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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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49 최원석 [wsjesus] 스크랩 2026-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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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 신부님_생각을 바꾸어 실천하는 삶
[말씀]
■ 제1독서(에제 18,25-28)
히브리인들은 개인과 공동체의 운명을 불가분의 것으로 인식해 왔습니다. 그것이 상급이든 응벌이든,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바빌론 유배지에서 활동하던 예언자 에제키엘은 이러한 전통을 거슬러 활동하는 가운데 유배민들에게 삶에 대한 희망을 북돋웁니다. 지금 유배라는 응벌 중에 있다 하더라도 개개인이 회개하여 돌아서면 살 수 있다는 개별 책임사상에 무게를 두고 예언활동을 전개해 나갑니다. 각자는 자기의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 제2독서(필리 2,1-11)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남을 판단하는 가운데 자신들의 우월성을 드러내고자 하는 의지를 거부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서로서로 형제로 받아들이며 형제가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아낌없는 도움을 주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삶을 통해 하느님의 사업을 완성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제자 됨을 드러내야 합니다.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신분을 취하시고”, 형제들에 대한 사랑으로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 복음(마태 21,28-32)
예수님은 당신의 행위를 비난하기 위하여 전통에 사로잡혀 있던 유다교 지도자들과 끊임없이 대적하십니다. 그분은 비유 말씀을 통해, 영적인 권력에 얽매여 있던 사람들, 자신들의 우월성으로 다른 이들을 짓누르던 사람들, 끝내 하느님의 뜻을 실행에 옮기기를 소홀히 했던 사람들을 고발하십니다. 예수님에게는, 유다교 지도자들로부터 멸시를 받고 있다 하더라도, 회개에 대한 호소에 즉시 응답하려는 사람들이 하느님의 나라에 가까운 사람들입니다. 전통과 우월성에 집착하던 사람들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개념이었습니다.
[새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공동책임사상, 곧 공동체 구성원 가운데 한 사람이 잘못을 저질렀을 경우 그 책임을 공동으로 져야 한다는 사상에 젖어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바빌론 유배라는 응벌의 시대에, 이 응벌에서 벗어나기 위해 개별적으로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없다는 패배주의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이러한 시각으로부터 동족들을 생명으로 이끌기 위해 유배지의 예언자 에제키엘은 힘차게 외칩니다: “자기가 저지른 모든 죄악을 생각하고 그 죄악에서 돌아서면, 그는 죽지 않고 반드시 살 것이다.”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심으로써” 우리의 불순종을 극복해 주신 예수님은 비유 말씀을 통해 누가 진정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다가서 있는 사람인지를 일러 주십니다. 처음에는 거부와 저항의 목소리를 냈다 하더라도 “생각을 바꾸어”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에 옮기는 사람들, 당시의 사람들 특히 종교 지도자들로부터 으레 죄인으로 취급되었던 “세리와 창녀들”이 하느님 나라에 먼저 들어갈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이들이야말로 생각을 바꾸어 믿어 고백하는 바를 실천에 옮겼기 때문입니다.
이번 한 주간, 주님의 말씀에 ‘예’ 하고 대답했으면서도 실천에 옮기지 못한 것들, 또는 양심으로는 ‘아니오’ 하고 확신했으면서도 못내 아쉬어 기웃거렸던 것들이 무엇이 있었나 다시 살피고 점검함과 아울러, 이제는 ‘예’ 할 것은 ‘예’라고 답하고, ‘아니오’ 할 것을 ‘아니오’라고 답하며 그대로 실천에 옮기는, 주님의 사람으로서의 모습에 충실한 한 주간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맏아들은 뉘우치고 일하러 갔다.”
