔습니다.

 

받은 사랑을 기억하면 사랑을 실천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사랑은 전달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실천은 순간적으로는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세상을 아름답게 만듭니다.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원수는 어떤 사람일까요? 단순히 싫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보다 생각하기만 해도 마음이 무거워지고 분노가 이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 원수의 행동을 정당화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 원수 때문에 마음과 삶까지 힘들어지는 우리를 위해서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원수를 미워하는 동안 우리는 그 사람과 보이지 않는 끈으로 계속 묶여 있습니다. 상대방이 지금 옆에 없어도 내 생각과 감정을 지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용서한다는 것은 그런 끈을 끊어버리고, 모든 판단과 정의를 하느님께 맡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엇보다 악을 악으로 돌려주면 악의 순환이 계속됩니다. 그러나 사랑으로 응답하면 적어도 나에게서 그 악의 순환이 끊어지게 됩니다.

 

원수 사랑은 그 원수가 사랑받을 만해서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역시 자격 없이 하느님의 자비를 받았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이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36)

 

우리 모두 이 말씀을 따를 때,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가지 끝에 앉아 노래하는 새처럼 되어라. 날개가 있음을 알기에 가지가 부러지는 것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고 노래하는 새처럼(빅토르 위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0 9 0

추천  0 반대  0 신고  

TAG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로그인후 등록 가능합니다.

0 / 500

이미지첨부 등록

더보기
리스트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