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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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07 최원석 [wsjesus] 스크랩 2026-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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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백수 생활하면서 제가 가장 사랑하는 분의 속을 아프게 합니다. 아버지이십니다. 특히나 저의 악습으로 인해서 아버지의 가슴에 멍이 들게 헤 드리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가 가슴 아프게 해 드려서 너무 죄송스럽습니다. 영적 독서를 하는데 주로 체계적인 생활 안에서 수도가 가능한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저의 이런 태만스런 행동으로 인해서 아버지께서 가슴 아파하시는 모습에 다시 한번 성찰하고 반성해 봅니다. 사람이 영적인 길을 가려고 하면 중심을 잡아가야 합니다. 그 중심이 하느님과 나의 관계입니다. 그런데 제 자신이 무너지는 모습 중에 하나가 외부 환경에서 오는 것으로 인해서 중심을 잡아 가지 못하고 흔들리는 모습을 봅니다. 제 안에 하느님이 중심을 잡지 못한 것이 원인인 것 같습니다. 외부 환경 이야기를 하다 보니 우리 한국은 우리 자신 안에서 하느님을 찾은 민족이고 그 하느님 즉 천주님을 우리는 한문으로 알고 믿었던 민족입니다. 선교사가 들어오지 않고 우리 스스로 천주님을 알아보고 찾았던 민족입니다. 그 내면에 영적인 하느님을 찾은 민족이 우리 민족입니다. 우리가 선교사 파견도 요청했고 신학교 신부님을 양성을 위해서 우리 민족이 스스로 파견하여서 신부님을 양성하고 양성 된 사제가 한국에 입국하여서 사도직을 하다가 순교를 당해서 하느님 영광 돌린 민족이 한국입니다. 저의 내면에 흔들리는 모습과 대비되는 우리 한국의 선인들의 삶에 비추어 보면 한없이 부끄럽습니다. 죄스럽기도 하고요. 죽음의 위협 앞에서 당당하게 죽음을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내 안에서 하느님이 저에게 전부입니다. 이런 믿음이 있었기에 순교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누가 시켜서 천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외부에서 요란한 환경이 발생하면 바로 흔들립니다. 신앙 선조들의 그 근원적인 믿음의 행위가 결국은 오늘의 한국 천주교의 반석을 세워 놓은 것이었습니다. 나의 신앙의 시선은 어디에 두고 있는가? 외부 혹은 혹독한 시련 속에서도 나에게 하느님은 전부인가? 이 질문 앞에 저 자신이 너무 작다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외부의 환경에 저 자신이 흔들리지 않고 온전히 하느님이 전부인 선조들과 같이 저에게 당신이 전부라는 믿음 속에서 나의 잘못된 행동들을 성찰해 봅니다. 순교 성인들을 기념하는 오늘 아침에 다시금 저를 성찰해 봅니다. 하느님이 나에게 전부인가? 네 전부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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