1. 개인의 회개와 책임
오늘의 주제는 회개(μετάνοια)이다. 제1독서(에제 18,25-28)는 하느님께서 인간의 운명을 집단적 죄책이 아니라, 각 개인의 선택과 회개에 따라 새롭게 하신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악인이 자기가 저지른 모든 죄악을 생각하고 그 죄악에서 돌아서면, 그는 죽지 않고 반드시 살 것이다.”(에제 18,28)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설명한다. “회개란 단순히 죄를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새롭게 하여 하느님께 향하는 것이다.”(Sermo 19,2 의역) 오늘의 독서는 우리가 흔히 범하는 오류, 죄의 책임을 구조나 타인에게 전가하는 태도를 바로잡는다. 하느님께서는 ‘사회적 구원’ 이전에 ‘개인의 회개’를 원하신다. 교리서는 말한다. “회개는 인간의 내면에서 이루어지는 전환이며, 그로써 인간은 하느님께 돌아서고, 죄를 끊고, 새 생명을 향해 나아간다.”(1431항 의역)
2. 두 아들의 비유: 말보다 중요한 것은 “행동”
예수님의 비유는 단순한 가족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하느님의 구원계획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 담겨 있다. “예!”하고 대답하고 가지 않은 둘째 아들은, 말로는 순종하지만, 행동으로는 거부한 사람을 상징한다. “아니오!”하고 대답했지만 회개하고 일하러 간 맏아들은, 비록 늦었지만, 진심으로 하느님의 뜻을 따른 사람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 비유를 이렇게 풀이한다. “말로 순종하는 것은 쉽지만, 행함으로 순종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혀가 아니라 마음의 순종이다.”(Homilia in Matthaeum, 68,2 의역) 이 비유는 단순히 두 아들의 차이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행동 없는 신앙’과 ‘회개로 이어지는 신앙’의 대비를 보여 준다. 형식적 신앙, 즉 “예!”라고 말하고 순종하지 않는 태도는 자기기만에 불과하다.
3. 바리사이들과 죄인들: 진정한 회개의 길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하느님께 “예!”라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분의 아들인 예수님을 거부했다. 그들은 하느님의 뜻을 자신들의 율법적 잣대 안에 가두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그들의 폐쇄성을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그들은 진리를 알고자 하지 않았다. 자신이 이미 진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Tractatus in Ioannem, 41,1 의역)
반면, 세리와 창녀들은 자신들의 죄를 인정하고, 요한의 세례를 통해 회개의 길에 들어섰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들의 겸손을 찬양하시며 말씀하신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31절) 이는 ‘죄인’이 구원받는다는 역설이 아니라, 회개한 죄인이 의인보다 먼저 하느님께 나아간다는 복음의 진리를 드러낸다. 성 그레고리오는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넘어지지 않는 이를 사랑하시지만, 넘어진 뒤에 일어서는 이를 더 사랑하신다.”(Homiliae in Evangelia, 34,8 현대적 요약)
4. 그리스도의 순종: 완전한 “예”의 모범
바오로 사도는 오늘 제2독서(필리 2,1-11)에서 그리스도의 순종을 우리 신앙의 본보기로 제시한다. “그분께서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필리 2,8)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뜻 앞에서 단 한 번도 “아니오.”라 고 하지 않으셨다. 그분 안에서 두 아들의 비유는 완성된다. “그리스도의 ‘예’ 안에서 하느님의 모든 약속이 실현되었다.”(2코린 1,20)
성 이레네오는 이를 다음과 같이 신학적으로 요약한다. “아담의 불순종이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했지만, 그리스도의 순종이 우리를 생명으로 이끌었다.”(Adversus Haereses, III,22,4 현대적 요약) 그분의 순종은 단순한 복종이 아니라, 사랑으로 드러난 자유로운 헌신이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회개는 ‘두려움에 의한 복종’이 아니라, ‘사랑에 의한 일치’로 나아가야 한다.
5. 공동체 안의 겸손과 일치
바오로 사도는 필리피 신자들에게 말한다. “무슨 일이든 이기심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십시오.”(필리 2,3) 교회의 일치는 ‘율법적 정통성’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는 겸손과 자기비움 위에서 세워진다. 사목 헌장은 이를 이렇게 표현한다. “그리스도인의 양심은 모든 인간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도록 초대받는다.”(16항) 그러므로 진정한 회개는 단순히 도덕적 반성이 아니라, 자기중심성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공동체적 변화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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