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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6년 9월 18일 (금)연중 제24주간 금요일예수님과 함께 있던 여자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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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함승수 신부님 [ 연중 제24주간 목요일]

191945 박영희 [cornelia2] 스크랩 2026-09-17

[연중 제24주간 목요일] 루카 7,36-50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한 죄 많은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바리사이의 집까지 쫓아 들어갑니다. 마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큰 죄를 지은 처지로, 그 누구보다 죄인을 비난하며 배척했던 바리사이의 집 안에 들어간다는 건 엄청난 용기와 결단을 필요로 하는 일이지요. 자신을 벌레보듯 쳐다보는 경멸의 시선을 견뎌야했기 때문이고, 자신이 존경하며 사랑하는 예수님 앞에서 감추고 싶은 치부와 허물이 드러나는 모욕적인 상황을 견뎌야 했기 때문입니다. 사방이 막힌 고해소에서 사제 한 사람에게 죄를 고백하는 것조차 힘들어 하는 게 사람 마음인데, 많은 이들이 쳐다보는 열린 공간에서 통회의 눈물을 흘리며 자기 마음 속 어둠을 쏟아내는 건 너무나 어려운 일인 겁니다. 그러나 그 여인은 기꺼이 그 모든 상황을 견뎌내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님께서 베푸시는 용서의 은총에 대해 잘못 생각하곤 하는 점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는 통회와 회개가 끝나야만 그 대가로 용서를 받는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죄를 뉘우치려는 마음을 품는 그 순간부터 주님의 용서는 이미 시작되지요. 즉 오늘 복음 속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러 가기 위해 향유가 든 옥합을 챙기는 그 순간부터, 용서의 은총은 이미 시작된 겁니다. 한편, 우리가 죄에 대해서도 잘못 생각하곤 하는 점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는 십계명을 어길 정도로 무언가 큰 잘못을 저지르는 게 죄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보다 더 큰 죄는 하느님께 받은 사랑을 헤아리지 못하여 제대로 못누리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은총을 베풀어 주심에 감사하지 못하여 받은 은총을 제대로 나누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얼마나 큰 사랑을 실천하는가 하는 것이 곧 얼마나 많은 잘못을 용서받았는가를 보여주는 척도라고 말씀하십니다. 받기만 하면 마음이 무겁고 미안해지는 것이, 그래서 나도 뭔가 내어주고 싶은 것이 우리 마음 속에 자리잡은 ‘양심’입니다. 그렇기에 주님으로부터 용서의 은총을 받은 사람은 그 표징으로 자기가 용서와 자비의 은총을 받은 만큼, 이웃에게 용서와 자비를 실천하게 되는 겁니다. 예수님을 초대한 바리사이는 자신이 하느님으로부터 얼마나 큰 용서와 자비의 은총을 받고 있는지를 의식하지 못했기에, 교만하고 독선적인 마음으로 다른 이를 심판하고 단죄하려 들었지만, 예수님을 찾아간 그 여인은 자신이 얼마나 큰 용서와 자비의 은총을 받았는지를 헤아렸기에, 통회와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예수님께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을 보여드린 것이지요.

 

하느님은 우리의 행실대로 갚으시는 분이십니다. 단, 우리가 베풀고 나눈 그 ‘됫박’에 차고 넘치도록 ‘덤’을 얹어주시지요. 즉 내가 하느님으로부터 얼마나 큰 은총을 받을지는 내가 얼마나 큰 사랑의 됫박을 준비하는가에 달린 일인 겁니다. 그러니 잔뜩 주눅든 마음으로 죄를 안 짓는데에만 신경쓰지 말고, 다른 사람이 지은 죄만 바라보며 심판하거나 단죄하려 들지 말고, 하느님과 이웃을 더 많이 사랑함으로써 내가 하느님께 은총 받을 됫박을 더 크게 만드는 데에 집중해야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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