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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6년 9월 24일 (목)연중 제25주간 목요일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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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조명연 마태오신부님(빠다킹신부님) 9월 24일 연중 제25주간 목요일

192074 박양석 [pys2848] 스크랩 2026-09-23

2026년 9월 24일 연중 제25주간 목요일

 

 

신학교에 입학한 날, 신학교 성당에서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특히 세상의 것을 버리고 여기까지 왔으니, 주님께서 책임지셔야 한다는 협박(?)도 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신학교까지 왔으니 저 역시 좋은 사제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다짐의 기도를 바쳤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노력의 하나로 공동 기도를 할 때 성당에서 제일 늦게 나가는 신학생이 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 다짐은 과연 며칠이나 갔을까요?

 

다음 날 끝기도 후에 공동 묵상 시간이었습니다. 저녁 8시가 되면서 이제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저는 전날의 다짐을 생각하면서 계속해서 묵상하면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에 저는 곁눈질하며 주변을 살폈습니다. 다 나가야 저 역시 나갈 수 있으니까요. 문제는 한 명의 신학생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9시가 넘었는데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열심한 선배님이시구나 싶었는데,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미운 선배님이 되고 말았습니다.

 

열심히 하느님만 바라보며 기도하겠다 했지만, 사실 그 선배 신학생만 바라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기도가 되었을까요? 아닙니다. 온갖 부정적인 마음으로 전혀 기도할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저의 다짐은 하루 만에 깨졌습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나약한 존재인 것입니다. 하느님만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하는데, 다른 것을 바라보니 제대로 하느님을 만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는 헤로데 영주가 등장합니다. 그는 정치적 계산에 밝고 권력 유지에 집착했던 인물로 당황해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전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당황함은 아마 죄책감과 정치적 위기감에서 비롯된 내적 동요일 것입니다. 자신이 처형한 세례자 요한이 되살아 난 것이라는 두려움이고, 예수님의 가르침과 기적으로 민중이 동요할 것이라는 두려움입니다. 헤로데는 말합니다.

 

“이 사람은 누구인가?”(루카 9,9)

 

이 질문은 복음서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입니다. 군중은 세례자 요한이 되살아났다고, 엘리야가 나타났다고,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났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위대한 종교적 인물들의 범주 안에 가두고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헤로데 영주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스스로 질문을 던져봐야 합니다. 예수님은 과연 누구인지를 말입니다. 헤로데 영주처럼 두려움의 대상으로만 알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아니면 당시의 군중들처럼 단순히 과거의 훌륭한 인물 정도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요?

 

예수님께서는 침묵하십니다. 정답을 이야기하시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그분의 말씀과 행적으로 정답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다른 것에만 신경 쓰면 절대로 정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오늘의 명언: 우리는 모두 무언가에 의해 부서진 채로 살아간다. 깨짐의 정도는 저마다 다르지만, 서로가 깨진 채로 존재하는 상태를 공유하고 있다(브라이언 스티븐슨).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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