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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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27 최원석 [wsjesus] 스크랩 2026-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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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 신부님_아는 것에 대한 두려움
사도들도 우리처럼 어떤 특정 사항에 대해서는 아는 것 자체를 두려워했던 사람들입니다. 그 사항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예수님이 당신의 임박한 죽음에 대하여 여러 차례 예고하실 때, 무엇을 의미하고자 하시는지에 대한 문제입니다.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또는 “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서 이해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하고 기술되어 있지만, 실은 스승 예수님의 죽음에 관한 사실 여부와 그 의미에 대해서 더 알기를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그 말씀에 관하여 묻는 것도 두려워한” 이유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고 말씀하시며, 당신 희생의 의미를 분명히 밝히셨음에도, 이를 받아들이기를 꺼리거나 외면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애당초 십자가가 주는 부정적 징표를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일시적이라 하더라도 승리하는 메시아, 이스라엘의 영광을 재현할 메시아, 선택받은 민족에게 그 옛날의 광영을 되돌려줌으로써 세상의 으뜸 민족으로서의 권위를 보장해 줄 메시아 개념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메시아관을 품고 있던 제자들에게, 메시아가 어떻게 사람들 손에 넘겨져 십자가형에 처해질 수 있었겠습니까 그들이 사랑하고 있고 따르고 있는 스승의 모험을 마감해 줄 십자가상 희생 제물에 관한 예수님 말씀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이 희생은 그리스도의 삶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절대적이며 결정적인 요소였습니다. 그분의 모든 사명을 요약해서 설명해 주는 핵심이었습니다. 그분이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며, 그토록 많은 고통을 받으신 이유이며, 그분이 어떤 분인지를 밝혀주는 바탕이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이 희생에 대하여 가능한 한 자주 말씀하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당신이 떠나신 다음, 지상 교회를 책임지고 관리할 제자들만은 이 희생의 가치와 의미를 철저하게 인식하고 그대로 살아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더는 부정적 징표가 아니라, 사랑과 구원의 징표로 그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각인되어 있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이라면 우리도 사도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걸어가는 길이 우리를 어디까지 이끌어갈지를 아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떨치기 힘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복음서를 읽으면서도, 두려운 나머지,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세속적인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들을 애써 외면하거나 이해불가한 부분으로 치부해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제자로서의 삶은, 그분이 말씀하셨듯이, 각자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삶, 그것을 하나의 특권으로 인식하는 삶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십자가로 대표되는 희생을 제외한 삶이란 무의미하며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해오면서, 이러저러한 상황 앞에서 두려운 마음을 보이거나, 이해타산적인 잣대로 손해를 보거나 무익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구심 때문에 괴로워했던 적이 여러 번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 모든 두려움을 떨칠 수 있도록 앞서가시는 주님, 우리의 의식과 판단과 행동의 기준이신 주님, 그대로 따르기만 하면 되는 주님이 계십니다.
오늘 하루, 주님의 가르침만을 우리의 판단과 행동의 유일한 기준으로 삼고 살아갈 것을 다짐하며,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굴함이 없이 신앙인의 모습을 펼쳐나가는, 활기찬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예고하시며 “너희는 이 말을 귀담아들어라.”(44절)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감히 묻지도 못한다. 이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인간의 계산과 기대를 뛰어넘는 신비이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이미 변모의 영광, 기적, 권능을 체험했지만, 그 영광이 십자가를 통해서만 온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제자들이 이해하지 못한 것은 그들이 나빴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준비시키기 위하여 때를 늦추신 것이다.”(Sermo 85,1 재구성)라고 설명한다.
오리게네스는 “그리스도의 수난은 인간적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고, 오직 성령의 빛 안에서만 깨달아지는 신비”(In Lucam homiliae 재구성)라고 강조한다. 우리 역시 복음을 알지만, 여전히 십자가 없는 영광만을 바라는 유혹 속에 살고 있다.
예수님의 길은 세상의 길과 정반대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십자가는 패배가 아니라 승리이며,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생명의 시작이다.”(Homiliae in Matthaeum 65 의역)라고 말한다. 교리서에서도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인류를 위한 유일하고 완전한 희생 제물이며, 그 안에서 제자들도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도록 부름을 받는다.”(618항)라고 가르친다. 십자가 없이는 부활도 없고, 자기 포기 없이는 참된 제자직도 없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듯이, 우리도 자주 복음을 자기 방식대로 왜곡한다. 때로는 예수님을 내 문제의 해결사나 현세적 성공의 도구로만 바라본다. 그러나 이것은 그분을 “팔아넘기는” 또 다른 방식일 수 있다.
성 그레고리오는 “성경의 말씀은 읽을 때만이 아니라, 살아낼 때 깨닫는다.”(Homiliae in Evangelia 17,1 요약)라고 말한다. 즉, 먼저 말씀을 귀담아듣고 실천할 때만 그분이 누구신지를 알게 되고, 참된 증거자가 될 수 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십자가를 거치지 않고는 갈 수 없는 길이다. 우리가 먼저 십자가의 의미를 깨닫고 그 안에서 부활의 희망을 체험할 때, 우리는 다른 이들에게도 참된 그리스도를 전할 수 있다.
“주님, 저의 귀를 열어 주시어, 당신의 말씀을 귀담아 듣게 하시고, 십자가의 신비를 삶으로 받아들이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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