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승수 신부 님 [성 십자가 현양 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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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83 박영희 [cornelia2] 스크랩 2026-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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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십자가 현양 축일] 요한 3,13-17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이 세상에 고통이나 슬픔을 겪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없애거나, 아니면 최소한 나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잘 피해가고 싶어하지요. 그렇기에 우리가 겪는 고통과 슬픔에 함께 하시며 같이 울어주시는 하느님을 우리는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전능하신 하느님이라면, 그리고 그분이 진정 나를 사랑하신다면, 내 앞에 놓인 고통과 시련은 치워주시고 영광과 기쁨이 가득하게 해주셔야 한다고 여기는 겁니다. 그런 왜곡된 하느님 상이 내 마음을 짓누르는 일종의 ‘강박’이 되어, 하느님을 향한 나의 신앙을 세상에서 풍족하고 편안한 삶을 누리기 위한 처세의 도구로 전락시키고 있는 것도 모르는 채로 말이지요.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가 희망하고 바라야 할 구원이 십자가 ‘안’에 자리잡고 있다고 가르치십니다.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당신 아들마저 내어주신 하느님의 희생 안에서, 그런 아버지의 뜻에 순명하시어 기꺼이 자신을 낮추시고 인간이 되신 예수님의 희생 안에서 인류 구원이라는 하느님의 원대한 뜻이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예수님의 말씀을 귀기울여 듣고 실천으로 그분의 뒤를 따르는 우리의 희생 안에서 우리의 구원과 참된 행복을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이 온전히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당장 힘들고 괴롭다고 해서 불평 불만을 입에 달고 살 게 아니라, 하느님께서 나로 하여금 그토록 힘들고 어려운 길을 걷게 하시는 이유와 목적에 대해 생각해야 합니다. 고통이라는 포장지를 순명과 의탁이라는 칼로 잘 벗겨내어, 하느님께서 그 안에 담아주신 소중한 은총의 선물들을 잘 찾고 누려야 합니다.
오늘은 십자가의 희생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기억하며 감사하는 성 십자가 현양축일입니다. 원래는 무자비한 사형도구에 불과했던 십자가가 거룩해진 것은 그 위에 예수님께서 매달리셨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서 당신께 맡기신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당신의 전부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남김 없이 다 짜내어 내어주신 그 숭고한 희생이 당신께서 매달려계시던 십자가를, 그리고 당신께 대한 믿음으로 그 십자가를 바라보는 우리 모두를 거룩하게 만들어주시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 매달리신 것은 그저 당신을 바라보기만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로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것을 참으로 믿는다면, 그분께서 나에게 건네주시는 십자가를 기꺼이 끌어안을 수 있어야겠지요. 각자가 받는 십자가는 그 모양도, 크기도, 무게도 다 제각각이지만, 중요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그 십자가를 통해 뾰족하게 모난 나를 다듬고, 교만한 나를 겸손하게 만드시며, 세상 이익만 생각하는 나를 기도하게 하시고, 마침내 내가 가야할 길을 찾게 하시며 그 길을 걸어갈 용기와 힘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십자가를 두려워하며 피할 게 아니라, 그것을 기꺼이 품어 안을 수 있는 은총을 주시기를 청해야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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